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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Mar 31. 2020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

병원 이야기

중앙 인계 시간이었다.
오전(day) 근무 시 있었던 주요 사건과 오후에 챙겨야 할 것들, 그리고 공지사항들을 오후(evening) 근무자들에게 인계했다.

그때 중앙 스테이션으로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후배 간호사가 전화를 받았다.

- 선생님 경찰서라는데요?
간호사는 마침 간호사실에 있던 전공의 1년 차를 부르며 이야기했다.

- 경찰서? 경찰서에서 선생님을 왜 찾아?
우리는 궁금해했다.

- ooo님 주치의 좀 바꿔 줄 수 있냐고 해서요.

모두 모여있던 그 시간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우리 모두의 이목은 전공의의 통화에 집중됐다.
ooo님은 몇 달 전 우리 병원에 입원해있다가 퇴원한 환자였다.
환자의 진단명은 유방암이었으며 뇌와 골전이까지 진행된 상태였다.

유선상으로 환자 정보를 설명함에 제한이 있다는 전공의의 답변 이후 상대 쪽에서 긴 시간 상황설명을 하는 것 같았다.

통화가 길어졌고 우리는 모두 각자의 위치로 돌아가 우리에게 주어진 바쁜 업무를 시작했다.

나중에 파트장님께 조심스럽게 관련 건에 대한 소식을 들었다.


입원 당시 ooo님의 옆을 지키던 사람은 딸이었다.
딸은 엄마의 상태를 보며 늘 괴로워했다.
환자는 골전이로 인한 통증을 호소했고, 주기적으로 마약성 진통제가 투여됐다.

환자의 작은 변화에도 딸은 크게 불안해했다.
작은 신음소리에도, 뒤척임에도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늘 안색이 안 좋았다.

담당 교수의 회진 후 보호자의 얼굴은 더욱 어두웠다.
전이가 많이 진행되었고, 치료를 하는 과정도 환자분에게 힘든 일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리고 환자를 좀 더 편안히 모실 수 있는 곳을 생각해 보는 게 좋겠다고 했다.


며칠 후 환자는 퇴원했다. 보호자는 그때도 환자의 곁에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그 전화가 걸려왔다.
경찰은 당시 환자의 주치의였던 전공의에게 환자의 진단명이 맞는지를 확인했고, 여명에 대해서도 본인들이 아는 정보가 맞는지를 확인했다.

주치의는 답변 후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었다.


환자 보호자였던 딸의 재판 열린다고 했다.
죄목은 살인이고 대상은 딸의 엄마였던, 우리 병원에 입원한 환자였다.


잠시 숨을 쉴 수가 없었다. 어지러웠고 등골이 서늘하고 손에 땀이 났다.
내가 지금 무슨 말을 들은 것인가.


환자의 퇴원 이후에도 보호자인 딸은 아파하는 엄마를 늘 괴롭게 지켜봤다고 한다.
환자의 통증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고 마약성 진통제로도 잘 조절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환자는 입버릇처럼 그만하고 싶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딸은 그런 엄마를 지켜보는 게 괴로웠다고 한다.


어느 날 딸은 무서운 마음을 먹는다.
내 손으로 엄마의 고통을 끊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천천히 엄마의 목을 졸랐다.
이제 고통이 없는 편한 곳으로 엄마를 모신다는 생각으로 엄마의 숨이 멎을 때까지 그녀의 목을 눌렀다.
그렇게 엄마와 이별하고, 자기 자신을 신고한다.



질병이라는 무거운 짐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곳,

전에 겪지 못했던 극한의 상황들로 무너지는 사람들이 있는 곳,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는 이 곳에서는 가끔 일어나서는 안 되는, 있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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