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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May 24. 2024

천하무적 이런 건 못 참지

천하무적 고무동력기 <김동수, 박혜준 지음>

나는 그림을 못 그린다.

그런데 못 그리는 그림은 없단다. 심지어 고미 타로 아저씨는 잘 그리려 하면 안 된다고 얘기한다. 잘 그린 그림보다 좋은 그림이라는 말이 있을 뿐이라고 한다. 그럼 괜히 이런 삐딱선이 되는 것이다. 치, 이미 잘 그리는 이들이야 자유로운 화풍으로 접근하며 못 그리는 것 같아 보일 뿐이지, 그 대충 그린 것 같은 그림에도 내공이 담겨 있지 않겠냐는 투덜거림이다. 그러함에도 못 그린 그림은 없다는 말이 이해는 간다. 누군가에게 칭찬받기 위해 그리는 게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담은 그림이라면 좋은 그림이라는 것은 동의할 만하다. 

김동수 작가의 그림책을 읽어 나갈 때면 항상 드는 생각이다.

못 그린 그림의 기준이란 게 무엇이란 말인가.

좋은 그림이란 어떤 것인가.



여류 작가인 김동수의 그림책은 일반적인 시각에서 보면 잘 그린 그림이 아니다.

물론 작가들이 설정한 테마에 따라 초등학생이 그린 체처럼 흉내 내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녀의 그림은 그냥 초등학생 그대로이다. 초등학교 3학년 정도의 학생이 상상하는 딱 고 만큼의 그림일기. 그런데 흥미롭다. 대충 느낌을 내었던 게 아니라 그림, 이야기의 전개 방식, 느끼는 감정들이 올곧이 아이 높이의 시선에 걸쳐 있다. 일면 정말 자유롭다고나 할까.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는 개구장이의 마음과 같이 이랬다가 저랬다가 갑자기 슬그머니 장난이 발동되다가 상상의 세계로 빠져 들어가니 이런 세계에는 경계가 없는 법이다. 이 아이의 마음과도 같은 자유로운 리듬은 다른 작 <감기 걸린 날>, <학교 가는 날>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되기에 그녀의 작품을 얘기할 때 공통분모로 얘기할 수 있는 가장 큰 강점이다.


<천하무적 고무동력기>는 그 생동감 있는 기법이 도드라져 더욱 날 것 같이 즐길 수 있는 그림책이다. 물론 아이도 꽤나 좋아했다. 아이들은 참으로 잘 정돈된 것보다 엉망진창의 그림책을 좀 더 좋아하는 듯하다. 작가는 문방구에 파는 조립식 고무동력기를 사가지고 아무도 없는 집에 총총걸음으로 돌아가는 어느 초등학생의 심리를 따라간다. 어린 시절 대나무 살대를 엮은 후 창호지를 풀로 붙이고, 프로펠러에 노란색 고무줄을 연결하여 날리던 그 푸른 창공의 고무동력기가 맞다. 그 흥분을 혹시 기억하시는지? 나는 정성스레 만든 그 비행기가 넓디넓은 운동장에서 하늘을 멋지게 날아오를 거라 기대하던 마음이 떠오른다. 그리고 현실에서는 달리 잘 날지도 못하고 휘영청 하다 땅에 쳐 박히던 아픔도 기억이 난다. 하지만 조립하면서 느꼈던 잔잔한 흥분, 운동장으로 달려가며 마냥 신나 했던 기억만큼은 사실이다. 내가 만든 비행기는 정말 멋지게 위잉 소리를 내며 오래도록 솟아오를 것 같았거든. 

그림책은 제목이 풍기는 딱 그대로의 부푼 기분을 안고 말 그대로 위풍당당 질주한다. ‘천하무적’, ‘우주최강’ 이런 단어 어때? 이런 건 못 참지, 우린 반사적으로 거기에 맞추어 호응해 주어야 할 거야.


내 작은 고무동력기는 네 명이나 태울 수 있고

심지어 배를 끌며 하늘을 날 수도 있을 거다

나쁜 사람은 비행기의 꼬리에 묶어 놓고 말이야

미운 사람에게는 실수로 부딧쳤다는 듯이 날려도 보고

더운 날에는 선풍기 대용으로 써도 될 거야

비가 오면 검정봉다리로 날개가 젖지 않도록 해야 해

천하무적 고무동력기는 오리배를 끌 정도로 힘이 센데

끄아. 큰일 났다 한강에 물귀신이 나타났어, 도망가자

사람들이 날라 다니는 놀이공원으로 피신해야겠어

대관람차에서 외계인을 찾아야 하는데 물귀신이 끝까지 따라오는군 

에잇 대관람차 프로펠러 공격!! 퓨슝퓨슝

천하무적 고무동력기 조종사 탄생!


아…코끼리 아줌마, 아기 코끼리네

….

나도 그만 가야겠다.

엄마 빨리 오셔야 하는데. 할 이야기 진짜 많은데.


재미있는 것은 그림책 전체를 두고 고무동력기가 나오지 않는 페이지가 없다. 그리고 페이지 어느 하나도 똑같은 형태의 고무동력기가 없다. 그림은 통일된 무언가도, 비슷한 색감도 없이 다들 제각각이다.  아이의 신나는 내면에 정해진 모양이 없듯 그림책은 삐뚤빼뚤 이를 대변해 주는 데에만 충실하다. 그러니 즐거울 수밖에, 더해서 이 책은 소리 내어 읽어줄 때 더 신난다. 돌돌돌돌, 랄랄랄랄, 감아라 감아라, 짝짝짝, 으아아악, 비상 비상! 도망가자. 공격! 빰빠라밤! 피슈 피슈 이런 감탄사라니 진중해서는 안될 말이지 않은가. ‘천하무적’이란 단어를 쓸 때에는 그에 걸맞은 추임새가 필요하다. 아니 읽는 중 자연히 그렇게 흥겨워진다. 사십오 도로 사선을 그리고 우주를 향해 안테나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즐거움이 언제까지나 지속되지 않을 것은 안다. 

노을처럼 붉은색 실루엣이 지면 이제 그만 집으로 갈 시간이다. 골목길은 저녁 먹으러 돌아오라는 엄마 아빠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아이들은 하나둘씩 어둠 속으로 흩어졌다. 그러면 달뜬 기분을 가라앉히고 흙투성이 옷을 털어내며 집으로 털레털레 돌아가는 길.

책을 덮으면 그런 옛날의 나로 잠시 돌아간 듯한 기분이 있다.

그 맘에 꾸밈이 없다는 것을 알아 차린 것은 그림책이 가져다준 짧지만 진짜 행복이다. 



<별책부록>

난장판 같지만 책이 마지막에 큰 힘을 받는 것은 전체를 하나로 그러모아 주는 맺음이 있기 때문일 거다. 

돌아가는 테마는 항상 생그럽다. 끝이 있다는 자명한 사실, 현실로 돌아오는 환기. 하지만 그렇기에 아릿하고 짧은 찰나를 집중해서 즐길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그러하기에 돌아가는 길이 그렇게 우울하지만은 않은 법이다. 

당신에게 돌아가는 길은 어떤 느낌인가?


 

Pat Metheny Group 팻 메시니 [Still Life (Talking)] 1987년 <Last Train Home>

https://youtu.be/iOnbeapXujo?si=_R5zGPitjUQ-bd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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