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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이 Nov 05. 2020

기억의 흔적

자식의 한계

#
병원 리모델링의 일환으로 행정 사무실이 모두 병원 밖으로 이동했다.
병원은 걸어서 5분 거리에 있지만 사무실 이전 후 병원에 갈일이 거의 없었다.

오늘 동료가 예전 사무실 공간에 갈일이 있다고 해서 오랜만에 이전에 근무하던 병원 안 사무실을 가게 됐다.

사무실을 나오면서 예전에 늘 우리가 다니던 그 길을 나오는데,
순간 왈칵 눈물이 났다.

'아... 어떡해... 정말 어떡해...'




#
아빠가 돌아가시고 엄마의 몸이 많이 상했다.
우리는 엄마의 건강이 걱정되서 부랴부랴 건강검진을 예약했다.
엄마는 전에 없던 고혈압을 진단받았고, 나는 우리병원 진료를 예약했다.
엄마는 한번 진료를 가서 약 처방을 받으시고는 임의로 약을 끊고 병원을 가지 않았다.

그리고 어느날 180/100mmgh의 혈압을 찍고,
두통을 호소하고 나서야 다시 동네 병원을 찾았다.

그 뒤로 동네병원을 다니시며 계속 혈압관리를 하고 계시다.



#
엄마가 건강관리를 잘 하시기를 바랬다.
그런 우리의 마음과 달리
엄마가 예약해드린 외래도 가지 않으시고
약도 마음대로 끊어버리신게 너무 너무 속상했다.


그런데 나는 오늘 병원에서 나오면서,
내가 늘 걷던 그 길을 걸어나오면서야 알았다.

우리 병원이 엄마에게 얼마나 오기 아픈 장소였는지를 말이다.




#
내가 근무하는 병원에 아빠가 입원해 계실 때,
나는 오늘 내가 걸었던 그 통로를 거쳐서 매일 아빠를 보러 갔다.

나의 사무실에서 아빠의 병실까지 가는 그 길이 바로 오늘 내가 걸었던 길이다.

그 길을 가는 동안 나는 수 많은 생각들을 했었다.
그 길을 가는 동안 나에게는 수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매일 출근전, 점심시간, 퇴근 후 그 길을 지나며 아빠를 보러갔다.


근무하다가 아빠의 상태가 변하면 그 길을 뛰어서 아빠를 보러갔다.
주치의와 면담을 하기 위해,
지정의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아빠의 수술 동의서에 사인을 하기 위해,
아빠가 요추천자를 한다는 연락을 받고 처치동안 아빠의 곁을 지키기 위해
아빠의 첫 재활 치료 날 아빠와 함께하기위해
수 많은 처치의 동의서를 받기위해
그 길을 걷고 또 뛰었다.

그 모든 날의 기억이 그 길에 있다.
사무실을 나와 아빠에게까지 가던 그 매순간의 마음들이 오늘 그 길을 걷는 동안 모두 생각났다.
아프고 저리고 속상하고 떨리던 그 모든 감정들이 그 길에서 다시 떠올랐다.




#
엄마는 딸의 성화에 못이겨 우리병원을 다시 오던 그 날
얼마나 많은 감정들이 들었을까

그걸 나는 왜 이제서야 알았을까

그걸 모르고 얼마나 엄마에게 잔소리를 했는지모른다.
그게 또 마음이 아프다.
엄마의 감정을 내가 헤아리지 못해서



#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날을 나는 또 이렇게 모르고 살아갈까
아빠를 보내고 나서야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아빠와 엄마의 마음을 알게되는 순간들이 있다.

다시 돌아가도 그 순간에는 절대 몰랐을 많은 일들
지나고 알고나면 늘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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