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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 7살, 가난이 무엇인지 알게되었다.

가난했던 나의 어린시절에서 극복한 나의 현실적인 이야기.

by 무명 흙

가난했던 나의 어린시절에서 극복한 나의 현실적인 이야기.



이 이야기는 내가 가난을 이겨내고 현재 지금의 나까지 성장할수 있었던 가슴 아프고 현실적인 내용을 스토리로 만든것이다.


나는 1997년 서울 어느한 부유한집에 태어났다.

먹고 싶은 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계속 부유하게 살 줄 알았다.

내 나이 고작 7살, 상식적으로 가난이 무엇인지 궁금해 할 나이도 뜻도 모르는 나이에 난 가난하다고 느꼈다.

7살 이전의 기억? 솔직히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냥 우리집이 좀 부유했고 맛있는 거 먹으면서 살았구나 정도만 기억이 난다 너무 어렸을때니까

하지만 7살이 된 후 내 인생은 정말 절망 그자체였다.


우선 소개를 먼저하겠다

난 현재 29살 남자, 또래에비해 높은 연봉을 받고 있다

우리집은 부모님과 큰 누나 , 작은 누나, 형, 나

이렇게 4남매 6식구다.

우리집은 부유했던걸로 기억한다

하지만 어느날 갑자기 집이 완전히 망해버렸다 빚도 많아지고,,

부모님이 사업을 하신건 아니다. 어머니 말로는 아버지가 도박을 하시다 망했다는데,,

정확한 사실인지는 부모님 두분만 아시는거 같다 굳이 말하고 싶지않은 아픈 기억이니까..


우리 어머니는 직업이 특이하시다

사람들이 소위 말하는 무당, 유명한 무당이시다.

어머니 말로는 어머니는 일반 무당이 아니고 다르다고 하셨다 절에서 큰 스님 밑에 있으면서 도를 닦으시고

득도도 하시고 신내림도 받으셨다고 한다,


우리 아버지는 내가 6살때까지 무슨 일을 하신진도 잘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7살이 되고 모든 걸 기억을 하기 시작할때

우리 아버지는 영업용 택시운전기사였다.

수입은 월 40~50만원, 6식구가 먹고살기엔 너무나도 부족한 금액이었다.


당시 우리집은 서울 마천동에서 살다가 집이 망하고 나서 경기도 성남에 엄청 허름하고 낡은집으로 이사를 갔다

그때 우리집 월세는 30만원, 전기세,수도세,가스비, 등 공과금을 포함하면 숨만쉬고 살아도 월에 3~40은 나갔던거다

큰누나는 고등학생 작은누나는 이런 집이 싫어 자주 가출을 했었고 형과 나는 아직 어린 초등학생과 유치원생이였다.


우리집 수입은 아버지가 벌어오시는 40~50만원이 전부. 큰누나는 혼자 알바를 하며 대학등록금과 아버지 빚을 갚고 자기 생활비를 벌었다.

집에 보탤수있는 금액이 아니여서 어머니, 아버지, 형, 나, 이렇게 4식구는 그 40~50만원으로 살아가야했다.


턱없이 부족한돈,, 어머니는 몸이 많이 안좋으셨다 그 이유는 집이 망하기 시작할때 돈을 벌기위해 욕심을 내 하늘에서 벌전을 받으신거라고 하셨다.

몸이 많이 안좋으셨지만 병원 갈 돈도 없어 혼자 끙끙앓았던 어머니... 우리집은 월세, 공과금이 3달씩 밀려 쫒겨날 위기였지만 1달은 내고 그 다음달은 못내고

하면서 겨우겨우 살았다. 월세와 공과금을 내는 달이면 집에 남는돈은 고작 7만원에서 많으면 15만원정도.. 이 돈으로 우리 힌달 식비를 해결해야했다..


이렇게 어려웠던 우리집에서 지금의 난 떳떳한 청년이 되었고 내 또래 친구들 사람들보다 더 많은 연봉을 받으며 살고있다.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어떻게 지금 내 또래 친구들 사람들보다 더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었는지를 말해주고 20대 30대초반 아니 이 글을 보는 모든 독자들에게 현실적인 동기부여가 되기위해 이 글을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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