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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양반이 그래도 우리 큰 애 시집갈 때까지,
그래도 그때까지 잘 이겨내 주기를 바랐어요.
결혼식에는 못 와도
청첩장에 아이 아빠 이름이 고인으로 적히지 않길 바랬어요.
그래서
조금만 더 힘내라고, 당신은 할 수 있다고
그렇게 계속 이야기해줬는데...
그런데 그게 내 욕심이었지.
이 사람 이렇게 힘든 줄도 모르고...
이미 이 양반은 우리를 위해 마지막 힘까지 다 내준 거야.
우리 둘째가 아기 낳을 때까지
우리가 이사할 때까지
내가 세상 살아가는 법을 조금 더 배울 때까지
다 기다려준 거야.
더 이상을 바란 건 내 욕심이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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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약속 장소에서 남편을 기다리는데,
남편 손에 담배가 들려있는 걸 봤어요.
남편이 저를 발견하고 황급히 담배를 끄더라고요.
남편은 폐암 진단을 받은 지 일 년이 됐어요.
이제는 잘 모르겠어요.
하고 싶은 걸 하면서 살게 하는 게 그 사람을 위한 건지
건강을 위해서 하고 싶더라도 안 좋은 건 하지 못하게 하는 게 그 사람을 위한 건지
평생을 담배가 가장 친한 친구로 살아온 그 사람한테
금연을 강요하는 건 가장 친한 친구를 뺏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가끔 그의 건강을 위한다는 이유로 강요하는 그 요구가 나만의 욕심은 아닌가 하는 생각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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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분을 처음 뵈었을 때, 환자분의 폐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계속 누워계시면 객담 배출이 잘 안되니까 무조건 하루에 2번씩 휠체어를 타시라고 했어요.
그런데 환자분은 움직이고 싶지 않다고 하셨죠.
그럼 하루에 한 번이라도 타시라고 했죠.
기본 처방에
-1일 1회 이상, 무조건 휠체어 태워주세요.
라고 써두었어요.
그 날부터 전쟁이 시작됐죠.
병동의 담당 간호사와 이송원 보조원까지 모두 모여 환자분을 설득하고 휠체어를 태우려 했는데, 환자분은 끝까지 안 타시더라고요.
그 모습을 보다가 제가 환자분께 말했어요.
- 어르신 이러시면 안 됩니다.
지금 이렇게 안 움직이시면 폐가 더 안 좋아져요.
다른 이유로 돌아가시는 게 아니에요.
다들 폐렴으로, 그래서 발생하는 패혈증으로 돌아가세요.
그때 환자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요.
- 나는 좀 편하게 있고 싶소.
나한테 더 이상 아무것도 하라고 하지 마시오.
지금 조금 좋아진다고 내 병이 완치되는 것도 아니잖소.
나는 더 욕심 없소.
그냥 편하게 갈 수 있게 해 주시오.
진통제 처방해서 퇴원시켜주시오.
모든 환자가 완치되어 병원을 나간다면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는 걸 우리가 더 잘 알고 있어요.
하지만 현 상태보다는 조금 더 나아져서 가시기를 바라죠.
그런데 그 환자분을 보면서 환자를 위해 내가 처방했던 것들이 환자분이 원하는 방향과 다를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게 저에게는 충격이었습니다.
의료진으로서 저의 욕심은 제 환자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는 거예요.
그런데 어떤 환자들은 꼭 그걸 바라지는 않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