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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Apr 12. 2020

아빠

보호자가 된 의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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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린 시절 컴보이라는 게임기가 엄청 인기였다.
나 역시 컴보이 마니아였는데,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잠이 들 때까지 하루 종일 게임기를 붙잡고 있었다.

아빠는 나에게 게임기를 사 준 분이었다.

학교 다녀와서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 딸을 보면
'왜 저 게임기를 사줬을까'
한숨이 나올 법도 한데,
아빠는 늘 나와 같이 게임을 해줬다.
아빠는 단 한 번도 내게
'이제 그만해라. 들어가서 공부해라.'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나와 함께 게임을 하며 나에게 모든 게임의 기술을 가르쳐주셨다.

나는 그 시간이 즐거웠다.
아빠와 신나게 게임을 하는 시간.

나는 아빠가 사 준 게임 팩의 모든 게임을 끝판왕까지 다 깨고서야 게임을 멈췄다.
그 뒤로 더 이상 게임을 하지 않았다.
그때 컴보이 시절, 슈퍼마리오가 내 생에서 가장 재미난 게임이었다.


#
20살 대학에 가서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술을 마셨다.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 가놓고
그 좋은 대학에서 제일 먼저, 제일 많이 배운 것이 술이었다.

그때는 그것이 낭만이고 추억이라 믿고 살았다.
술 마시고 노느라 밤늦게 집에 들어가고 가끔 수업도 빠졌다. 학점은 당연히 엉망이었다.

그날도 전날 마신 술 때문에 잠에서 제대로 깨지 못하고 수업을 빠졌다.

학교도 안 가고 숙취에 뒹굴거리고 있는 딸이 밉고 한심할 법도한데 아빠는 조용히 엄마에게 한 마디하고 나가셨다.

"주이 해장국 끓여줘. 저러다 속 버린다."


#
내가 마루 걸레질을 할 때면 시완이가 잽싸게 내 등에 올라탄다.
- 말 타는 거야. 같이하자.
- 시완아 엄마 힘들어. 내려와.
- 싫어. 같이하자.

꾸역꾸역 힘들게 시완이를 업고 걸레질을 한다.
그러다가 아빠 생각이 났다.

내 기억이 선명한 걸 보면, 그때 내 나이는 시완이보다 많았을 텐데 늘 아빠는 나를 등에 업고 온 마루를 다니며 말타기를 해주셨다.

단 한 번도 '먼저 내려라. 힘들다.'는 말을 하지 않으신 채 내가 '이제 그만 할래.' 말할 때까지 그렇게 하루 종일 말을 태워 주셨다.

가끔 안아달라, 업어달라고 하는 시완이를 다그치며 나는
- 시완아. 시완이도 걸어 다녀야지. 엄마도 너무 힘든데
라고 말하는데

시완이보다 더 컸던 그 시절 나는 가족여행 후 힘이 들 때면 하루 종일 아빠 등에 업혀 한 발짝도 걷지 않았다.

내가 즐거워하면,
내가 힘들어하면,
아빠는 그저 묵묵히 나를 안아주고 업어주셨다.



#
성인이 되어서 아빠에게 물은 적이 있다.

- 아빠.
아빠는 왜 나한테 한 번도 공부하라는 말을 안 했어?  
어떻게 그럴 수 있었어?
하루 종일 게임만 할 때도, 성적이 곤두박질칠 때도 왜 잔소리 한번 안 했어?
안 답답했어?

대학 가서 그렇게 술 마시고 다닐 때도 왜 화 한번 안 냈어?
나 한심해 보이지 않았어?

그때 아빠는 이렇게 말해주셨다.

- 주이야
아빠는 그 모든 게 너의 인생이기 때문에 그저 지켜봤다.
아빠가 부모여도 너의 인생에 개입해 너의 삶과 선택을 흔들 권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사소한 것 하나까지 모든 선택은 네가 스스로 결정하고 그에 대한 책임을 지고 깨달음을 얻으며 살아가기를 바랐다.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이야기할 필요 없이 부모는 지켜봐 주고 지지해주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너의 삶은 네가 선택한 결정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 모든 것을 존중해주고자 했다.


그리고...
너는 단 한 번도 내가 생각한 선을 넘은 적이 없다.
젊은 시절 그 정도도 방황하지 않는 삶이 어디 있느냐.
선을 넘었다면 제지하고 혼도 냈겠지.
넌 단 한 번도 그런 적이 없구나.



#
자식을 낳고 보니 자식의 선택을 온전히 믿고 지지하고 따라주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자식의 선택 앞에 늘 부모의 바람과 욕심이 섞여 들어간다.


나는 자라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아빠에게 혼이 난적이 없다.
잔소리를 들은 적도 없다.

아빠는 내 인생의 결정들 앞에 있어 나에게 무언가 지시하거나 반대한 적이 없다.

나는 늘 그렇게 지지받고 사랑만 받고 컸다.


자식이 생기고 나니 그것이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지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그런데 아빠는 나의 37년을 온전히 나의 선택들로 채울 수 있게 하셨다.

아빠는 그런 분이었다.

늘 나를 믿어주는 분
언제나 내 편인 분
나의 방황도 부족함도 묵묵히 지켜봐 주는 분
그저 나의 건강과 안위만을 걱정해주던 분



그런 아빠가 떠났다.
더 이상은 고통이 없는 곳으로
힘들지 않은 곳으로


아빠는 그곳에서 편안히 쉬고 계실 텐데
내 옆에 더 이상 나의 절대적 지지자였던 아빠가 없다는 사실에
남은 자의 아쉬움에


아빠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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