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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Mar 21. 2020

향기

병원 이야기

#
이 사람이 그렇게 냄새에 민감한 편은 아니었어.
영업직이라 사람들 만나니까 담배 냄새날까 봐,
(응 아주 오래된 골초였지.)
암튼 담배 냄새날까 봐 향수를 꼭 뿌리고 다녔다고.

내가 볼 때는 옷에 쩐 담배 냄새랑 싸구려 향수 냄새가 뒤 섞여 더 좋을 것이 없었지만,
그래도 나름 그렇게 신경을 썼다고.

대중목욕탕 가면 그 공짜 스킨로션 있잖아.
공짜라고 그걸 온몸에 바르고 나와서 목욕 갔다 오면  그 향기를 어찌나 풍기는지, 나는 아직도 대중목욕탕 스킨은 안 쓰잖아.
그 향이 지겨워서 말이야.

뭐 그런 강한 향도 예민한 사람이 아니었단 말이지.



#
암 진단받고 첫 번째 치료에 사람이 아주 초주검이 됐지.
첫 치료가 제일 힘들 다대.
그때 아마 세게 치료를 해서 퍼져가는 암세포들을 잡나 봐.
이러다 암 때문이 아니라 항암, 방사선 치료받느라 이 사람 잡겠다 싶더라고...

치료받으면서 잘 먹어야 한다는데 잘 먹을 수가 있나.
음식만 보면 냄새가 역하다고 저리 치우라고 난리였지.

음식뿐이야.
내가 옆에서 씻고 스킨만 발라도 토할 것 같다고...

잘 먹어야 견딘다는데 먹기는커녕 밥상만 보면 저리 치우라고 짜증을 냈지.
하루는 먹어야 산다고
억지로라도 먹어라 하며 밥을 퍼서 입에 가져다주는데 밥상을 팍 엎어버리는 거야.

밥상 엎을 기운으로 힘내서 억지로라도 먹으라고
나도 괜스레 속상한 마음에 소리를 빽 지르고 병실을 나와버렸지.

나오면 뭐 내 마음이 편한가.
휴게실에서 훌쩍거리며 울다가 옆자리 보호자가 와서 첫 치료는 다 저렇게 힘들다 위로하는 말 듣고 못 이기는 척 다시 병실로 온 거야.

병실 와보니 쓰레기통 붙잡고 헛구역질하는 이 양반 모습을 보니 속상하고 안쓰럽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드는데..

뭐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나.
조용히 자리로 가 등 두드려줬지.




#
잘 먹으라는데 식사 시간이 고역이야.
밥차가 올 때 되면 밥 냄새가 그리 역하다는 거야.
병원밥은 왜 맛난 냄새가 안 나고 '병원밥'  냄새가 날까

'병원밥' 냄새가 뭐냐고?
여기 일주일 이상 입원해 있으면 알아.

게다가 다인실은
아휴 말도 마
옆에 환자는 하루 종일 가래 뽑지
앞에 환자는 콧줄로 밥 넣지.
그 유동식 냄새가 또 그리 참기 힘든가 봐.
거기에 기저귀 가는 냄새까지 섞여서
안 아픈 나도 속이 울렁이더라고.


돈 있으면 1인실 갔지.
근데 이 아저씨가, 휴 나도 모지랐지.
제대로 된 보험 하나 없는 거라.
그나마 암환자는 국가에서 병원비를 할인해 주드만요.
그거 아니었으면 치료도 못 받았어.
암튼 1인실이 웬 말이야.
다인실에서 내내 있으니 그 냄새에 익숙해져야 하는데
그게 익숙해질 수 있는 냄새가 아니야.

결국 밥시간은 늘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지.




#
암환자는 면역력이 약해져서, 독한 약을 때려 부으니까...
감기 조심하라는데,
첫 입원이 겨울이었다고.
근데 속이 메슥거리면 바람 쐬러 나가자는 거야.
기어코 휠체어 타고 밖으로 나가재.

병원 밖 공기가 쐬고 싶은 거지.

어쩌겠어.
마스크 쓰고 패딩잠바 껴입고 병원 한 바퀴를 돌고 들어왔다고.
휠체어 끄는 나도 힘들지만
기력이 쇠해서 휠체어 타는 것도 힘들다고.
환자는 그래.

그럼 들어와서 하루 종일 잔다고.
그래도 자는 게 감사지.
깨어 있으면 괴롭거든.




#
그렇게 10kg가 쑥 빠지더구먼요.
뼈마디가 다 보였다고
등이며 갈비뼈며 진짜 앙상하더라고
이 양반 이러다가 진짜 큰일 나겠다 싶더라고

그래서 집에서 먹을걸 해다오는데 다 싫다는 거야.

그때 준 게 뭔 줄 알아요?
오이 그리고 고추
그걸 그냥 고추장에 찍어 먹더라고
물에 밥 술술 말아서

항암 치료하면 자극적인 거 먹지 말라해요.
구내염이 잘 생기는데 입 헐면 매운 거 먹으면 아프잖소.

근데 뭐 속이 쓰려도 입이 아파도 그것만 들어간다는데 어쩌겠어.

매일 고추장 조금에 오이 고추 그리고 물 말아서 밥 몇 술
그렇게 먹었지.

근데 재밌는 게 뭔 줄 알아요?
우리 병동에 이 식단이 유행을 한 거야.
푸하하

다들 고추에 오이 고추장 찍어 드시고 물 말아서 밥 한술

나중에는 교수님이 드시고 싶은 거 많이 드시면 된다고 했다니까
뭐라도 잘 먹으면 좋지.



#
지금이요?
6년 됐잖소.
이 양반 암 진단받은 게 6년이야.

손주 용돈 한번 쥐어주고 가면 소원 없겠다 하드만
첫 손주가 내년에 초등학교 간다니까.
손주가 넷이야.
다들 용돈 한 번씩 쥐어줬지.
성공했지 뭐
푸하하



#
그럼~
아직도 항암은 받지.
완치는 아니야.
잘 견디고 있는 거지.
암세포가 더 자라지는 않고.
완전히 없어진 건 아닌데 더 퍼지지는 않고 있대.

아직도 항암 받고 오면 예민해.
그 주는 다 맞춰줘야 한다고.
나도 이제 지혜가 생겼지.

나?
그럼~
아직도 무향만 쓰지.
뭐 아예 무향이 있겠어.
그냥 화장 거의 안 하고 얼굴에 바르는 거 향 거의 없는 거만 쓰지

집에 환기도 철저히 하고
냄새에 얼마나 예민해졌다고
내가 이제 박사야.
냄새 박사.

옆에 있는 사람도 다 그렇게 되더라고.



#
그거 알아요?
세상에 좋은 냄새가 참 많아.
뒷산만 가봐요.
솔 냄새 잔디 냄새 이름 모를 풀 냄새 흙냄새 나무 냄새 꽃 냄새
근데 그런 거 잊고 살았다고.
냄새는 다 역하다고,
한동안 그렇게 살았다고.

엊그제 이 양반이랑 산책 다녀왔는데 이 양반이 뭐랬는 줄 알아?

히야. 향기 좋네.
풀, 나무, 흙 그리고 바람 향기

이제 이렇게 산책 가고 바람 쐬고 이런 날이 온 거야.

그러게요.

이런 날이 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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