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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Apr 11. 2020

아픈 아이를 보는 엄마

병원 이야기

커가는 아이를 보면서 매 순간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행복한 감정들을 느낀다.

모든 부모에게 그럴 것이다.
아이를 키우는 것만큼 힘든 일도 없지만, 또 그만큼 보람되고 행복한 일도 없다.

아이를 낳고 아이의 성장을 보는 그 모든 과정이 행복과 감사다.



그런데 이렇게 행복감만을 느끼기에도 부족한 이 시기에 아이의 질병으로 인해 말로 다 못할 마음고생을 하는 엄마들이 있다.

내가 근무하던 신경외과 병동에도 그런 엄마가 있었다.


- 선생님은 아이를 안는 게 정말 어색하시네요(웃음).

당시 결혼조차 하지 않았던 내가 그 작디작은 아이를 어떻게 안아야 할지 몰라 잔뜩 긴장하며 아이를 안고 아이의 체중을 측정했을 때 아이의 엄마는 나를 보며 웃었다.

아이의 엄마는 늘 차분하고 상냥하고 긍정적이었다.

그 시절 내가 시간이 지나 아이의 엄마가 되었고, 아이의 감기에도 벌벌 떨며 가슴 졸이는 나를 보며 아이의 엄마가 생각났다.



그 아이가 우리 병동에 입원한 건 아이가 출생하자 마자다.
갓 태어난 아이가 신경외과 병동에 입원해 있다니, 무슨 질병일까 궁금해 바로 진단명을 보았다.

Glioblastoma multiforme
신경교종 중에서 가장 악성 정도가 높고, 급속히 발육하는 뇌종양으로 우리 병동에 입원하는 환자들이 진단받는 진단명 중 가장 예후가 좋지 않은 질병이다.

- 아니 이 어린아이가...

모체에 있을 때부터 아이의 머리에는 종양이 자라고 있었다고 한다.
산모가 다니던 산부인과 병원에서 산전검사 시 아이의 질병을 발견하지 못했고 엄마는 출산 후 아이의 질병을 알았다고 했다.

산전 검사에서 아이의 질병을 알았다면 부모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을까?
어려운 문제다.


아이는 이름조차 없었다.
출산 직후 아이에게 뇌종양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부모는 우리 병원을 찾았다.
이름을 짓지도 못한 채였다.
아이는 엄마의 이름으로 불렸다. 엄마의 이름 뒤에 아기라는 단어를 붙인 'OOO 아기'가 한동안 아이의 이름이었다.

아이의 엄마는 힘든 상황 속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아이를 돌봤다.
하지만 아이의 상황은 좋아지지 않았다.

아이의 대천문 소천문이 닫히기도 전에 종양은 아이의 머릿속에서 계속 자라고 있었다.
아이 머리의 형태는 종양의 크기에 따라 변해갔다.

아이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았다.
아이는 이제 막 세상의 빛을 본 신생아였다.

그 아이에게 완치라는 결과를 줄 수도 없는데 수술, 약물 치료, 방사선 치료를 진행하는 것에 대해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그 모든 과정을 아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고 그 과정을 가족이 겪게 하는 것에 대해 긍정적인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이가 없었다.

아이는 종양으로 인해 생기는 증상을 완화시키는 치료만을 이어갔다.

작디작은 코에 튜브를 꽂아 분유를 먹었다.
얇디얇은 혈관으로 주사를 놓았다.

아이와 가족은 힘든 시간을 버텨갔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아이의 이름이 생겼다.
아이의 부모는 아이가 얼마 살 수 없을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아이의 이름을 짓고 출생신고를 하는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그 과정이 그 가족에게는 복잡한 감정을 느끼게 했을 것이다.

아이는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

그리고 두 돌이 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그 약 2년의 시간이 아이의 가족에게 어떻게 기억될지 모르겠다.



아이를 키우며 행복해하는 나를 보며 아이가 없던 그 시절 나는 알지 못했을 여러 가지 복합적인 감정이 들어 가슴이 저려왔다.

그 힘든 시간 동안 아이의 질병 때문에 아이의 엄마는 많이 아파했지만 그 안에서도 엄마를 늘 웃게 했던 건 아이였다.

아이가 응가를 했을 때,
뿡 방귀를 뀔 때,
힘을 주다 얼굴이 빨개질 때...

정상적인 성장발달을 하지는 못했지만 아이의 단순한 생리적 반응에도 아이의 엄마는 웃었다.

아이의 엄마가 되고 보니 그 힘든 시간 동안 항상
차분하고 상냥하고 긍정적이었던 엄마가 더욱 대단하게 느껴졌다.


- 잘 지내실까요? 아직도 엄마의 웃는 얼굴이 가끔 생각납니다. 저는 아이의 엄마가 되었습니다. 그 시절 저는 엄마의 마음을 공감해드리고, 위로를 드리기에 많이 어리고 부족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도 어찌 감히 제가 엄마의 힘든 상황을 다 이해한다 할 수 있을까요.
그 힘든 과정 중에서도 힘을 잃지 않았던 엄마의 강인함에 존경을 표합니다.

지금도 어딘가에서 차분하고 상냥하고 긍정적이었던 모습 그대로 건강히 잘 지내고 계시기를 기도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내가 근무하는 이곳에는 아픈 아이를 보는 많은 가족들이 있다.

힘든 과정 중에 아이의 작은 변화에 울고 웃는 그들에게 항상 웃는 일들만 가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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