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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그늘 Oct 23. 2022

EP 2. < 거리 위의 전쟁 >

22.10.23 SUN





꽤나 자주, 길을 걷다가 멀리서 찌릉찌릉 굴러오는 자전거나 터벅터벅 걸어오는 상대를 마주할 때면 일순간 공기가 서늘해지는 느낌이 든다. 주변 풍경이 슬로 모션처럼 느려지고 세상이 우리의 조우를 스포트라이트로 조명하는 듯한 그런 감각이 들 때가 있다. 물론, 조우의 뒤가 무탈하다면 대수롭지 않게 넘길 일이겠다. 허나, 나와 상대의 애매모호한 방향 전환으로 인해 찰나가 요동치고 전쟁이 박동한다.



한눈에 봐도 무게감 있어 보이는 장검과 검의 흔적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철 방패 그리고 철모. 마치 영화 300의 검투사가 된 것만 같은 기분?



... 혹은, 이보다 좀 더 톤 다운된 느낌의 거리를 걷고 있다면,



천장으로부터 책상까지 꽤나 낮게 매달린 갓등의 불빛만이 켜져 있는 취조실. 바닥으로 내리치는 갓등의 불빛의 범위를 벗어나면 바로 앞 상대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는 어둑한 공간. 나의 취조와 상대의 반박이 맞수의 맞수를 거듭하는 혈투를 펼치는 그런 기분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 기분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 뇌가 명령한다. 자동반사적 명령이 척수를 길게 타고 근육들에게 명령을 하달한다. 이들은 뇌의 명령을 절대 거스를 수 없다. 전쟁에서 상관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복종해야 하는 신조는 약 2년간 반복적으로 이어진 세뇌가 빚어낸 우리네 결의이기 때문이다. 이윽고 작전을 개시한다.



'오른쪽으로 가겠지?'



'엥?'



(멈칫)



'내가 비켜드려야지'



'엥?'



(주춤)



... 왜 이런 상황이 벌어지는 걸까?



우선, 거리 위의 경합의 차수는 조우하는 두 명의 성향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 너무 직선적인 성향의 둘이 조우한다면 상대가 알아서 피하리란 일념이 서로 겹치고, 너무 둥글면 상대에게 양보해주려는 마음이 서로 겹쳐 결국 평균 경합의 차수는 급격히 증가한다. (필자는 많을 때엔 다섯 번까지 겹쳐본 적도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둘의 성향이 정반 대면 반대일수록 누구 하나 피해 없이 종전에 더 빠르게 다가갈 수 있다. 이는 비슷한 성향이 부정적 결과를 끼치는 몇 안 되는 상황이라고도 할 수 있다.



등줄기를 타고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히는 나와 상대. 포인트는 당황한 기색. 그러나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상황. 어쩌면 상대는 나의 얼굴조차 보지 않고 있을지도 모른다. 뻘쭘하므로 나는 차마 보지 못한다. 이어지는 두어 번의 경합을 뒤로하고 나는 결국 착수를 해내지 못한 상대의 어깨를 스치듯 지나친다. 해냈다. 내가 이겼다.



마스크 속에서 썩어빠진 미소를 은은하게 짓고 있는 것도 잠시, 뭔 놈의 승리감에 취해있는 나를 발견하고 창피하고 창피해서 걸음은 비약적으로 빨라져만 갔다. 사실 실컷 호들갑을 떨었지만 이 기나긴 승부는 약 2초에 불과했다.

.

..

...

이게 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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