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이 Mar 30. 2020

불완전한 존재들

병원 이야기

"하느님을 원망한 적은 없니?"
"솔직하게 말해도 돼요?"
"그럼."
"사실 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뭐를?"
"완전한 존재가 어떻게 불완전한 존재를 이해할 수 있는지...... 그건 정말 어려운 일 같거든요."
"........"
"그래서 아직 기도를 못했어요. 이해하실 수 없을 것 같아서."
 
두근두근 내 인생 中
김애란




아이의 엄마는 종교를 여러 번 바꾸었다.
기독교 신자라고 했던 것 같은데 어느 날부터인가 아이의 베개 밑에 부적이 생기기 시작했다.

아이의 엄마는 무언가 의지하고 붙잡을 곳이 필요했다.
아무 일 없이 평화롭게 살던, 행복했던 시절 자신이 알고 지내던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힘든 시기를 누군가에게 내 보이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았다.
위로의 말들이 위로가 되지 않고 가슴을 후벼 팠다.

'그들이 뭘 알겠어. 형식적인 인사는 듣고 싶지 않아.'

아이의 엄마는 그렇게 세상에게서 마음을 닫아 버렸다.

중학생이던 아이는 밝고 쾌활한 소녀였다.
뇌종양 진단을 받았고, 본원에서 수술을 진행했다.
밝게 웃으며 수술장으로 향했던 아이는 수술 후 반혼수상태가 되어 수술장을 나왔다.
아이의 엄마는 아이가 수술장에서 이런 모습으로 나오리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예후가 좋지 않은 뇌종양이라고 해도 이렇게 빨리 아이와의 대화가 끊기게 될지, 아이와 함께 걷지 못하게 될지, 아이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게 될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아니할 수 없었다.
이렇게 빨리, 이런 상황이 온 것을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아이의 엄마는 정신을 잃었다.


아이는 엄마를 많이 닮았다.
아이의 엄마도 쾌활한 사람이었다.
정이 많고 사교성이 좋은 사람이었다.
하지만 아픈 아이를 둔 후 마음에 상처가 생겼고,
자신의 인간관계를 크게 두 그룹으로 분리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아프기 전 나를 알던 사람들과 아이가 아픈 후 내가 만난 사람들

후자 앞에서 엄마는 마음이 조금 편안해 보였다.
애써 강한척하지 않아도 되고, 자신의 불행함을 하소연해도 되고, 과거의 좋았던 기억들을 추억처럼 이야기할 수 있고, 현재의 초라한 내 모습을 내보여도 되고 위로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전자는 만나고 싶어 하지 않았다. 아이와 자신이 겪은 모든 과정을 설명하고 싶지 않았고, 이 모든 상황을 이해한다는 말들도 듣고 싶지 않았다. 엄마의 입장에서 결국 그들은 그냥 행복하게 살 것 같고, 행복했던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며 나를 동정하고 처량하다 생각할 것 같았다.

그렇게 아이의 엄마는 자신의 삶을 잃었다.
좋아하던 취미생활도, 함께 만나던 친구들도... 모든 과거의 삶으로부터 자신을 차단했다.
그 행복한 시절이 자신의 현재를 더 비참하게 할 것만 같았다.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그 모든 과거는 희망고문 같았다.

자신의 행복했던 과거와 오늘의 모습 사이의 온도차가 너무도 컸다.


아이의 엄마는 간병인도 다른 보호자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아이를 돌보았다.
아이와 함께 병원에서 생활하는 것이 그녀의 새로운 삶이 되었다.


아이가 중환자실, 혹은 준중환자실에 입원하여 보호자와 함께 있을 수 없는 병실에 있을 때면 지방이 집이던 아이의 엄마는 늘 병원 어딘가, 혹은 찜질방에서 잠을 잤고, 끼니도 대충 때우기 일쑤였다.

저녁 근무가 끝나고 아이의 엄마를 병원 밖으로 모시고 나왔다.

- 같이 밥 먹어요. 술도 좋고요.

우리는 안주를 어마어마하게 시켜놓고 맥주를 홀짝홀짝 마셨다.
아이의 엄마에게 병원에서 매일 마주치는 우리는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 선생님 우리 아이가 다시 일어날 수 있을까?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그 아이가 전처럼 일어설 수 있을지, 아이의 엄마가 과거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말이다.

- 어머니, 저는 어머니가 즐겁게 사셨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상황에서도요.
이런 말씀 어떻게 들리실지 모르겠지만, 전에 배우고 싶어 하시던 커피 만드는 법도 배우시고, 기회가 되면 바리스타 자격증도 따시고, 친구들도 만나시고, 맛있는 것도 드시면서요.
oo이도 엄마가 그러길 바랄 거예요.
본인 옆에서 힘들어하는 모습을 바라지는 않을 거예요.
엄마의 삶을 살면서 즐겁게 사시기를 바랄 거예요.

엄마의 숨소리가 미세하게 떨렸다.


아이의 엄마는 퇴원을 준비했다.
아이의 상태가 좋아진 것은 아니지만, 급성기 관리가 필요한 상태는 아니었기에 퇴원 결정이 내려졌다.
아이의 엄마는 집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모든 장비들을 갖춘 후 아이를 집으로 데리고 간다고 했다.

그동안 아이는 고등학생의 나이가 되어 있었다.

아이의 친구들은 새로운 학교에 입학했다.
엄마는 가끔 아이를 찾아오는 그런 친구들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했다.

- 우리 oo이도 새 교복을 입을 때인데...

아이의 엄마는 우리에게 감사의 인사와 편지를 남긴 후 병원을 떠났다.
우리는 아이보다 엄마와 더 많은 정이 들었다.

가끔 아이의 엄마에게 연락을 했다.
잘 지내시는지, 아이는 어떤지 안부를 물었다.


조금 안정된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듯하다가도 다시 또 흔들리는 엄마의 모습이 느껴지곤 했다.
즐겁게 살자 마음먹다가도 자신이 즐겁게 사는 것에 왠지 모를 죄책감을 느끼시는 것 같았다.
아이의 옆을 지키지 않고 나가서 차를 마시고 오는 게, 무언가를 배우는 것이,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이 엄마는 쉽지 않았다.


많은 시간이 흘러 아이는 성인의 나이가 되었다.
지금은 아이와 엄마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용기를 내어 몇 번 연락을 드렸을 때, 연락이 닿지 않자 나도 더 이상 엄마에게 연락을 드리지 않게 되었다.  

혹여나의 행복한 삶과 모습들이 본의 아니게 상처와 아픔을 주지는 않을까 하여 연락을 건네기가 두려웠다.
그리고 연락을 건넸을 때 들려올지도 모르는 아이와 관련된 슬픈 소식을 마주하게 될까 봐 연락을 드리기가 망설여졌다.


그렇지만 늘 기도하고 있다. 많이 생각하고 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엄마가 본인의 쾌활하고 즐겁고 좋은 사람, 그 모습 그대로 행복하게 지내셨으면 좋겠다.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이다.
나약하고 흔들리고 모나고 실수투성이인,
완전한 존재가 엄마를 이해할 수 없을지 몰라도
그런 불완전한 존재들에게 기대면서 조금은 마음의 짐을 내려놓고 사셨으면 좋겠다.


완전하게 느껴졌던 과거의 삶에서 한 발 걸어 나와,
변화된 지금의 삶에서 또 다른 건강한 생활을 누리셨으면 좋겠다.
  



이전 03화 헤어지는 일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