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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ff Jung Dec 25. 2023

미안해, 내 목소리에 가리운 속삭임들

우리동네 사람들 [하나]

동물원, 여행스케치, 김광석 등을 얘기할 때 교집합으로 겹치는 정서 같은 게 있지 않나?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까. 소박한 우정, 젊음의 흔쾌함과 더불어 영혼을 잠식하는 불안감, 동아리방의 낙서장, 내가 살던 언덕배기 동네, 서로 떠나보내고 떠나는 서투른 감정, 그러면서도 다시 시작하고 싶은 다짐, 손 편지로 눌러쓴 뜨거움.

20대, 30대를 지나오면서 가졌던 불안함과 세상을 향한 다짐이 뒤섞인 감정은 그렇게 아름다운 곡들로 남겨지게 되고, 우리는 함께 나이를 먹는다. 재미있는 것은 40대가 되어도 50대가 되어도 그 감정들은 여전히 함께 뒤따라 온다는 것이다.. 세상에 조금 노련해졌을 뿐, 결코 추억으로 뒷켠에 두고 올 수 없는 성장통.


<노래를 찾는 사람들>이 있고 <낯선 사람들>이 있는 중에 여기 <우리동네 사람들>이 있다.

강승원을 주축으로 여러 동료들을 모아 프로젝트성으로 만들어졌던 <우리동네 사람들>은 1994년 [하나]라고 첫 번째 앨범을 발표하고는 더 이상 두 번째 결실을 맺지는 못하고 세상 속에서 사라져 갔다. 하지만 그 유일한 첫 번째 울림이 진실로 보배롭게 다가왔으니…. 가슴속 깊이 품고 살아가며 한 번씩 꺼내 볕 잘 드는 때 말리곤 한다. LG미디어 초창기 때 문대현 (‘광야에서’의 그가 맞다)이 기획해서 짝짜꿍 만들어 내었으니 신기하기도 하다. 삼성전자가 발매한 플레인스케이프:토먼트 한글판과 함께 대기업이 칭찬받을 역사적인 두 가지 꺼리에 들만하다. 강승원은 이후 KBS 각종 음악프로그램에 음악감독으로 있으며 공중파 방송에서도 음악방송의 격을 높여 나갔으니 그가 일군 대한민국에서의 토양이 작지는 않겠다.


앨범은 대다수 강승원이 만든 곡과, 동물원 출신 유준열이 만든 두 곡해서 총 열 곡이 보석처럼 자리하고 있다. 노래 부르는 후배, 동료들과 함께 서투르게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이야기들을 솔직하게 세공해 놓았다.

세상으로 무작정 내던져진 일상, 무료한 시간들, 다 어디로 갔을까, 빚쟁이처럼 어김없이 돌아오는 나이 먹기, 술에 취한 먹먹함, 서로 상처 주기, 그럼에도 첫아기의 울음소리처럼 어두운 밤을 밝히며 살아가는 우리 모습들.


출근길 만원 버스 창가자리에서 차창 밖 여자들만 세어보고

매일 이별하며 살고 있구나

늦은 밤 큰 강을 건널 때 너무 아름다운데

돌아오는 길목에서 마주친 꿈을 꾸며 사는 사람들

지금의 내 나이는 서른다섯 살. 서른에다 다섯을 더한 그런 나이

미안해, 내 목소리에 가리운 속삭임들까지도

가진 것 없는 마음 하나로 난 한없이 서 있소

야~! 우리 동네 보인다.

그대를 그리며, 그대를 부르며 떠나가리라

멀리 있는 친구에게 온 편지, 무작정 떠나보는 여행, 집으로 오는 차표 한 장, 살아가는 모습들


그런 다르지 않을 우리동네 사람들의 모습을 대변해서 노래하고 있다. 앞서 얘기한 음악그룹들의 그런 정서에 다름 아니다.

곡의 편곡은 그러나 결코 소박하지 않다. 재즈스러운 색채로 정장을 제대로 차려입은 곡들은, 아카펠러의 화음까지 덧입혀 오히려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수준급의 연주인들이 함께 한다. 신이경의 물방울 같은 피아노는 물론이며, 특히 이주한의 플루겔 혼은 앨범 전체에서 감초처럼 쓰인다. 예를 들어 <뜸드 뜸드>에서 하늘로 쏘아 올려지는 그의 카리스마 같은 것 말이다.   

앨범에는 한눈에 반가운 곡들도 눈에 띈다. 김광석이 부른 명곡 <서른 즈음에>를 원저작자 강승원의 목소리로 들어볼 수 있다. 서른 즈음에는 왜 마흔, 오십 즈음에 들어도 비슷한 울림을 주는 것인지… 다 00즈음에로 해석하게 된다.

동물원 1집에 수록되었던 유준열 곡 <말하지 못한 내 사랑>은 두 여성의 빛나는 하모니로 처연함이 배가된 버전을 들어 볼 수 있기도 하다.

심심한 얘기, 무뎌지는 시간, 어린 시절 개구장이의 꿈, 변하지 않는 무엇, 가슴을 털어놓는 환호성, 부서지는 해변에 서 있는 다짐... 9곡의 이야기가 마무리되면 앨범은 마지막 곡에 이르러 <우리동네 사람들>로 지금까지의 감정들을 하나로 그려 모으고 수줍은 희망을 노래하고 있다. 그래도 이렇게 살아가는 이 시대 사람들을 위한 작은 연서. 연말에 꼭 한 번은 찾아 듣게 되는데, 마침 시기가 그러하여 앨범 소개를 위한 곡으로 정하려다 그만두었다. 10번째 곡까지 이르는 정거장이 있다 보니 전주 없는 소개는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단지 주사위를 굴려서 한 곡을 선택해도 좋을 것이다. 그만큼 한곡 한곡이 훌륭하다.

글을 쓰며 오랜만에 몇 번을 반복해서 리피트 해 보니 내외부의 온도차로 물방울이 맺힐 지경이다.

시린 시간들, 따수운 마음은 기실 내 안에서 피어나게 도와주었으니.



우리동네 사람들 [하나] 1994년 <말하지 못한 내 사랑>

보컬 : 고은희, 김혜연

https://youtu.be/WHv-z7ugGyA?si=nYNpk477pcDc06c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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