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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기복이 Feb 29. 2024

[도심 속 힐링 장소] 봉은사

어릴 때부터 절에 익숙했다. 어른들을 따라 절을 많이 다녀서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우습게도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내가 절에 가는 이유는 절밥을 먹기 위해서였다. 절에서 먹는 공양이 그렇게 꿀맛일 수 없었다. 반면 성당이나 다른 데서 먹는 밥은 먹기도 싫고 꽤 불편했다. 먹고 체할 것 같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잠 희한하다. 하여간에 그만큼 절이 나에게 편하다는 뜻이겠거니 한다. 그래서 어디 여행지를 가서도 절이 보이면 한 번쯤은 꼭 들어가 본다. 


몇 년 전에 <나 혼자 산다>라는 프로그램에서 기안 84가 <봉은사>라는 절에 간 적이 있다. 방송으로 보기에도 절이 엄청 커서 당연히 산속에 있겠지 했는데 강남 한복판에 있다는 것을 알고 깜짝 놀랐다. 볼 것도 많고 접근성도 좋으니 안 가볼 이유가 없었다. 그때부터 꼭 가봐야지 했는데 그 원을 이제야 이룰 수 있었다. 



봉은사 입구

코엑스 건너편에 있는 봉은사 입구. 

코엑스와 그 주변 호텔들의 화려함에 매료되어 있을 때 뒤를 돌아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진다. 도심의 절 치고는 굉장히 웅장하다. 봉은사에 의해 강남이 압도당하는 느낌이다. 주말이라 그런지 차들로 굉장히 붐비고 관광객들도 많았지만 그럼에도 그 고고한 분위기를 잃지 않고 있었다.














입구를 지나면 바로 옆에 공양간이 있다.

입구를 지나면 바로 공양간이 나온다. 식당처럼 운영되고 있다. 다른 절처럼 공짜는 아니다. 비용도 시중 식사 비용과 비슷한 선에서 형성되어 있고, 혹은 조금 저렴한 정도인 것 같다. 그런데 특이한 것은 돈을 내더라도 아무 때나 가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공양시간이 정해져 있다. 

점심 : 11-14시
저녁 : 16:30 - 18시

메뉴는 몇 가지 없다. 블로그에서 찾아보기로는 짬뽕 순두부가 맛있다고 한다. 가격은 만원으로 공양간 메뉴 중 가장 비싼 축에 속한다. 사실 나도 순두부를 먹고자 갔는데 아쉽게도 운영시간이 아니라 먹지 못했다. 다른 것들은 국수류가 많다. 한 끼 식사가 될 정도의 양인지는 모르겠고, 봉은사를 둘러보기 전 가볍게 요기 정도 하고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 왜냐면 절이 어마어마하게 넓기 때문에 다 둘러보다 보면 에너지 소모가 심하다. 밥을 먹어도 금방 꺼질 듯하다. 아마도 그런 점을 고려해 공양간이 입구에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지금까지 내가 가봤던 절들 중 공양간이 입구에 있는 절은 봉은사가 처음이었다.




공양간 옆에는 바로 불교 용품점이 있다.

이곳이 바로 기안 84가 다녀왔던 불교용품점이다. 공양간 바로 옆에 위치해 있다. 꽤 크게 자리 잡고 있고 안에도 여러 가지 기념품들이 많다. 들어가면 가장 먼저 찹쌀이 눈에 띈다. 쌀이 한가득 압도적으로 쌓여있다. 불교 용품이라 당연한 것이겠지만 가격대가 꽤 있다. 워낙 기념품에 관심이 없는지라 딱히 구매욕구를 불러일으키는 물건은 없었지만 절복이 눈에 띄었다. 편의상 절복이라고 부르겠다. 정확한 용어는 모르겠다. 굉장히 따뜻하게 편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만큼 굉장히 비싸보여서 그냥 지나쳤다. 그리고 다음으로 눈에 띄었던 것인 인연팔찌. 저 팔찌를 차면 헤어지지 않고 결실을 맺는다고 쓰여 있었던 것 같다. 과연 진짜 그럴까. 아마도 누군가 있었다면 속는 셈 치고 사봤을 것 같다. 그리고 디자인도 불교 팔찌 답지 않게 번쩍번쩍하고 예뻐서 결실을 맺을 누구도 없지만 사고 싶을 정도였다. 



