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vert
MBTI 가 유행이다. 요즘은 통성명을 MBTI로 하는 시대이다. 라떼는 혈액형으로 물어봤었는데.... 혈액형보다는 MBTI 가 좀 더 과학적이고 신뢰도가 높은 것 같다. 나는 비교적 MBTI 검사 결과가 일정한 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몇 번을 더해도 결과가 크게 다르지 않다. 달라봤자 T와 J 가 살짝씩 바뀔 뿐이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어렸을 때 나를 생각해 보면 누가 봐도 'E' 였다. 동네방네 마트를 다니며 코너마나 인사하고, 시장에 가도 나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아주 활달하고 그늘이 없었다. 그런데 자라면서 이렇게 그늘이 많고 표정이 없는 사람이 될 줄은 몰랐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는 전형적인 'I'가 되어 있었다. 아니, 어쩔 때는 지킬 앤 하이드 같기도 하다. 1인 2역을 하라 그래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직장인들에게는 원래 여러 가지 페르소나가 있다. 직장에서의 모습이 다르고 직장 밖에서의 모습이 다르다. 어느 시점부터인가 나는 화가 많아졌고 짜증이 많은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직장에서는 '고분고분 함'을 택했다. 말 잘 듣는 사람으로 여겨지는 것이 사회 생활 하기에는 편하기 때문이다. 적어도 그렇게 하면 나에게 태클 거는 사람의 수는 줄일 수 있다. 말 같지 않은 말에도 영혼 없이 적당히 끄덕여준다. 대쪽 같아야지만 지조와 절개를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너무 대쪽 같다가 베어져 속을 다 보이게 되는 것보다는 적당히 구부러지며 그 속을 끝내 보이지 않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한다.
내성적 직장인이 된 이유
공격의 대상이 되기 싫었다. 드라마에서 자신의 주장을 하고 그것을 관철시키려는 주인공의 모습을 많이 본다. 한치의 물러섬도 없다. 그리고 그 결말은 성공이다. 그런데 현실에서 그러면 그 사람은 모두에게 '공격의 대상' 된다. 위계질서가 뚜렷한 조직 사회에서 내가 우뚝 서야겠다는 그 마음만큼 위험한 것도 없다. 입 바른 소리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말을 아끼는 것이 더 중요하다. 괜히 내성적인 직장인이 된 것은 아니다. 사실 모난 돌이 파도와 바람에 숱하게 깎인 것이다. 엄청난 풍화작용으로 인해 둥근돌이 된 것도 있다. 사회에서 모난 돌로 인정받는 사람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모가 난 정도가 아니고 아주 날카롭고 예리한 구석이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사회에는 그 창으로 뚫을 수 없는 방패 같은 것들이 정말 많다.
비단 공격을 피하기 위해 내향성을 선택한 것은 아니다. 어쩌다 보니 저절로 그렇게 된 것도 있다. 둥글어진 돌은 숨기 편하다. 어릴 때 말이 많고 잠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던 나는 말도 없고 움직이기 싫어하는 사람이 되었다. 쉬는 날이면 전기장판을 틀고 침대에 몸을 누이는 것이 가장 좋다. 손가락 하나 까닥하기 싫다. 겨우 할 수 있는 것은 침대 헤드에 기대어 이렇게 타자를 치는 정도이다. 아무하고도 말하고 싶지 않고 아무 약속도 잡고 싶지 않다. 말 한마디 아껴 에너지를 절약하는 것이 생존에 더 이득이다. 물과 전기만 절약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나의 정신과 감정도 절약이 필요하다.
마음의 병?
얼마 전에 마사지기를 세트로 샀다. 손과 종아리 마사지기다. 그것들 없이는 못 사는 삶이 되어버렸다. 하루의 마지막에는 꼭 그것들이 필요하다. 지칠 대로 지친 일상에 그나마 안식을 주는 건 사람이 아니라 마사지기들이었다. 괜히 헛웃음이 나온다. 무사 무탈하게 직장생활을 이어나가 20년 이상 장기근속을 하는 사람도 있다. 아니 꽤 많다. 항상 볼 때마다 너무 대단하다고 말한다. 적어도 나는 그러지 못할 것 같으니 말이다. 나는 깡으로 버티는 편이다. 그런데 그 깡도 이제 연료가 다 되었는지 슬슬 군데군데 이상이 생기기 시작한다. 마음이 병일까 몸의 병일까 모르겠다. 스트레스로 인한 건가, 아니면 진짜 '질병'이란 것이 생긴 걸까 헷갈렸다. 물론 병원에서는 정확한 '질환 명'을 이야기했지만 그럼에도 스스로 헷갈린다. 쉬면 괜찮기 때문이다. 사실 그렇게 컨디션이 더 떨어지고 난 후로 쉬는 날 더더욱 밖으로 나가지 못한다. 체력이 심하게 떨어졌기 때문이다. 직장에서도 딱히 신경 쓸 일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나의 짠내 나는 에너지 절약이 더 심해졌다.
마지막까지 무탈하게
내성적이 되었다는 것은 부정적인 면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사람은 시간에 따라 익어간다. 생각이 많아지고 깊어지면 자연스레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기 때문에 어느정도 내성적이 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누군가는 직장생활에 지쳐 자신의 본모습을 잃었다고 상심에 잠긴 사람들을 볼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게 꼭 불행은 아닐 수 있다. 그게 자연스러운 것이라 생각한다. 어쩌면 사회에 잘 적응하고 있다는 뜻이 될 수도 있겠다. 1인 자아가 너무 강한 사람이 적응하지 못하고 튕겨나가는 모습도 많이 봤다. 하지만 오해는 말았으면 좋겠다. 비도덕적인 일에도 적당히 타협하며 사회생활을 하라는 말은 절대 아니다. 그것은 내가 제일 싫어하는 모습이다.
직장 생활뿐만이 아니라 사람이 모인 집단생활은 어디나 비슷하다. 말은 하는 것보다는 아끼는 것이 낫고, 들이대는 것보다는 참는 것이 낫고, 적을 만드는 것보다는 그저 아무 사이 아닌 관계가 되는 편이 낫다. 학교 생활이나 사회생활은 개인의 개성을 지킬 수 없다고들 말한다. 개인의 목소리를 낼 수 없게 만든다고 한다. 하지만 개성은 꼭 드러내면서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다. 무탈하게 번 돈으로 고고하게 지켜낼 수도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나의 내성적인 직장생활을 그다지 후회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신경 쓸 것 없고 일만 하면 돼서 편할 때가 더 많다. 그 누구와도 깊이 친해지거나 등을 돌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곳을 떠나면 ' 아무 사이 아닌 사람' 딱 그 정도의 관계가 적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