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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현해 Feb 03. 2023

[텐트를] 신혼살림 장만하듯 캠핑 용품 준비하기

옛말 틀린 것 하나 없다

다이소에서 자잘하게 산 것들은 빼고도 이만큼

캠핑 용품을 장만하면서 느낀 점들을 생각해 보니 결혼 준비할 때가 많이 떠올랐어요.


1. 제 눈에 안경 + 이왕이면 다홍치마

  가장 먼저 구입한 건 텐트였어요. 결혼 준비의 첫 관문이었던 집 장만에 비하면 난이도는 훨씬 쉽습니다. 집은 입지도 따져야 하고 자가인지 전세인지에 따라, 금리에 따라 예산의 제약이 아주 크잖아요. 그땐 선택의 폭이 너무 좁아서 슬펐는데 텐트는 종류도 다양하고 금액도 천차만별이라 오히려 어떤 걸 골라야 할지 난감했어요. 캠핑고수인 지인은 바람에 강한 터널형 텐트를 추천했지만 저흰 사방이 개방되는 쉘터에 이너 텐트가 따로 있는 스타일을 갖고 싶었어요. 자기가 우선시하는 기준을 먼저 세우는 건 중요한 듯해요.

  상세페이지는 꼼꼼하게 봤지만 다들 점 위주로 써놓았기도 하고, 요즘 나오는 제품들은 다 웬만큼 좋은 것 같더라고요? 예산 내 적당한 수준에서 이미지컷으로 결정해 버렸습니다. 4학년 아이들에게 ‘이왕이면 다홍치마’란 속담을 알려주면 빨간 치마가 왜 예쁘다는 건지 근본적인 질문을 받곤 하는데요, 베이지 느낌이 나는 밝은 그레이 텐트를 왜 예쁘다고 생각했는지는 바로 이해하지 않을까요? 캠핑장 데크에 칠한 지 얼마 안 된 오일스테인이 가끔 묻어나는 것 외엔 오염도 그리 많이 되진 않더라고요. 가장 눈에 많이 들어오는 거고 기본적인 거니까 남들 말에 휘둘리지 않고 우리 부부 맘에 드는 걸로 고르길 잘했죠.


2. 싼 게 비지떡이다 + 백 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

  집이 준비됐으면 이제 가구를 채워야죠. 너무 싼 것만 사는 건 약간 경계했어요. 괜히 사놓고 버리지는 못하고 새로 사긴 아까워서 처치 곤란이 되는 상황을 피하자고 했죠. 그런데 남편이 알리 익스프레스에서 테이블과 의자를 덜컥 주문했네요? 작은 테이블 2개, 의자 2개, 조명 하나에 10만 원을 넘게 들였는데 조명은 확실한 비지떡이었어요. 지난번 글을 쓸 때 이것의 존재는 까맣게 잊고 있었네요. 다행히 테이블과 의자는 사이즈가 좀 작다는 점만 빼면 초심자용으로 손색없었습니다.

  그러다 벨누이뜨 매장에 한 번 다녀온 뒤에 정말 가슴을 쓸어내렸죠. 텐트를 살 때 얼마나 굉장한 모험을 한 건지, 얼마나 운이 좋았던 건지 새삼 깨달았거든요. 비슷비슷하게 생긴 의자도 앉았을 때의 느낌은 완연히 다르더라고요. 거실 소파를 살 땐 매장에서 앉은 느낌과 집에 배송된 새 제품의 느낌이 달라서 속은 기분이었거든요. 다행히 캠핑용 의자는 매장에서의 느낌 그대로, 할인 덕분에 눈독 들이던 제품보다 훨씬 싸게 구입할 수 있었습니다. 의자가 너무 맘에 들어서 테이블도 같은 브랜드로 맞췄어요. 캠핑을 한 번 가본 뒤라 셀링포인트를 말씀해 주실 때 귀에 쏙쏙 들어와서 고르기가 한결 수월했고요. 다행히 처음에 중국에서 산 테이블은 숯불 그릴 받침대로, 의자는 캠퍼가 아닌 손님을 초대할 때 여분용으로 나름의 새 역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3. 꼬리에 꼬리를 문다 +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

