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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통을 이용하는 방법

by 감성기복이

며칠 쉬었다. 집에만 있었다. 차마 어디를 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최근에 주말에 이틀 동안 여행을 다녀왔다가 바로 병이 나서 한 달 내내 아팠기 때문이다. 면역력이 많이 떨어졌는지 아무리 약을 먹어도 낫질 않았다. 그래서 쉬게되면 하루 종일 집에만 있어야지 생각을 했다.

막상 쉬면 책도 많이 보고 그동안 못했던 것을 할 거라고 계획을 세웠지만 실상 그렇지 않다. 어린 시절 방학계획을 세울 때부터 반복된 과오는 지금까지도 되풀이되고 있다. 학생들의 방학과 직장인들의 휴가 패턴이 그리 다르지 않다. 밀린 일들은 휴가가 지나도 그대로 밀려 있다.






쉼이 남긴 것 1. 병명을 찾다

이번에 쉬면서 알게된 것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피로의 원인에 대한 것이다. 몸이 너무 힘들어서 병이 있는 줄 알았었는데 그건 어쩌면 정말 만성피로였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하루, 이틀 쉬고 나니까 그래도 조금 컨디션이 돌아왔다. 평생을 쉬어도 낫지 않을 것 같았던 피로가 조금은 풀리는 듯했다. 너무 빨리 풀린 피로때문에 내가 그동안 일하기 싫어서 꾀병이 난건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리고 끼니를 챙겨 먹으려고 노력했다. 되도록이면 좋은 것들로 말이다. 몸은 생각보다 긍정적인 변화에 빨리 반응한다. 물론 그럼에도 몸은 여전히 피로에 취약하다. 조금만 움직여도 물에 젖은 솜처럼 무겁다. 그리고 오히려 일할 때 느껴지지 않았던 통증이 더 느껴지는 곳도 생겼다. 그렇지만 한 가지 확실해진 것은 극도의 신체피로의 원인은 결국 직장생활에 있었다는 것이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했던 아니면 정말 스트레스 호르몬이 올라가서 몸이 피로감을 느꼈던지간에 어찌 되었든 원인은 일에 있었고 그토록 고민해왔던 피로의 병명은 일하기 싫어병일수도 있겠다.



쉼이 남긴 것 2. 활력의 감소

하지만 쉬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 마치 시소게임과도 같다. 에너지 레벨이 떨어졌다. 나는 보통 남들이 일할 때 노는 것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 가끔 평일에 여행 가기 위해 서울역에 가서 기차를 기다릴 때를 생각해 보면 기분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나의 변태 같은 성질일 수도 있는데 나는 여행보다 일이 좋은 사람이기도 하고, 여유보다는 분주함이 끌리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일할 때 나 혼자 놀라가는 느낌이 낙오자의 느낌이 들기도 한다. 이상한 성격이다.


퇴사를 하게 되면 이러한 휴가 기간이 쭉 지속될 것이다. 일단 사람 만나는 일이 거의 없어진다. 그런데 사람과의 교류가 없어진다는 것은 삶에서 많은 것을 바꾼다. 처음에는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어서 좋은데 반면에 텐션이 확 떨어져 버린다. 가장 간단히 조용한 사무실과 시장의 분위기를 비교해 보자. 사람들이 복작복작한 시장에 가면 괜히 없던 활기도 생긴다. 그런데 혼자 있을 때는 그런 기운을 받을 곳이 없다. 에너지를 받을 사람들이 없다. 그래서 자연히 나의 활력도 떨어지게 된다.






쉼이 남긴것 3. 직장에서의 고통이 나를 살릴 수도 있겠다

확실히 생할이 느슨해지면 사람이 나이브 해진다. 쉬는 동안 오기가 약해졌다. 회사 생활을 하며 핍박과 박해를 받을 때는 어서 빨리 이곳을 탈출해야지 하는 생각 때문에 시간은 없지만 자기 계발에 대한 집중도가 더 높아지고 절실했다. 그 서러움이 잠깐 없어졌더니 그 절실함이 덜 해졌다. 시간이 많으면 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직장에서 받는 서러움이라는 것은 자신을 앞으로 나아가게 할 수 있는 꽤 강력한 무기인 것 같다. 직장은 대부분에게 고통의 장소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때로는 인생에서 고통을 현명하게 이용하는 법도 있지 않을까. 만약 퇴사가 시기상조라면 직장에서의 고통이 나를 살리는 무기가 될 수 있도록 이용해보는 것도 좋은 판단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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