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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Mar 22. 2020

발톱

병원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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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제가 ooo님 발톱 깎아드렸어요."

데이번 출근을 해서 준중환자실에 들어가자마자 밤 근무를 마친 후배가 제일 먼저 나에게 전한 말이었다.
나이트 근무를 한 것 같지 않은 맑고 깨끗한 얼굴로 밝게 웃으며 환자의 발톱을 깎은 이야기를 했다.

두껍고 길게 자라 있던 ooo님의 발톱이 말끔히 정리되어 있었다.

"어찌나 길게 자랐던지, 그동안 많이 불편하셨을 것 같아요."

밤 동안 할 일도 많았을 텐데
환자의 손발톱을 말끔히 깎고 수염까지 깎아준 후배가 대단해 보였다.

그건 그저 환자를 보는 것이 일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 정말 환자의 안위를 헤아리는 마음에서 우러나온 행동이었다.

그 후배가 환자를 대하는 마음이 오랫동안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
아빠의 발톱은 두꺼웠다.

장기간의 침상안정으로 위축이 생긴 아빠의 다리와 발은 점점 안쪽으로 굽어 들었다.
아빠의 두꺼운 발톱은 그 굽어진 아빠의 발을 따라 아빠의 발가락을 파고들었다.

"일반 손톱깎이로는 안 되겠어."

하루는 병원에 다녀오신 엄마가 아빠 발톱을 깎기가 쉽지 않다고 말씀하셨다.
그때 처음 두꺼운 발톱 전용 발톱깎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


"엄마 이런 게 있네. 하나 사볼게요."

전용 발톱 깎기로 아빠의 발톱을 깎아드렸다.
아빠의 발이 한결 깨끗해졌다.



#
"아빠 나도 발톱이 발을 파고드나 봐."
"아빠 닮아서 그래. 어디 봐봐."
"여기 엄지발가락, 여기가 쑤시는데."
"그 정도는 아니야. 내향성 발톱은 아닌 것 같아."
"구두 오래 신어서 그런가."
"깎을 때 잘 깎아줘야 해. 일자로 깔끔하게 그래야 안쪽으로 잘 안 파고들어."
.
.
.
.
나의 엄지발가락을 조금 파고들었던 발톱 때문에 발이 아프다고 징징거렸던 그때가 생각났다.

아빠의 발가락을 깊이 파고든 발톱 때문에 아빠는 얼마나 아프고 불편하셨을까

아빠의 질병으로 인한 다른 고통들이 발톱으로 인한 고통을 느끼지 못하게 했을까
아니면 아빠에게 투여되고 있는 강한 진통제가 아빠의 발의 고통도 감소시켜주었을까


어쩌면 내가 본 많은 환자들도
내가 중요하게 보고 있던 수술 부위 상처나 투약으로 인한 불편감보다
이런 부분들에서 더 큰 불편감을 느끼지는 않았을까
 
손발톱을 깎는 일
면도를 하는 일
머리를 감는 일
세수를 하고 양치를 하는 일

일상생활에서 늘 반복적으로 큰 의미를 두지 않고 해왔던 일들이,
소중하고 감사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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