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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Aug 12. 2023

내 머릿속에 가위가 있을 줄이야.

Obituary 오비츄어리 [Cause Of Death]

시끄러운 음악에 대한 이야기이며 불편함이 있으신 분은 바로 좌측 상단의 뒤로 가기 버튼을 눌러 주시기 바랍니다.

 

 

생산자도 아닌 일개 소비자인 내가 머릿속 자기 검열을 고민할 줄이야.

 

내게 일용한 양식이 된 음악에 대해 얘기하고자 했을 때 나름의 소박한 리스트가 있었다. 그리고 나는 여기서 제비 곶감 빼먹듯 손 가는 데로 밸런스를 맞추어 하나씩 내어 놓으면 그만이다.

그런데 구독자가 한 명 두 명씩 생겨나기 시작하자 마음속에 약간의 주저가 드리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일개 소비자인 내가 거창하게 갖다 쓸 단어가 아니지만 분명 이것은 내 머릿속의 가위였다.

여기서 소개하는 음악들은 온 삶의 시간 동안 나의 자아를 형성시켜 준 참된 친구들이다. 소중한 것을 두고 나 자신을 속이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기 때문에 내어 놓는 것에 일부러 젠체할 것도 없고 부풀리지도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지만 이런 소리가 때때로 머릿속에서 들려오곤 했다.

‘니가 편애하는 것들은 조용히 방구석에서 혼자 좋아하면 되지, 그 정도 수위는 너무 과하지 않냐?’

심지어 나는 구독자 수란 허상과 라이킷의 질량을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주저 자체를 한다는 게 참 마뜩잖았다.


그래서 각을 좀 잡고 일신하여 Slayer 슬레이어 에 대해 쓰게 되었는데. https://brunch.co.kr/@b27cead8c8964f0/41

….열렬한(?) 호응과 함께 구독자가 더 늘어버렸다. 우워어어, 이 뭐 어쩔….


결국 내가 두 가지 큰 착각을 하고 있었던 게다.

첫째, 예술이란 결과물을 바라보는 이들이 얼마나 열린 마음을 가지고 대상을 대하는지를 내가 폄하했다는 것이다. 내 혼자만 잘 난 거지. 부끄러운 일이다.

둘째, 브런치는 글쓰기를 기반으로 하는 플랫폼인 것이다. 자신의 표현하기 어려운 내면을 글자라는 매개체를 통해 진솔하게 담아내면 되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행위는 브런치에서 부차적인 것이지 메인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두 가지 오해를 해소한 후 내가 어깨에 걸고 싶은 음악에 대해 좀 더 편하게 리스트에 존재하는 글소재를 고를 수 있었다.

나는 꾸준히 리스트가 다하기 전까지 잘 벼려 내어놓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리고 그 행위는 나에게 삶의 한 켠 정리의 역할을 해 준다.




이런 경지까지 가도 음악이 괜찮을까 자기 검열의 가위 따위는 저리 가라고 외칠 수 있는 부분에서 Death Metal 데스 메탈이 존재한다.

극단의 경지에 위치한 한계를 한 차례 더 몰아치는 곳에 Grind Core 그라인드 코어, Black Metal 블랙 메탈이 존재한다.

영화로 보자면 공포 영화, 슬래셔 물, 고어 장르가 이와 어깨를 나란히 한다고 보면 좋을 것 같다.

호불호가 극명하게 존재한다. 그러나 그 존재 이유 또한 명확하고 이를 좋아하는 이들 또한 확실하게 분포하고 있다. 사실 빡실 것 같아도 전위 음악보다는 훨씬 친절한 음악이 아닌가, 생각 외로 쉽게 접하기에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지 듣기에 심히 좋은 사람이 듣는 것뿐.


이 장르를 다 좋아한다고는 말 못 하겠다. 확실한 취향으로 보자면 느리게 엄습하는 공포물을 좋아하기 때문이다. 그냥 대놓고 칼부림하는 것은 컬트적인 작품은 인정하지만 그 이하는 크게 감흥으로 다가오지는 않네.

그래서 Obituary 오비추어리 를 편애한다. Death Metal 종류 중에서도 느리고 묵직한 분위기에 순수한 공포 그 자체에 몰입한 집단으로 이만한 이들이 없다.

Death Metal 음악에서의 가사는 그 의미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목소리로 표현하는 분위기를 받쳐주는 음률에 불과할 뿐이며, 기타, 드럼, 베이스와 함께 또 하나의 악기 형태로 표현이 된다.

50대 중반인 현재도 변함없이 정확한 죽음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John Tardy 존 타디 아저씨의 아우라는 그래서 이 음악 씬에서 크게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Death Metal의 클래식이라고 일컬을 만한 그들의 1990년 작 [Cause of Death]를 접하며 우리는 어떤 느낌을 가지는가?

우선, 우리는 공포영화를 보는 것을 즐기듯 인간이 은밀하게 호기심을 가지고 있는 어두운 무엇에 대해 순수한 마음으로 들여다볼 수 있지 않을까?

골드문트가 걷고 걸어 나르치스를 만나게 되듯 극단은 서로 마주 보게 된다고 거창하게 허세를 부려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다 거두절미하고 음악 자체가 주는 소리의 질감이 다른 여타 장르에서 느껴볼 수 없는 새로운 카타르시스를 제공해 준다는 것이 본 앨범에 손이 가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될 것이다.

전체 분위기를 조율하는 낮은 템포의 드러밍, 꽉 채운 트윈 기타가 표현하는 짙은 노이즈의 벽, 순수하게 하나의 목적으로 발현된 인간의 목소리. 묘지에서 피어오르는 기타 리프의 향연.

그 연출은 과녁을 쏘아 맞추듯 적절했고 새로운 장르를 발전시키는데 좋은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누군가의 청량한 시간을 보장해 주고 있다.

이런 음악들이 영향이 될 수 있었을까 모르겠지만 이후 나는 극단적인 어떤 것, 난해한 어떤 것을 접할 때도 이를 무시로 보지 않고 그 너머의 어떤 것을 보려는 노력을 했던 것 같다.

그 마음가짐은 적어도 삶에서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는 법을 육감적으로 터득하는 능력을 키워 주었으며, 이상한 것을 접하더라도 그 이유를 한 번이라도 더 생각해 보려는 열린 자세를 가지게 했다.

그리고 이를 통해 느끼게 된 수많은 예술적인 가치들은 삶에 크나큰 기반을 만들어 주었으니 평생 고마워할 만하다.


 반으로 쪼개는 것을 얘기할까, 인간 껍데기를 얘기할까, 죽음의 원인에 대해 얘기할까 하다가 안의 것을 까뒤집어 놓겠다는 다짐을 선택하고는 내 머릿속 가위에 대한 이야기를 조용히 마감하고자 한다.



Obituary [Cause of Death] 1990년 <Turned Inside Out>

https://youtu.be/HMkWH7S2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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