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찢어진 종이 한 장
초등학교 3학년.
학교에서 수련회를 간다는 소식을 들었다.
수련회라는 단어가 내게 주는 설렘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었다. 친구들이랑 같이 자고, 같이 놀고, 도시락도 먹고…
평생 못해본 걸 단 며칠 동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가정통신문을 받아들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어떤 희망을 품었는지도 모른다.
“아빠, 나도 수련회 가고 싶어.”
신청서 한 장을 내밀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그 순간 아버지는 굳은 표정으로 신청서를 쳐다보셨다.
그리고는 단 한 마디.
“이딴 데 왜 가냐. 갈 필요 없어.”
그 말과 동시에 종이는 아버지의 손에 찢겨나갔다.
눈앞에서, 꿈도 기대도 함께 찢겨나갔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며 집 밖으로 뛰쳐나왔다.
하루 종일 울었다.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 만큼 괴로웠다.
가고 싶다는 마음보다, 찢긴 신청서보다 더 아팠던 건 아버지의 말투와 표정, 그리고 나를 향한 그 싸늘한 외면이었다.
그때 수련회비는 7만 3천 원이었다.
누구에겐 큰돈이라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금액.
하지만 그 당시 우리집 월 수입은 50에서 80만 원.
월세도, 전기세도, 수도세도 세 달씩 밀려있는 집.
7만 3천 원은 절망이었다. 감히 넘을 수 없는 벽이었다.
당연히 나는 수련회에 가지 못했고, 교실에서 웃고 떠드는 아이들 틈에서 괴로움만 더해갔다.
그날은 내 마음에 깊게 각인된 채 오랫동안 남았다.
성인이 된 어느 날, 나는 문득 그날을 다시 떠올려봤다.
그때 아버지는 왜 그렇게 화를 내셨을까? 정말 내가 싫어서였을까?
아니다.
그때 아버지도 많이 미안했을 것이다.
돈이 없어서 자식을 보내주지 못하는 현실.
그 현실을 말하는 것조차 부끄럽고 참담해서,
화내는 걸로 감정을 감춘 게 아닐까.
‘얼마나 속상하고 미안했을까...’
그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혼자 엉엉 울었다.
어릴 적에는 그저 밉고 싫었던 아버지가,
이제는 누구보다 안쓰럽고 가슴 아프게 느껴졌다.
시간이 지나 아버지와 단둘이 밥을 먹게 된 어느 날.
그날 일을 조심스럽게 꺼내봤다.
아버지 저 초등학교때 수련회 얘기요. 기억나세요?”
아버지는 말없이 밥만 뜨셨다.
그러다 한참 후에, 조용히 입을 여셨다.
“기억난다. 그땐… 미안했다.”
“아빠가 능력이 없어서 못해주니까 속상해서 화를냈었다.”
그 말에, 난 참을 수 없었다.
아버지 앞에서 꾹꾹 눌러왔던 눈물이 터져버렸다.
아버지도 그때를 기억하고 계셨다는 사실이,
그 미안하단 말 한마디가 나를 무너뜨렸다.
그토록 미워했던 아버지였는데,
사실은 가장 아팠던 사람은 아버지였을지도 모른다.
가난을 견디느라, 자식들에게 해줄 수 없어 괴로움에 갇혀 있었을지도.
“죄송해요, 아빠. 그땐 너무 어려서… 그냥 아빠가 미웠어요.”
누가 나에게 묻는다면,
인생에서 가장 많이 울었던 날은 언제였냐고.
가장 슬펐던 기억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대답한다.
“그날이요....
아버지가 ‘미안하다’고 말해주던 그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