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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못하는 직원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by 감성기복이

일을 못하는 직원을 끝까지 가르쳐야 하는가? 상사는 일 못하는 직원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함께 데리고 가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해 의견이 분분할 것 같다. 직장에서는 너무나 흔히 있는 일이다. 사실 어느 조직이나 있다. 사람이 모인 곳은 능력차이가 존재할 수밖에 없고, 그것이 평가 지표로 수치화되는 일터에서는 더욱이나 두드러지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단, 그 못하는 수준이 과연 어느 정도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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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이 없으면 열정이 있어야 하고, 열정이 없으면 겸손해야 하며, 겸손하지도 못하면 눈치라도 있어야 한다



일만 못하는가? 인성도 엉망인가?

꽤나 유명한 어록이다. 이 말을 들으면서 무릎을 탁 쳤던 기억이 난다. 어디나 사회생활은 똑같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도 난다. 능력, 열정, 겸손, 눈치. 이 중에 하나라도 있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결여된다면 직장이나 어디서나 그 사람은 살아남기가 아주 힘들 것이다. 나는 일을 못하는 사람을 보고 화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사람의 태도가 불량하다면 그건 아주 화가 난다. 일은 배우면 된다. 시간이 얼마나 걸리냐의 차이지 배우면 결국 일은 '잘'은 못해도 그냥저냥은 하게 되어있다. 일은 상사가 가르칠 수 있지만 인성은 직장에서 가르쳐줄 수 없다. 완성시켜서 들어왔어야 된다. 아니 누구나 완벽한 성인은 없다. 모두가 미생이다. 하지만 백번 양보해 최소한의 도덕적 기준치는 갖추고 들어와야 한다. 그런데 요즘 시대가 변할수록 각자의 개성이 강해져서 그런지 인성을 갖춘다는 것이 꽤나 힘든 일이구나 생각이 들 때가 많다. 세대차이일 수도 있다. 라떼는 가정교육이 엄격했는데 요즘은 다 오냐오냐하며 키운다고 한다. 실제로 밖에 나가서 봐도 어느 정도 그런 것 같다. 애가 공공장소에서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파손시켜도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자기 애 챙기기 바쁘기 때문이다. 애를 나무라는 것도 없다.


일을 못하는 직원을 볼 때는 '능력'이 아닌 다른 것을 가지고 그 사람의 가능성을 평가해야 한다. 일은 못하지만 배우려고 하는 자세가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은 충분히 가르치면 '될'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떡잎이 보이는 사람이다. 하지만 일도 못하는데 건방지고 수동적이라면 적어도 그 사람의 태도가 변하지 않는 이상 그 사람을 굳이 이끌고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딱 필요한 만큼의 양만 시키면 되고 차라리 두 번 손을 거치느니 담당자를 바꾸는 것이 나을 수도 있다. 하지만 못해도 배우려고 하는 사람을 못한다는 이유만으로 손절해 버리는 것은 성급하다. 업무배제도 따돌림의 일종으로 보인다. 적어도 그 사람이 더 이상 못하겠다고 포기하기 전까지는 상사라면 직원의 역량을 개발시켜 주기 위해 애써야 한다.