입구를 지나서 법당으로 가는 길

정말 정말 길다. 그리고 탁 트여 있어 공간감도 굉장하다. 옆으로는 키 큰 빌딩들 사이에 소나무들이 줄지어 있다. 꽤나 이색적인 풍경이다. 안 어울릴 줄 알았는데 은근히 도시와도 잘 어울린다. 도심 속의 힐링 장소라는 말이 괜히 붙은 게 아니구나 생각한다. 서울의 공기는 당연히 안 좋은 줄 알지만 적어도 이 구역만은 좋은 공기가 감돌 것 같은 기분이다. 그래서 마음껏 호흡해 본다.




불교의 화려함이란 게 이런 것인가


연등축제를 하는 줄 알았다. 순간 어라? 부처님 오신 날이 근래인가? 했다. 그런데 평상시에 이렇게 되어있는 것을 보니 항시 이렇게 연등을 걸어놓는 것 같다. 밤에는 불도 켜질 것 같은데 정확히는 모르겠다. 불교의 화려함을 다시 한번 느낀다. 미술관에 와 있는 듯하다. 관광객들에게는 이곳이 포토존인 것 같다. 다들 자리를 뜨지 못하고 사진을 남기고 있었다. 사실 나는 절에 많이 다녀서 연등이 익숙했지만 이 정도 규모는 본 적이 없다. 역시 큰 절은 다르구나라는 것을 또 한 번 느낀다. 이걸 어떻게 다 만들었을까 속으로 그저 감탄만 하다 왔다.



봉은사의 정취

시조 하나 읊어야 할 것 같은 정취다. 아니 절경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하다. 사극 드라마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서 있는 듯하다. 사실 어떤 건물이 무엇인지도 모를 정도로 수많은 목조 건축물들이 있다. 아쉽게도 현판에 다 한자로 적혀 있어 읽어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제각기 이곳에서 꼭 필요한 역할들을 수행 중이라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어느 것 하나 노는 건물은 없어 보였다. 



봉은사의 랜드마크

봉은사 미륵대불이다. 아마 봉은사의 랜드마크인 것 같다. 정말 아쉽게도 이곳까지 올라가 볼 에너지가 없어 아래에서 사진만 찍었다. 사람들이 이곳에 가서 소원도 빌고 기도도 많이 하는 것 같다. 그런데 내가 갔을 때는 그렇게 많은 인파가 있지는 않았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 것도 있는 것 같다. 다음에 가면 저곳까지 꼭 올라가 보리라 다짐했다. 



내려오는 길에 봤던 북과 종


유튜브로 송광사 법고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수십 번은 본 것 같다. 그 북소리에 매료되어 송광사를 가보고 싶었을 만큼 과히 충격적으로 멋있었다. 좀 더 과감하게 표현해 북소리에 홀린다는 말이 맞는 것 같다. 이 말로는 부족하지만 표현할 말이 딱히 생각나지 않는다. 그래서 이제 절에 가면 북을 유심히 살펴본다. 물론 봉은사의 북은 송광사만큼 크지는 않지만 눈길을 사로잡기에는 충분했다. 저 북을 보면서 나는 뜬금없이 '황진이'가 생각났다. 왠지 모르게 황진이가 쳤을 것 같은 북이다. 송광사의 법고보다는 작지만 화려하다. 그래서 분명 누군가가 자신의 솜씨와 기술을 뽐내기 위해 쳤을 것 같다.




나는 고즈넉한 분위기를 좋아한다. 물론 도시의 편리함과 네온사인도 좋아하지만 매번 그런 곳에만 있다 보면 마음이 많이 분주해지고 가라앉지 않는다. 그래서 가끔 이런 곳이 생각난다. 그런데 매번 멀다는 이유로 시간도 내지 못하고 가지도 못한다. 물론 봉은사도 서울에 살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가까운 거리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서울에 이런 사찰이 있다는 것이 나름 만족스럽고 좋다. 게다가 주변에 코엑스와 쇼핑센터 등 볼 곳도 많고 먹을 곳도 많으니 어찌 보면 일석이조다. 분위기를 바꾸고 싶을 때 뒤만 살짝 돌아보고 걸음만 몇 발자국 옮겨도 바로 다른 세상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 말이다. 절이 워낙 크다 보니 한 번에 다 보지 못했다는데 다음에 가면 공양간에서 밥도 먹어보고 차도 마시고 절도 더 돌아보며 봉은사의 정취를 마음껏 더 깊숙이 즐기고 와 보고 싶다. 봉은사 2탄을 이곳에 쓸 수 있기를 고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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