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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May 18. 2022

집 포기하고 테슬라 샀어요!

십여 년 전 시골의 초등학교 총동창회 체육대회를 하는 날이었다. 아마도 졸업 30주년으로 우리가 총동창회 주최하는 차례여서 많은 친구들이 모였고, 무사히 마치고 뒤풀이 겸 저녁을 먹었다.


그때 여학생 중에서 입담이 무척 거센 A가 내게 “야 OO아! 너 서울 갈 때 B좀 태워서 집까지 데려다줘라”라고 한다. B는 여학생이고 졸업하고 그날 삼십 년 만에 처음 만난 동창이었다. A는 입담이 엄청 걸쭉한 것은 모두가 인정하는 그런 친구이며, 그날도 사실 위의 말만을 한 것이 아니고, 식당 밖에서 헤어질 때쯤, 나를 차에 밀어 넣으면서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나와 B를 엮어서는, 남도 주막집에서 반백 년 막걸리를 팔던 늙은 주모나 할 만한 걸쭉한 농담을 했는데, 이것은 차마 여기에 글로 옮기지는 못하겠다. 다만 A는 입이 걸쭉해도 악의가 전혀 없고, 오히려 천진난만하고 순수하고 악의가 전혀 없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그런 여학생이다.


나는 삼십 년 만에 처음 만난 여자 동창과 단둘이서 장거리 차량 이동을 하는 것에 다소 부담이 있었는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마침 친한 남학생 C가 자기도 서울 부근까지 태워주기를 말하였다.

그래서 3명이 내 똥차를 타고 서울로 출발했는데, C가 내 옆자리에 앉고, B는 뒷좌석에 앉았다. C는 판교 IC인가 수서 IC인가에 내려서 고속도로 샛 구멍으로 내려가면 집에 갈 수 있다고 해서 IC 지나서 바로 내려주고, 나는 B가 산다는 서초동으로 이동했다. 옆에 탔던 C가 내렸는데, B는 뒷좌석에 그대로 타고 있으니, 마치 내가 운전기사이고 B는 사모님의 형국이 되었지만, 그렇다고 내 옆자리로 옮겨 타라고는 하지는 못했다. 그것도 모양이 이상했으므로.


“집이 서초동 정확히 어디지?”

“응.. 서초동 OOO이야”

“주상복합 아파트인가”

“응”     


그때 건물 이름이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지금에 생각해도 굉장한 명망(?)을 가지고 있는 그런 아파트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그때 나는 북아현동 언덕의 다세대주택에, 천만 원이 부족하여 육천만 원짜리 전세를 전세 오천만 원에 월세 십만 원으로 합의하여 아들놈과 허덕거리며 살고 있는 상태였는데, ‘신의 은총을 입은 者’ 만이 누릴 수 있다는 중년의 주말부부를 오 년째 만끽하고 있던 터였다.      


그 당시는 주상복합 아파트가 매우 인기가 있는 고급 아파트였고 사람들의 선망의 대상이라는 것쯤은, 주택이나, 경제나 이런 쪽에는 무지하고 관심이 없던 터일지라도 비싸다는 것만은 술자리에서도 들어 대충은 알고 있었지만, 그 아파트가 가격이 얼마인지 전혀 감이 없는 상태였다.


“주상복합 아파트 비싸다던데, 한 십억 하나?”


사실 그때 내가 물은 가격이 십억인지 이십억인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두 개 중 하나였던 것은 분명하고 아파트에 관한 한 내가 관용할 수 있는 최대 범위의 가격을 불렀던 것은 확실하다.


“......”

OO 이는 잠시 말이 없더니, 쿨한 것 같기도 하고 심드렁한 것 같기도 한 목소리로 한마디 툭 던졌다.


제일 꼭대기 층이야.!


낮고 조곤조곤한 말이었지만, 부잣집 사모님이 만사 귀찮아하며 “김기사. 어서 가야지”하는 듯한 말투였다.

“아. 그래?......”


그리고 대화는 끊어지고 이윽고 목적지에 내려주고는, 나는 다시 전세 오천만 원 월세 십만 원의 다세대주택의 어두컴컴한 현관을 열면서 퀴퀴한 냄새를 맡고 서 있는 나를 한 시간 뒤에 발견하게 되었다. 물론 여느 때처럼 바퀴벌레 몇 놈이 푸드덕거리며 나를 환영하고 있었다.


나는 진정 그것이 무슨 의미인지 몰았다. 꼭대기층에 산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뒤 집에 내려갔다가 아내에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가격은 이야기하지 않고 꼭대기층이라고만 하던데, 그것이 뭔 뜻인지 모르겠더라고 했더니, 아내가 끌끌 혀를 찬다. 세상 물정과 이재(理財)에 무지한 남편에 대한 불만이 반은 섞여 있었으리라. 그때 아내는 대구에서 딸과 둘이서, 무려 내가 사는 다세대주택의 두배가 넘는 일억 이천만 짜리 서른 평 아파트에 전세를 살면서 뭔가 불만이 있었던 것을 약간의 비야냥으로 화를 풀었던 것일 것이다.


“그것도 몰라? 꼭대기층은 한층 전체를 한집이 살아 평수가 어마하게 크고 가격도 두세 배쯤 할 걸.”


아! 그런 것이구나. 그래서 내가 가격을 물었더니 한심하다는 듯이 가격은 말하지 않고 꼭대기층이니 알아서 판단하라는 뜻이었구나. 한편 부끄러웠고, 한편 부러웠으며,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라는 진리가 맞음을 다시 한번 확인하였다.     


사람이 살아가는 필요한 衣食住중에서도 가장 필요한 것은 거주하는 장소가 안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전 국민의 주거문제는 날로 불안정해졌고, 이제는 내려도 문제, 그대로 있어도 문제, 오르면 더 큰 문제 되어 버린 암울한 상황에서, 새 대통령이라고 단기간에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난망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시장의 순리에 어느 정도 맡기고,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와 가격 형성의 기초에만 충실한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안정된 주거 환경을 국민 누구라도 꿈꿔 볼 시간이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해본다.


그리하여 내 주변에 ‘집사는 것 포기하고 대신 일억 주고 테슬라 전기차 샀어요.’하는 젊은 친구들이 늘지 않았으면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2022.0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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