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골목 서있는 가로등이 외롭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사방에 드리운 어둠을 더욱 바짝 껴안고선 가로등은 고개를 숙여 자기 발밑만 내리쬔다. 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본다. 온통 까만 저 얼굴이 일년 열 두달 그중 아홉 번째 미소를 달보드레하게 짓고 있다.
나무도 발맞춰 옷을 갈아입고 나도 옷을 갈아입는 계절이 찾아왔지만, 올해는 초승의 미소를 많이 보진 않았다. 고개를 들어 바라다 볼 여유는 있었으나 이유가 없었다. 나의 새벽의 시선은 골목의 가로등처럼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가로등처럼 외롭진 않았으니 말이다. 게다가 고개 숙여 바라보는 시선이 항상 거무튀튀한 새벽만을 말하진 않는다. 나는 나의 새벽을 사랑하고, 그 시간 속의 내 모습을 존중한다. 기꺼이 고개를 숙여 펜을 쥐고, 책을 들여다보며, 악기를 바라다본다. 이 순간들이야 말로 나를 세우는 골조가 되어왔다. 반(半)지천명, 지금의 내 이름 석자는 이렇듯 타오르는 태양빛보다 휘영청 초승의 미소가 고이 적어준 이름이다.
달이 둥글면 이지러지고 차면 기운다하지만, 초승은 기울면 기울수록 가늘고 환하게 웃어보인다. 이지러진 자리를 기꺼이 채우리라는 마음을 담아 미소를 내비친다. 채울 달이 부족하다는 건 그만큼 앞으로 많은 걸음을 걸어야 한다는 의미이다. 말 없이 미소를 거두고 다시 묵묵히 걸어간다. 초승은 가야할 길을 명확히 알고 있다. 늘 그래왔다.
여지껏 그래왔듯 열 번째, 열한 번째 미소를 보기 위해 애써 고개를 들진 않을 것이다. 다만, 우연히 만날 다음번 새벽엔 나의 입꼬리에 자그만 행복을 걸어두고 더욱 환한 미소를 지어보일 수 있으면 좋겠다. 초승 당신과 마주하며 지긋이 미소로 인사나 나눌 수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