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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Aug 29. 2020

나의 친절로 맺어진 인연

이것은 운명이었나?


병원에서 근무하다 보면 주위 사람들에게 병원 예약 및 진료와 관련된 많은 질문을 받게 된다.



'삼성서울병원에서 진료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니?'

'이 질환은 어느 진료과를 가야 하니?'

'어느 교수님께 진료를 봐야 하니?'

'향후 일정이 어떻게 되는 거니?' 

'예약 일정을 변경할 수는 없니?'

'입원 날짜도 변경이 가능하니?'

...........


(참고로 이 글을 보면서 문득 본원 진료 예약 방법을 궁금해하시는 분들을 위해 아래의 링크를 올려둔다.)



http://www.samsunghospital.com/home/cancer/guide.do?view=RESERVATION



처음에는 가족과 친척으로 시작해서 그들의 지인들, 지인의 친구들, 그 친구의 친구들까지 이어져 


'아는 분 중 병원에 다니는 사람을 찾고 찾다 보니 네가 있어서, 너네 딸이 있어서...'라며 관련 질문을 하기 위해 연락을 한다.



이런 부탁 및 질문의 양이 적지 않아 가끔은 좀 번거롭거나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사실 이런 질문에 응대하고 예약을 잡는 등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10분 정도의 시간을 내면 대부분 모든 질문이 해결된다.



그리고 이렇게 연락을 하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한다면 나의 귀찮음이나 번거로움을 이겨내고 최선을 다해 요구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

상급종합병원에 진료를 보러 오는 일이 발생했는데, 얼마나 간절하겠는가?

지인으로서 뿐만 아니라 병원 직원으로서도 병원을 찾으려는 환자와 그의 가족들에게 친절한 안내를 해주는 것이 맞다.




2014년 봄, 대학 동기에게 연락이 왔다.


'주이야, 친구 아버지가 폐암이라고 하는데 너네 병원에서 진료를 보시려는 것 같아. 네가 좀 알아봐 줄 수 있어?'

'응. 물론이지. 친구한테 내 연락처 주고 편하게 연락하라고 해.'



연락받은 친구의 아버지는 폐암 3기를 진단받았고, 본원에서 항암 및 방사선 치료를 계획하고 있었다.



건강검진 상에서 발견된 작은 덩어리가 폐암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그와 그 가족이 받았을 충격은 내가 상상하는 것, 그 이상일 것이다.

나는 소식을 듣고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정보를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미 친구의 아버지는 한차례 외래를 보셨고, 나에게 연락이 왔을 때는 향후 진료가 다 예약되어 있었다.

이에 내가 진료 관련 예약이나 교수님 등을 알아봐 드릴 것은 없었지만, 

향후 치료가 어떻게 진행되는 것인지, 

아버지의 상태면 보통 어떤 경과를 겪게 되는지 등 

그 친구와 가족에게 생기는 진료와 관련된 여러 가지 질문에 나는 성실히 답해주었다.



한 계절이 지나는 동안 몇 차례의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며 

힘든 항암과 방사선을 잘 이겨내신 친구의 아버지는 

향후에는 3주마다 외래에서 주기적으로 항암치료를 받으면 된다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질병이 완치된 것은 아니지만 친구의 아버지와 가족 모두가 질병의 과정에 지혜롭게 적응하신 것 같았다.

친구의 아버지는 어느 정도 항암치료 과정에 익숙해지셨고, 

이제 일상생활을 하시면서 외래에 다니실 정도로 컨디션을 회복하셨다고 했다.



그 과정을 함께 지켜보며 마음고생을 했던 그 친구는 아버지가 치료에 잘 적응해가시는 모습을 보고,

친절하게 이것저것 잘 알려준 나에게 밥을 사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병원에 근무하면서 이런 일은 수도 없이 많고, 

나에게는 이런 일들이 정말 1의 부담도 없으며, 내가 특별히 해준 것도 없다고 거절했지만,

고마움을 표시하고 싶어 하는 친구의 부탁을 들어주는 게 좋겠다는 대학 동기의 말에 며칠 후 그 친구의 밥을 얻어먹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친구와 함께 살고 있다.


그로부터 일 년 후 나는 그 친구와 부부의 연을 맺었다.


그 당시 치료를 받으시던 환자분은 나의 아버님이 되었고, 

아버님은 늘 우리가 부부가 된 데에는 본인의 역할이 가장 컸다고 웃으며 말씀하신다.


나는 내가 인생을 살면서 남편과 결혼한 일이 내가 가장 잘 한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좋은 사람을 내가 만날 수 있었음에 늘 감사하고, 

이렇게 좋은 가족과 우리 가족이 인연을 맺을 수 있음에 늘 행복하다.



나는 그저 간절했던 한 보호자의 작은 부탁을 들어준 것뿐인데,

나의 작은 친절이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인연을 맺게 해 줬다.




지금도 병원에서 근무하는 많은 분들이 나와 같은 부탁을 받고 있을 것이다.

부탁을 받는 모두가 업무도 많고 매우 바쁜 분들이겠지만,

간절한 누군가의 부탁을 잊지 말고 친절하게 들어주었으면 한다.



그 친절이 결국은 나에게 언젠가는 매우 소중한 인연으로, 감사로, 행복으로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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