  새로 터를 잡는 데는 생각보다 필요한 물품이 많습니다. 대학교 때 기숙사에서 나와 자취를 시작할 때도, 신혼살림을 채울 때도 주방에 필요한 것들을 사다가 깜짝 놀랐어요. 거창한 요리를 하지 않더라도 밥그릇, 국그릇, 접시, 수저, 냄비, 프라이팬, 국자, 뒤집개부터 그것들을 씻어 말리려면 주방세제, 수세미, 식기건조대, 수저통도 필요하고 식용유, 소금, 설탕, 간장, 고춧가루 등 기본양념도 만만치 않으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완벽하다 싶을 만큼 준비하고 시작하는 것보단 살면서 차차 채워가는 게 좋은 것 같아요. 소소하게 구경하며 하나씩 더해가는 재미를 무시할 수 없거든요. 남들한텐 기본적인 품목이라도 본인의 생활양식과는 달라서 안 맞을 수도 있고요.

  선물 받은 가운 하나 때문에 서재 전체를 바꾸게 되었다는 ‘디드로 효과’를 실감하고 말았어요. 캠핑을 한 번 갈 때마다 더 필요한 게 보이고, 이제 됐다 절대 더 안 산다 해놓고 어느새 또 주문하기를 반복했거든요. 당연히 ‘이 정도는 기본이지.’, ‘우리 짐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야.’ 합리화하면서 말입니다. 조명을 테이블에만 올려두니 불편해서 랜턴걸이를 사고, 그릴이 수세미론 잘 안 씻기니 빳빳한 솔이 필요한 식이죠. 그 정도는 약과인데 구이바다 대신 그리들을 샀더니 세트로 나온 해바라기버너가 탐나고, 또 그것과 세트인 작은 버너도 따로 쓸모가 있겠고, 해바라기버너에 딱 맞는 바람막이 링가드를 사는 게 다른 바람막이보다 효율적이고, 그리들이 긁혀서 코팅이 벗겨지지 않도록 쇠 집게 대신 실리콘 주방도구를 써야 하고… 그리들이 불러온 나비효과로 약간 질려버렸어요. 레이로 캠핑을 다니는데 차까지 바꾸지 않은 게 다행이지 뭐예요.


4. 가랑비에 옷 젖는다 + 바다는 메워도 사람의 욕심은 못 채운다

  몇 번 가고 마는 상황을 감안해서 예산을 100만 원으로 잡았지만 꾸준히 다녔으니 비용이 더 들 수밖에 없었어요. 첫 캠핑은 100만 원을 채 안 쓰고 시작했는데 작년 8월부터 지난달까지 6개월 간 쓴 비용을 정리하니 200만 원이 좀 안 되네요. 크다면 큰돈이지만 달랑 아이스박스 하나 가지고 짐을 늘린 것치곤, 그리고 6개월간 얻은 재미를 생각하면 아깝지 않습니다. 유튜버나 전문가 리뷰 따로 찾아보지 않고 주로 실속형을 산 덕분에 그나마 저 정도에 머물지 않았을까 싶어요. 다만 야금야금 사 들인 덕에 처음 쓰려던 돈의 두 배에 도달한 건 무시할 일이 아니네요. 예산을 생각하지 않고 그냥 막 써 재꼈으면 엄청 큰 배꼽이 등장하지 않았을까요?

  저희랑 비슷한 시기에 캠핑을 시작한 다른 친구는 철저히 다른 노선을 걷고 있어요. 장비의 가짓수는 저희보다 훨씬 적은데 이름만 들어도 딱 알 만한 유명 제품들로 늘려가고 있거든요. 당근에서 산 텐트가 이미 200만 원? 폴대랑 원단 자체가 가볍길래 이래서 비싼가 보다 싶더요. 만약 그 친구네랑 일일이 비교를 했다면 왠지 초라하게 느껴져 슬펐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캠핑장에서라도 미디어 기기로부터 멀어져 보자고 마음먹고 있는데도 우연히 룸앤티비를 보곤 괜스레 탐났고요. 아는 만큼 보이니 어쩌면 모르는 게 약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맹목적으로 남들 하는 거 다 따라 하려는 건 결혼이나 캠핑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행복과 반대방향으로 전력 질주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지요.


1월엔 추워서 캠핑을 한 번 밖에 못 갔어요. 내일이면 입춘이니 다시 열심히 다녀야겠어요. 소유를 위한 광신적 소비가 아니라, 사용을 위한 현명한 소비였음을 계속 증명해야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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