맹자의 어머니는 자식을 교육시키려 이사했고, 나는..

남편을 술자리로부터 구하려 이사한다

by 현해

지난 2025년 11월 30일,

남편과 대판 싸웠어요.

이번엔 이혼 코 앞까지 갔습니다.


부부싸움을 열 번 한다고 해서 이유가 열 가지인 집은 본 적 없어요.

늘 같은 문제로 부딪치죠. 알면서도 또 그렇게.

저희의 경우, 남편으로부터 야기되는 싸움은 9할이 '술' 때문입니다.

(제가 시발점이 되는 얘기는 오늘 철저히 배제할 예정입니다^^)


벌써 가물가물하지만 몇 인 이상 집합금지가 있던 코로나 때 가장 평화로웠어요.


남편은 5년여의 군 생활을 빼곤 나고 자란 이 도시에서 쭉 살아 지인이 많아요.

일이든 놀이든 에너지를 나눠 쓸 줄 모르고요.

모 아니면 도, 오로지 직진, 눈앞의 일에 열정이 넘칩니다.

그리고 거절을 못해요.

게다가 주량은 셉니다.


지인들과의 만남은, 특히 밤에는 99.8% 술자리로 이어지지요.

축하하느라 한 잔,

고마우니까 한 잔,

열받으니까 한 잔.

실제론 한 잔일 리가 없죠.

인당 서너 병이 기본.


남편이 먼저 사람을 모으거나 술자리를 마련하진 않아요.

다만 누군가가 부르면, 대개 십중팔구 어김없이 나갑니다.

신데렐라는 12시를 넘길세라 유리구두 떨궈가며 헐레벌떡 귀가했지만

이 양반은 새벽 3시나 되어서야 느긋하게 돌아오고요.


그나마 갑자기 손님을 모시고 들이닥친 건 딱 한 번,

신데렐라의 귀가보다 이른 시각이었고 그마저도 제게 술상을 차리라 하진 않았으니 다행이지요.


(당연하지만) 음주운전은 일절 하지 않습니다.


다만,

출근을 하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남편은 온라인 사업을 하거든요.

본인이 개발한 교육용 코딩키트를 판매해요.

택배 발송 시간만 맞추면 되니 아침 출근의 개념은 희미하죠.


학교 등 다양한 교육 기관에서 대량 주문하는 경우가 많아 성수기와 비수기도 제법 구분됩니다.

성수기조차 명절 대목을 앞둔 떡집마냥 바쁘진 않아요.

그렇다면 비수기엔 무엇을 해야 할까요?


네, 정답.


약간의 휴식을 포함하여 수정, 보완 및 신상품 개발 등등.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그런 것들을 해야 합니다.


1인 사업자라 스스로 관리해야 하는데 술 때문에 그게 종종 삐걱대니 저는 잔소리가 마렵습니다.


본인도 '이제 안 그래야지' 하지만 막상 나가면

마치 내일이 없는 사람처럼, 내 일이 없는 사람처럼

고고고.

그래놓고 아침이 되면 힘들어하고, 지나고 나서 아쉬워해요.


그런 일이 몇 번 반복되다 지난 11월 30일에 사달이 난 겁니다.


싸우고

울고불며 신파찍고

화해한 이야기는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을게요.


다만, 환경을 바꿔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고

바로 다음 날인 12월 1일에 집부터 내놓았습니다.

다가올 지방선거 때문에 마음이 조급했거든요.

또 거절하지 못할 '부탁'을 받고,

서로 전전긍긍 조심하다가도 결국 한 번은 부부싸움을 할 게 뻔히 보이기에.


챗GPT에 살고 싶은 도시의 조건을 내밀었습니다.

"안전하고 자연환경이 좋은 도시를 알려줘.

집 근처에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가량 걷거나 가벼운 등산을 할 수 있는 산책로가 있으면 좋겠어.

백화점은 없어도 되지만 병원은 필요해.

집값이 너무 부담되지 않도록 중소도시를 찾고 있어."


순천, 원주, 경주, 세종, 청주, 전주 등을 추천받았고,

강원도에 대한 약간의 로망과 수도권으로의 접근성을 고려하여 원주를 골랐습니다.

나중에 제미나이에도 같은 질문을 했더니 양산, 세종, 원주.

원더풀 원주!


그렇게 하여 연고도 없는 곳으로 원주민 프로젝트 아니, 이주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습니다.


급매로 내놓은 것도 아닌데 12월 28일에 신고가를 찍으며 집이 팔렸어요.

이래저래 술술 풀려 다다음주면 강원특별자치도민이 됩니다.

상가주택 2층에 사무실을 구하고, 바로 위 3층 투룸에 집을 구한 얘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들려드릴게요.


저는 이사와 상관없이 1월 말에 폐업을 하고 다른 일을 준비할 예정이었거든요.

오늘이 백수 2일 차.

결혼 10년 만에 맞이한 대출 없는 삶, 새출발을 앞두고 몹시 설렙니다.


맹자의 어머니는 이사를 세 번 했지만

저는 부디 한 번으로 끝나길 바랄 뿐...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방향을 잃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