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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Apr 07. 2020

그 고운 손으로

병원 이야기

그 아이의 나이는 정확히 몇 살 즈음이었을까?
갓 성인이 된 나이? 어쩌면 아이라고 부르는 게 실례일지도 모르겠다.

동그란 얼굴에 선한 눈매
하얀 피부에 작은 키

순박해 보이는 인상에 차분한 목소리를 가진 아이였다.


아이의 엄마는 일 년 전 처음 병원에 입원했다.

아이의 엄마는 언젠가부터 눈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의 엄마는 늘 옆에 있는 것들을 잘 보지 못했다.
검사를 위해 안과를 찾았고 시야가 정상인에 비해 현저하게 좁아져 있었다.
추가로 검사한 뇌 CT에서 시신경을 누르고 있는 뇌종양을 발견했다.

종양의 위치가 좋지 않다는 설명을 들었다.
그리고 그 크기가 매우 크다는 말도, 수술로도 완전하게 제거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말도, 그리고 계속 종양이 자라 다른 기능들도 저하시킬 수 있을 거라는 말도 들었다.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반복된 수술과 치료를 받았지만 종양은 계속 자랐고 아이의 엄마는 거동이 불가능해졌다.
의식도 혼미해져 갔다.

아이는 늘 엄마의 곁을 지켰다.
하지만 엄마는 그런 아이를 알아보지 못했다.

주말이 되면 아이의 오빠와 아빠가 병원을 찾았다.
아이는 그때 잠시 자리를 비우긴 했지만 밤이면 다시 엄마의 곁을 지켰다.
아빠와 오빠는 다시 그들의 삶으로 돌아갔다.
그들 역시 그들이 짊어진 삶의 무게가 있었다.
아이가 엄마를 돌보는 동안 아빠와 오빠는 엄마의 병원비를 벌었다.


아이는 병원생활이 익숙한 보호자가 되었다.
아이는 능숙하게 엄마의 기저귀를 갈고 몸을 닦이고 머리를 감겼다.

아이와 함께 아이 엄마의 체위를 바꿔주다가 아이의 손과 나의 손이 맞닿았다.
아이의 손이 너무도 거칠었다.
동글고 귀여운 아이의 인상에 어울리지 않는 손이었다.

곱디 고운 손이었을 텐데, 병원생활의 고단함이 아이의 손에 묻어났다.

너무 형식적인 인사가 될 것 같아 '많이 힘들죠?'라는 말 한 마디 묻지 못했다.

아이의 친구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
아이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엄마 곁에서 엄마를 간호한 시간만큼 정직하게 거칠어진 아의의 손을 보며 나는 보호자의 삶이 때로는 환자의 삶, 그보다 더 어렵고 힘들다고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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