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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면 사람이 작아져요.
그러니까...
질병으로 인해 심리적으로 위축되기도 하지만
신체적으로 정말로 크기가 작아져요.
못 먹어서 야위고,
장기간 누워있어서 근육이 위축되고,
골격도 정말 작아지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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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성격이 대단하신 분이었어요.
힘이 세고 기골이 장대했죠.
우리에게 늘 큰 존재였어요.
그 크다는 의미가
그러니까...
꼭 긍정적인 의미만은 아니에요.
아버지는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에요.
가족에게도 그랬어요.
어머니와 저는 늘 아버지를 어려워했어요.
아버지는 많은 부분 우리를 통제했어요.
그 통제를 벗어나려는 욕구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욕구보다 그것을 벗어날 때 벌어지는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어요.
그래서...
우리는 늘
아버지를 벗어나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으면서도
아버지를 벗어나지 못한 채
아버지를 두려워하면서
아버지 '안'에서 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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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를 닮고 싶어 하는 건 아니에요.
저는 늘 피하고 싶었어요.
늘 생기는 아버지와의 갈등이 싫었으니까요.
그래서 일찍 독립을 했어요.
벗어나고 싶은 큰 그늘에서 나온 느낌이었어요.
그런데 얼마 가지 못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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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병인을 쓸 형편이 안됐어요.
어머니가 주로 간병을 하시지만 어머니도 주말은 쉬셔야 하니까 주말은 저와 교대를 하셨죠.
저는 다시 집으로 들어가게 됐어요.
아버지의 병원비가 만만치 않았고 저의 생활비를 줄이는 게 맞다고 생각됐어요.
아버지가 그렇게 다시 저를 부르신 것 같았어요.
그것이 자의든 아니 든 간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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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간병하던 어느 날
돌아누워 있는 아버지의 등을 보는데,
기골이 장대하던 아버지의 등이 굽고 작아진 게 너무 낯설었어요.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 되어있더라고요.
앙상하게 뼈만 남은 아버지를 보면서
사람이 이렇게 작아질 수도 있구나 생각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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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에 대해 제가 아는 건 없어요.
그렇지만 제가 느끼는 질병은 그래요.
사람을 작아지게 만들기도 하는 그런 것...
아버지의 병이 아버지를 작아지게 했어요.
그게 저에게 너무도 낯설어요.
사람이 작아지기도 하더라고요.
아프면 그렇게 변하기도 하더라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