사람은 잘못이 없다

일을 못하는 사람들을 보면 항상 기가 죽어 있다. 그런데 진짜 문제는 그게 아니다. 그들과 이야기를 해보면 더 큰 문제가 있다. 자신들은 지금 여기서도 일을 못하니 다른 직장에 가서도 다른 일을 해도 똑같을 거라고 여긴다. 자신에 대한 신뢰와 자신감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안타까웠다. 누구나 올챙이 적 시절이 있지 않은가. 그 시절에는 누구나 자신이 일을 못하는 것 같은 고민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이 민폐가 되고 있어 조직에 필요 없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을 이렇게 만든 것에는 조직의 문화나 분위기도 한몫했을 수가 있다. 하지만 직장생활이란 어떤 조직을 만날지 모른다. 개인이 헤쳐나가야 할 영역들이 훨씬 더 많다. 그럴 때마다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당신이 이 일에 안 맞는 것일 수는 있지만 분명 더 잘하는 다른 일도 있을 거라고. 그리고 일이란 것은 시간이 걸리지만 하면 무조건 는다고. 이 말을 꼭 해준다. 그렇지만 그들에게 이 말이 씨알도 안 먹히는 것을 알고 있다. 나도 그랬으니까. 하지만 지금 이곳에서 낙오자라고 해서 그 사람이 사회에서의 낙오자는 아니다. 그리고 지금은 낙오자처럼 보여도 승진해서 잘되는 사람이 허다하다. 결국 버티는 사람이 올라가는 곳이 직장이다. 그전에 제풀에 지쳐 나가 버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 우리는 다 알고 있다. 버티는 끈기는 그것만으로도 높이 사줘야 할 능력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배우고 가르쳐야 한다

학교에는 선생이 있다. 선생이 학생을 포기하는 것을 봤는가? 안타깝지만 많이 봤다. 이건 거짓말을 못하겠다. 대놓고 말한 선생도 본 적 있다. 본인이 공부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면 수업 듣지 말고 빨리 다른 길 찾으라고. 못하는데 굳이 하려고 하지 말라고. 이 말을 듣는데 참 씁쓸했다. 맞는 말 이긴 하지만 '공부에 재능이 없어서'라는 말은 하려고 하는데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 학생들한테는 참 잔인한 말이기 때문이다. 저 말이 누군가에게는 확실한 방향을 찾아줄 수도 있지만, 하고 싶어도 안 되는 사람에게는 좌절을 안겨줄 수도 있다.

직장은 학교가 아니다. 하지만 학교와 비슷하게 선생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있다. 그게 바로 관지라들이고 사수이다. 누군가는 이끌어주는 사람이 반드시 필요하다. 가르쳐주고 안내해 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자신의 역할을 포기한다면 그 조직의 앞날은 결코 밝지 않을 것이다. 사람을 뽑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다음으로는 그 사람을 어떻게 키우느냐도 중요하다. 그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는 사람들이 그토록 중요한 일을 해내줘야 한다. 위로 갈수록 어렵다는 게 단순히 일을 잘해야 해서가 아니다. 일보다 더 어렵고 중요한 것이 인사관리다. 사람관리를 잘해야 그 팀의 성과도 좋아진다. 평가자인 동시에 스승이다. 인사관리가 어려운 것은 단순히 일만 가르쳐서 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직원들의 고충도 들어줘야 하고 다독여줘야 하고 때로는 분쟁을 조정해줘야 할 때도 있다. 그들의 잘못을 감싸줄 줄도 알아야 하며 또 확실히 바로잡아 줄 줄도 알아야 한다. 그 리더십이 미숙할 수 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포기하지 않는 마음이다. 물론 아랫사람을 잘 보기 위해서는 윗사람이 먼저 된 사람이어야 하겠다. 직원을 일하는 기계이기 전에 사람으로서 인정해 주고 그 사람에 대해 포기하지 않아야 한다.






개구리가 올챙이 적 생각 못한다

우리 모두 올챙이 적부터 올라왔다. 그런데 꼭 신입 직원들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자신의 올챙이 적 시절을 까맣게 잊어버린 듯한 모습니다. 지금 높은 자리에 있는 그분들도 다 일 못해서 머리 쥐어뜯고 혼나던 시절을 지나왔다. 시집살이당한 며느리가 더 호되게 시집살이를 시킨다고 하더니 딱 그 모습이다. 하지만 알만큼 아는 사람들이라면 반대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라테와 요즘애들을 입에 달고 산다. 그걸 분리시키지 말고 라테와 요즘애들을 조화시키면 어떨까. 라테시절의 서러움을 물려줄게 아니라 라테의 지혜를 전달하고 요즘 애들 성향을 파악할 수 있다면 그래도 갈등을 조금은 줄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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