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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Mar 25. 2020

그리움

병원 이야기

#
내가 그리워할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네...

사실 난 가끔
이 사람이 그냥 빨리 가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거든



#
긴 시간 간병을 해 본 사람들은 다들 그런 생각을 할 거예요.

가족이 질병으로 오랜 시간 투병 없이 가는 것도 복이라는 생각




#
긴 병 앞에 효자 없다고
존경하는 남편이었는데
사랑하는 아빠였는데
어느 순간 나도 아이들도 별 일 아닌 걸로 짜증을 내고 있더라고요.
이 사람은 환자인데도 말이죠.
건강한 우리들은 환자의 마음을 이해 못했던 거예요.

그 간병이
우리가 무언가 대단한 희생을 한다고 느끼게 한 거야.

아픈 부모 돌보는 건데
아픈 남편 돌보는 건데

부모는, 남편은
그 오랜 시간 불평 없이 묵묵히 사회생활하며
우리의 경제적, 정신적 가장이었는데
간병의 시간 동안 우리는 금방 그걸 잊었어요.

우리가 부모의, 남편의 가장 역할을 한다고 투정했어요.
왜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긴 거냐고 원망했어요.

이 사람은 그런 원망 안 했을 텐데...



#
이 사람이 의식 없이 누워있은지 1년 좀 넘었을 때,
하루는 내가 이 사람한테 그런 거야.
OO이 아빠
그냥 애들 고생시키지 말고,
나도 그만 고생시키고,
가요.
이제 그만 가요.




#
그런데 정말 그다음 날 이 사람이 중환자실로 이동하게 된 거야.
나 때문 같더라고.
그게 죽겠더라고.
나 때문에 이 사람이 끈을 놔버렸구나.
이제 정말 희망을 잃었구나.
나 때문에
나 때문에





#
중환자실에서 일주일 있다가 갔어요.
근데 내가 이 사람을 그리워할 자격이 있나?

있을 때는 그렇게 맨날 싸우고 구박했는데
남편이 없는 게 이렇게 공허한 건지 정말 몰랐지
내가 할 줄 아는 게 정말 없더라고
전기세며 수도세며 공과금 한번 내가 낸 적이 없더라고
그렇게 살았더라고 내가

남편 돈은 그렇게 줘도 줘도 모자라다며
편하게 막 써댔는데
애들이 주는 돈은 왜 그리 눈치가 보이는지

남편이 음식 투정하면 그냥 주는 대로 먹으라며
오히려 큰 소리로 구박했는데
애들이 밥을 남기면
반찬이 맛이 없나
오늘 무슨 일이 있나 걱정하는 나를 보며

아 내가 이 사람한테 정말 무심했구나
내가 아이들 아빠를 정말 작은 존재로 만들어버렸구나 싶더라고



#
근데
그래도 나에게 자격이 있다면
솔직히 나의 감정을 말한다면
너무 그리워요.
너무너무 많이 그리워요.

다시 돌아가도 원망하고 짜증내고 구박할 수 있지만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나에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꼭 한 번만이라도
다시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요.

애들 아빠가 살아있는 그때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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