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주이 Jul 23. 2020

아빠와 나

아빠를 꼭 빼닮은 딸

내가 세상에 태어났을 때, 그 날부터 엄마와 아빠의 지인들은 모두 나에게 아빠를 꼭 빼닮았다는 말을 했다.

자라면서도 나는 늘 아빠 판박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그 말은 비단 외모뿐만 아니라 성격과 성향을 포함하는 말이었다.

다들 나의 많은 부분이 아빠를 닮았다고 했다.


부모와 자식이 닮은 것은 당연하겠지만 나는 자라면서 많은 부분 이 말을 부정하며 살았다.

내가 볼 때 아빠와 나의 성격은 너무도 달라 보였다.

아빠는 흥이 있는 분이었지만 쉽고 가볍게 사람을 사귀지 않았고, 매사에 자신만의 원칙이 있었으며, 매우 꼼꼼했고, 잘못된 것은 꼭 바로 잡으셨고,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은 이해가 될 때까지 파고드셨다.


밖에서 업무를 할 때, 아빠의 이런 성향이 분명 장점으로 작용하리라는 생각도 했었지만 집에서 아빠의 이런 성향이 나타날 때면 나는 그게 다소 피곤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성향이 다른 엄마와 아빠가 부딪힐 때 나는 늘 엄마 편을 들었다.

- 아빠 그냥... 적당히 좀...

아빠와 비교해보았을 때, 엄마는 원칙주의자는 아니다.
엄마는 타인의 말에 잘 공감해주고 편하게 해 주어 사람들이 주위에 많은 반면 무리 안에서 자신의 의견을 강하게 주장하는 편은 아니다. 뭔가를 파고들거나 따지거나 바로잡거나 하는 일이 엄마에게는 어색하다. 그리고 엄마는 조금 급하고 거칠다.


나는 한 때 내가 엄마의 성향을 더 많이 닮았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유하(둘째, 딸)를 낳고, 엄마와 같이 살면서 내가 정말 아빠를 똑 닮은 딸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나는 가끔 엄마의 레시피 없는,
할 때마다 맛이 다른 음식들을 불편해했던 아빠의 마음을 100% 이해하게 됐으며,

- 엄마 여기에 대파 넣었어?
- 응 안 어울리는 거 아는데 맛이 심심해서 넣어봤어
(아니 안 어울리는 거 아는데 도대체 왜! 그냥 왜!)
 

엄마가 정리해둔 시완(첫째, 아들)이와 유하(둘째, 딸)의 옷을 모두 꺼내 사이즈와 디자인에 맞게 재정리하는 나를 발견했고,

- 엄마 봐봐 두 번째 칸은 내복 세 번째 칸은 우주복이고 네 번째 칸은 수건들이야. 내복은 다 짝을 맞춰 넣어 놨고 오른쪽부터 작은 사이즈야


 엄마가 모호하게 말하는 것은 두세 번씩 다시 물었다.

- 엄마, 그러니까 엄마가 말하려는 게 이 말이 맞아?


그리고 엄마가 잘 못된 정보를 말하면(그게 비록 매우 사소한 것일지라도) 듣는 즉시 바로잡았다.

- 우리 시완이 떡봉 엄청 먹었지
- 엄마 떡봉이 아니고 떡뻥


엄마에게 '아빠같이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남편을 맞춰주느라 진짜 피곤했겠네'라며 공감해주던 딸이었는데 그 딸은 아빠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피곤한 딸과 살고 있는 엄마는 요즈음 나를 보며 많이 웃는다.
엄마는 내가 당신의 음식 레시피를 물을 때도,
내가 정리한 옷장을 볼 때도,
당신이 한 말을 이해가 될 때까지 물을 때도,
당신의 작은 실수까지 굳이 굳이 정정할 때도 웃으신다.


아빠 생각이 나서
아빠와 똑 닮은 딸과 살고 있어서
그게 그냥 그렇게 웃겨서

그리고 말씀하신다.

"아빠랑 살 때는 잘 몰랐는데, 너랑 살면서 느낀다.
아빠가 나를 참 편하게 해 줬구나.
굳이 다 쓰지도 않았는데 미리 치약을 10통씩 사놓을 때도, 매일 먹을 게 많은데도 간식거리를 떨어지지 않게 채울 때도 난 그게 고마운 줄 몰랐어.

그런데 아빠 입원하고 나서 어느 날 생필품이 떨어질 때, 간식거리가 떨어질 때 아빠 생각이 많이 나더라.

너네 집에 왔는데 네가 생필품이랑 먹을 것들을 사서 쟁여놓을 때 웃음이 났지.
그것도 좋은걸 먹고 써야 한다며 고가의 제품으로다가

이런 것까지 아빠구나 싶어서

네가 맛있는 게 먹고 싶다고 좋은 곳에 외식하러 가자고 했을 때도 아빠 생각이 나더라.
그냥 같이 가주면 되는 건데
나는 왜 늘 안 가고 집밥 먹자고 그랬을까
아빠는 그냥 거기 가서 맛있게 먹고 싶었던 것뿐인데

유하가 태어나고 이렇게 너랑 같이 있으면서 또 한 번 기회를 주시나 봐.

아빠를 이해하는 시간을 주신 거야."


지금 글을 쓰면서도 나는 내가 왜 아빠랑 다르다고 생각했을까 싶을 정도로 아빠와 많이 닮았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결혼을 하고 두 아이를 낳고 나서야
서른일곱이 되어서야
다 큰 어른이 되어 엄마랑 같이 살고 나서야
아빠가 아프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피곤해했던 아빠의 모습이 바로 나구나.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그냥 많이 공감해드렸을 텐데.


늘 돌아보면 후회뿐이다.



이전 22화 아빠는 우리를 훈련시키시는 중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