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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May 02. 2024

달치익쏴아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데

<난 토마토 절대 안 먹어> 로렌 차일드 저/조은수 역

‘편식’, 이는 육아의 여정에서 꽤나 골치 아픈 부분이다.

고루 영양가 있는 것을 먹이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커질수록 그 난이도는 지수식으로 증가한다. 맛있는 것만 먹고 나머지는 받아들이지 않으니, 부모가 입까지 숟가락을 가져갈 수는 있더라도 그 너머는 온전히 아이의 의지가 아닌가. 아는 지인은 어릴 적 부모님이 숟가락을 들고 쫓아다닐 정도로 편식이 심했다는데 현재 자신의 아이가 딱 그렇다고, 과거의 업보를 고스란히 돌려받았다고 우스개를 떤다.  

본 그림책은 편식에 대한 이야기이긴 한데, 그럼 이 책을 읽으면 어떤 특효라도 있는 것일까? 그럴 리가 없겠지. 교훈이나 의도를 가지는 그림책이 재미있을 리가 없다. 이 그림책은 편식에 대응하는 부모와 아이의 대결이 아니다. 여기에는 무지막지하게 편식이 심한 롤라가 나오고, 여동생보다 몇 살이 더 많을 뿐인 오빠가 나올 뿐이다. 즉, 아이와 아이의 게임 같은 이야기이다. 그림책이 상상력으로 가득하고 재미있다면 이 아이들이 보여 주는 참신함이 동력일 것이다.



여기 주장이 확실한 아이가 있다. 롤라는 정말 싫어하는 것 또한 확실하다.

롤라는 콩하고 당근하고 감자 하고 버섯 하고 스파게티 하고 달걀 하고 소시지는 안 먹는다. 꽃양배추하고 양배추하고 콩요리하고 바나나하고 오렌지도 안 먹고, 사과하고 밥하고 치즈 하고 생선튀김은 싫단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토마토는 절대 안 먹는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하아… 부모님들의 한숨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이 고집스런 편식을 어떻하나.

우리 어른들은 아이가 싫어하지만 고른 영양을 위해 흔히들 속임수를 쓴다. 고기를 먹이는 척하면서 브로콜리를 함께 밀어 넣는다거나, 싫어하는 맛을 희석시키기 위해 달콤한 꿀로 한 꺼풀 덮어버린다 거나 말이다. 하지만 이 오빠는 속임수 따위를 쓰지 않는다. 아마 그 배신감이 주는 반작용을 이미 아는 듯하다. 우선 그는 롤라의 성향을 완벽히 이해하고 있다. 아이의 지기 싫어하는 성격, 그리고 여동생이 좋아할 지점을 정확히 포착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는 아이만의 어울리는 방법이 있듯 오빠는 맞춤형 상상력으로 접근한다.

오빠의 재치를 통해 롤라가 싫어하는 음식들은 듣기만 해도 호기심을 자아내는 다채로움으로 탈바꿈한다. 저 우주에서, 저 바다 깊은 곳에서, 저 높은 하늘에서 길어 온 신비로운 음식들. 오렌지뽕가지뽕, 초록방울, 구름보푸라기, 바다얌냠이 로 말이다.

어린이 시인이 따로 없다. 이름이 부여되었을 때 새로운 생명을 얻게 된 음식들은 맛까지 딜라지나 보다. 롤라는 눈을 크게 뜨고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는데....


그림책은 시시각각 변하는 아이들의 표정을 따라가는 것도 재미있지만, 읽어주는 글 맛 또한 유독 흥겹다. 딸과는 꽤나 반복해서 이 책을 읽곤 했었는데 그때마다 줄곧 따라 하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이다. 이 진귀한 음식들을 직접 과장되게 발음하곤 서로 마주 보고 웃고.  

이런 재치 있는 번역을 읽어 나갈 때 문득 원문이 꽤나 궁금해졌다. 본 작품은 영국 작가 로렌 차일드의 작품이다. 분명 영어로 만들어진 어휘놀이에서 시작되었을 텐데, 번역이 제대로 이루어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결론적으로 깜짝 놀랄 만하게 성공적인 번역이었다. 원문의 뉘앙스와 내용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한국어로 발음할 때 아이가 즐거울 만한 어휘를 제대로 가져다주었다고 생각한다. 어떤 것을 지칭하는가 상상이 되시는지.


Orange Twiglets from Jupiter = 목성에서 나는 오렌지뽕가지뽕

Green Drops from Greenland = 초록나라에서 나는 초록방울

Cloud Fluff from the pointiest peak of Mount Fuji = 백두산의 제일 높은 봉우리에 걸려 있던 구름보푸라기

Ocean Nibbles from the supermarket under the sea = 바다 밑 슈퍼마켓에서 사 온 바다얌냠이

Moonsquirters = 달치익쏴아. (정말 한번 깨물면 즙이 흡족하게 쏴아아 나올 것 같지 않은가?)


오빠의 고군분투로 과업을 달성했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의 롤라는 가장 싫어하는 토마토를 앞에 두고 허를 찌른다. 한껏 오른 게임의 승자가 되기 위해 아이는 마지막 방어선에서 반격을 시도한다. 그런데 아이의 이 천진난만하면서도 능청스러운 표정이란…. 사전에 이미 계산이 되어 있었다는 투다.
 혹시 동생은 이 재미를 위해 지금까지 오빠와 기나 긴 편식 게임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두둥!!

아이가 아이를 가장 잘 이해한다는 명제가 유감없이 발현되는 이 그림책이 단지 흡족하기만 하다. 그리고 아이의 눈높이로 자세를 낮추어 다가갈 때 비로소 어른과 아이의 소통이 시작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다.




<별책 부록>

아이들은 저 우주 그리고 바다 깊은 곳 너머 상상의 나라에서 뛰어 노는 와중에, 부모라고 통칭되는 우리는 이 그림책에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아이의 언어를 잃어 버렸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괜찮다. 아이들 만하겠냐만 예술이란 어른의 방식으로 유희하는 행위이니, 우리는 얼쩡거리지 말고 다른 공간에서 또 다른 상상력으로 놀아야 겠다.

아이들과 달리 저 아득한 우주, 너른 대양을 떠올릴 때 난 좀 더 차분하게 된다. 멜랑콜리하기도 하고 슬픔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 식대로 곡을 연결할 수 밖에. 삶의 바다를 여행하며 찾고 싶은 열망을 대양의 포셀리나에 담아 몽환적이고도 긴장감 있게 해석하는 곡이 떠올랐다.

이것은 어른이 상상하는 방식이다.


Smashing Pumpkins 스매싱 펌킨스  [Mellon Collie and the Infinite Sadness] 1995년 <Porcelina of the Vast Oceans>

https://youtu.be/Fe9dTVbAtcw?si=QbWtiknxCNL4Lh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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