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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니 Dec 22. 2022

기억하라! POPPY

이제 곧 크리스마스이다. 크리스마스의 의미는 축복과 희망 그리고 사랑으로 압축될 듯하다. 이런 크리스마스의 의미가 의외의 곳에서 나타난 사건이 하나 있다. 그 사건은 축복, 희망, 사랑과는 거리가 먼 치열한 전쟁터에서 발생하였다. 자 그럼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4년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날로 거슬러 가보도록 하겠다.



(제1차 세계대전 때 참호의 모습 / 사진=네이버블로그 제곱도약)



전쟁 발발 6개월이 지난 벨기에 플랑드르(Flandre) 지역에 독일군과 프랑스, 영국 연합군이 참호전으로 서로 대치하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의 특징은 참호전을 통한 무차별한 '소모전'과 '장기전'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날도 어김없이 호루라기 소리의 신호에 맞추어 참호밖으로 돌격하면 상대편의 기관총에 쓰러질 공포에 휩싸여 있었다.



그런데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갑자기 독일군 진영에서 '고요한 밤 거룩한 밤'이라는 성가가 울리는 것이 아닌가. 이 노래 이후 영국, 프랑스 연합군도 성가를 부르면서 서로 노래로 화답하는 상황이 일어났다. 최전선에서 병사 수천 명이 노래를 부르면 어떤 합창단보다 동화와 같은 분위기가 연출되었을 것이다.




#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크리스마스 이브날에 이런 일들이 전선 곳곳에서 일어났다. 어떤 성악가 출신 병사가 참호밖에서 캐롤을 부르면 양측 모두 따라 부르기도 했다. 독일 병사가 총 대신 전나무 가지를 들고 프랑스어로 '메리 크리스마스'라고 외치며 다가 오자 양측 병사 수백 명이 중간지대에 나와 서로 인사하는 초현실적인 일도 일어났다.



서로 담배와 초콜릿, 술을 나누며 교환하였다. 몇 시간 전만에도 서로 죽이려고 아등바등하던 사이인데 이제는 서로 안부를 물으며 선물교환을 하는 것이다. 이는 크리스마스라는 공통분모가 있어 가능했으리라.



결국, 양측 군 지휘부는 난리가 났다. 전쟁에서 승리가 목적인 군인이 상대방에게 호감을 표한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이라 여겨 군 사령부는 부대 재배치 및 다가오는 적군은 무조건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리게 된다. 더 이상 호의를 베풀 일이 사라진 것이다.




# 기억하라 POPPY(포피, 양귀비꽃)



짧았던 기적의 시간은 지나가고 다시 참혹한 참호전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다시 전쟁이라는 악마가 만들어 놓은 맷돌에 서로를 넣고 갈게 된다. 서로의 증오와 살의가 결국 인간 본성은 아닌 것이다.



이후 제1차 세계대전이 종식된 뒤 위 사건이 일어난 플랑드르의 황폐한 들판에서 제일 먼저 핀 꽃이 양귀비꽃(poppy)이었다. 그래서 영국에서는 이 양귀비꽃을 상징화하여 제1차 세계대전의 희생자를 기리기 위해 매년 11월이면 쉽게 볼 수 있게 되었다. 심지어 11월이면 프리미어 축구선수들도 유니폼에 새겨서 경기에 임한다.


(리시 수낙 영국 총리가 지난 11월에 제1차 세계대전 추도식에 참석하는 모습. 뒤에 양귀비꽃(poppy)이 보인다. / 사진=조선일보)



결국, 기억은 국가 공동체가 지켜야 할 본질인 것이다. 기억을 상실하면 똑같은 일이 반복될 뿐이다. 그러므로 기억은 미래 세대에게 전수해야 할 중요한 자산이 된다. 우리는 기억하는 방법으로 축하나 추모 또는 기타 표현으로 나타내는 활동을 통해 소중히 보관해야 할 것이다. 



크리스마스 때 잠시 전쟁 속에서 핀 인간의 원래 모습은 기억할만한 가치가 충분하다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 전쟁의 참혹함과 더불어 인간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던 사건을 기억하고자 오늘 글을 적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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