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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선배 Oct 20. 2022

영업사원, 전사가 되세요.

회사가 전쟁터면 PTSD는 어쩌죠? 0화

“여러분들은 전사입니다. 영업현장에서 싸우는 전사가 되세요.”


단상 위의 중년 신사는 우리를 전사라고 했다. 신사의 정체는 영업본부장님이었다. 새하얀 백발에 잘 다려진 회색 양복, 금테 안경은 텔레비전에 나오는 임원과 똑같았다. 나는 막 신입사원 연수를 끝낸 참이었다. 대기업 뽕에 한껏 취해 있었다. 전사라고 듣자 전사처럼 박수를 쳤다. 본부장님처럼 되고 싶었다. 전쟁터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장수가 되고 싶었다. 그럴 수 있을 거라 믿었다.


본부장님이 퇴장하자 인사팀 직원이 들어왔다. 전사는 아니었다. 하얀 얼굴에 깔끔한 복장을 한 남자였다. 남자는 오늘 일정이 끝났다고 알려 주었다. 다음 주부터는 배치받은 부서로 출근하라고 했다. 다만 집에 가기 전에 한 가지를 요구했다.


“각자 부서장님께 전화해서 미리 인사 한번 하세요. 전화번호는 직원 전용 어플에서 검색하시면 돼요. 아마 다들 기다리고 계실 겁니다. 전화 한 통 드리고 불금 즐기세요.”


핸드폰을 꺼내 어플에 접속했다. 배정받은 부서를 검색하니 낯선 얼굴들이 차례로 떴다. 직급 순으로 나열된 것 같았다. 꼭대기에 있는 얼굴을 클릭하니 전화번호가 나왔다. 통화 버튼을 누르고 신호음이 가는 동안 목을 가다듬었다. 아아, 안녕하십니까? 아아.

벨소리가 3번 울린 뒤 전화가 연결됐다. 나긋나긋한 서울 말씨의 중년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차분하지만 묘하게 신경질적인 말투였다. 심호흡을 하고 준비한 인사를 뱉었다.


“안녕하십니까. 다음 주부터 출근하게 될 신입사원 OOO입니다. 미리 인사드리고 싶어서 전화드렸습니다.”

“아~ 맞아. 다음 주에 신입사원 온다고 그랬지? 그래요. 주말 잘 쉬고 월요일에 봐요.”

“네 감사합니다. 주말 잘 보내십시오.”

“그래요. 각오 단단히 하고 와요.”


본부장님은 전사가 되라고 하고, 팀장님은 각오하라니. 내가 일할 곳은 전쟁터가 맞나 보다. 월요일을 생각하니 살짝 걱정이 됐다. 온갖 상상을 펼치려 할 때 동기 한 명이 어깨를 툭 쳤다.


“형,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금요일인데 맥주나 한잔 해요. 근처에 양꼬치 죽이는 데 있어요.”


동기의 이름은 민성이었다. 민성은 서울 영업본부에 배치받은 8명의 동기 중 1명이었다. 키가 크고 성격도 시원시원해 영업에 딱 맞아 보였다.

우리는 인재개발원을 나와 역 방향으로 갔다. 동기를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니 양꼬치집이 나왔다. 테이블이 4개쯤 있는 조그만 가게였다. 테이블에 앉자마자 양꼬치 2인분에 칭다오를 주문했다. 첫 잔을 비운 뒤에 동기가 말을 꺼냈다.


“형은 지점이죠? 개인마트 담당. 진짜 힘들다던데.”

“그러게. 근데 왜 그렇게 힘든 거지? 할인점이랑 뭐 다를 게 있나?”

“개인이 하니까 그렇죠 뭐. 이마트, 롯데마트는 점장도 월급 받잖아요. 근데 여기 사장들은 월급쟁이가 아니니까요. 버는 족족 자기 돈이잖아. 물건값 조금만 깎아도 주머니가 두둑해지는데 영업사원 들들 안 볶는 게 이상한 거죠. 그래서 실랑이가 많데요. 100원이라도 더 깎고, 공짜 물건 하나라도 더 얻어내려고 하고. 말 안 들으면 물건 다 빼라고 하고.”

“물건을 다 빼라고 해?”

“자기 매장인데 뭔들 못하겠어요. 대기업 할인점이야 본사 지시대로 하는 건데, 개인마트는 그런 거 없잖아요. 행사, 가격, 진열 다 자기들 맘이지. 수 틀리면 물건 다 빼라고 으름장을 놓는다던데. 프랜차이즈 통닭 집하고 동네 통닭집 차이 아니겠어요? 프랜차이즈는 본사에서 정해주면 그거 써야 되잖아, 좋든 싫든 간에. 동네 통닭집은 다르지. 납품업체 맘에 안 들면 안 받으면 그만이에요.”

“아아 이해되네.”

“여하튼 열심히 해야죠. 어떻게 들어온 회산데. 각오 단단히 합시다. 건배!”


짜샤이를 안주로 맥주 한 병을 비웠다. 술자리가 무르익자 꿔바로우를 추가했고 테이블 위에 맥주를 하나씩 늘려갔다. 한참을 얘기하던 중에 나와 동기의 핸드폰이 동시에 울렸다. 꺼내보니 영업지원팀에서 문자가 와있었다.


‘월요일 7시 10분까지 본사 10층으로 오시면 됩니다.’

우리는 문자를 보고 고개를 갸웃했다. 동기가 먼저 입을 열었다.

“7시 10분? 출근 시간 이거 맞아요?”

"그러게. 초장부터 좀 힘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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