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교착어 계통인 우리말과 일본어는 조사가 필수이다. 단어를 이어주고 격을 정하는 조사가 같은 것은 두 언어가 같은 조어(祖語)라는 것을 더욱 확실히 뒷받침 한다. 명사는 민족과 나라 간의 교류로 전파되고, 영향을 주고받아 유사하거나 같은 단어를 쓰는 경우가 저절로 생길 확률이 높을 것으로 생각하나, 조사는 그것보다는, 태생적으로 같은 유래가 아니면 같을 수가 없을 것이다. 예를 들면, ‘~든가’, ‘~든지’는 일본어에서는 ‘とか-토카’인데, ‘든가/든지’와 관련이 없을 것 같으나 발음이 거의 같다. 같은 뿌리의 말이라고 하는 것이 억측일까.
1) ~이/~가 :~가(が)
우리말 주격조사는 앞 단어의 받침 유무에 따라, ‘이’ 또는 ‘가’가 사용된다. 일본어에서도 주격조사는 ‘が (가)’이다. 우리말과 완전히 일치한다. 다만 일본어에서는 ‘이’는 주격조사로 사용하지 않는 것이 다른데, 자음으로 끝나는 말이 없는 일본어에서는 이것은 오히려 당연하다.
예) 내가 먹었습니다. - 私が食べました(와타시가타베마시타)
내가 갑니다. - 私が行きます(와타시가이키쓰)
※조사 ‘가’에는 異說이 있다. ‘가’는 원래 우리말이 아니고 일본어의 ‘が을 빌렸다는 주장이다. 그 근거로 16세기 이전의 우리말에는 그 흔적이 없고 임진왜란 이후에 ‘가’가 우리말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언어의 전파는 주로 명사에서 이루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며 조사가 타 언어로 전이되는 예는 없다는 논리로 반박하고 있기도 하다. 어쨌든 아직도 학계의 논란 중인 사안으로 보인다. 참고로 옛 우리말에서는 ‘가’ 대신에 ‘이’라는 조사를 사용하기도 한 것 같다. ‘이양하’의 유명한 수필 ‘신록 예찬’의 초기 원문에는 마지막 문장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 또 우리가 충심으로 찬미하고 감사할 만한 자연의 아름다운 혜택의 하나이 아닌가!’라고 되어 있다. 이를 볼 때, 과거에는 ‘가’ 대신에 ‘이’를 우리말에서는 즐겨 사용한 것 같기도 하다. 사극에서도 ‘내가 하리로다’를 ‘내이 하리로다’라고 말하는 경우도 있었던 것 같다.
2) ~든가(라든지)-とか(토카)
‘~이든가’, ‘~라든지’는 조사 또는 연결형 어미이다. 일본어에서는 ‘とか-토카’인데, ‘든가’와 ‘とか-토카’는 같은 뿌리로 생각된다. 이런 유추를 하는 것은 아마 필자가 처음일 것이다. 이 생각이 떠오른 순간 기쁨(?)에 몸을 떨었다.
예) 개라든가 고양이가 많다. - 犬とか猫が多い(이누토카네코가오오이)
지위라든가 명예에는 관심이 없다 - ちいとかめいよには関心がない(치이토카메이요니와칸신가나이)
3) ~도/~と(토),も(모)
‘~와’는 일본어에서는 ‘~と(토)’인데, 우리말 ‘~도’의 뉘앙스는 ‘~와 함께’, ‘~와 같이’의 의미이다. 사과와 배를 주세요는 사과도 주고, 배도 달라는 뜻이니, 우리말 ‘도’와 일본어 ‘~と(~토)’는 같은 뿌리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이다.
예) 사과와(도) 배를 주세요 - りんごとなしをください(린고토 나시오 쿠다사이)
4) 같이 – がち(가치)
‘がち’는 동사에 붙어서 그러한 경향이나 상태가 많음을 나타내는 데 쓴다. 우리말 ‘같이’도 그런 의미로 사용된다. 나무같이 보인다, 꿀같이 보인다 등, 일본어의 ‘がち-가치’는 경향이나 상태가 많음을 표현할 때 사용함으로써 약간의 쓰임새는 다른 것 같지만, 우리말 ‘같이’가 그 어원이 아닐까 한다.
예) 생각하기 쉽다(=같다) - かんがえがちだ(캉가에가치다)
아이에게 있을 것 같은 행동 - 子供にはありがちな行動(코도모니와아리가치나코우도)
5) ~게 – く(쿠)
일본어 い형용사는 ‘~게’의 의미로 변형 시에는 ‘く-쿠’로 변한다. 이것은 한국어 ‘~게’와 같다고 생각된다. ‘~게’ → ‘케’ → ‘쿠(く)’의 변화과정을 거쳤을 것으로 보인다.
예) 맛있게 해주세요 - おいしく 作って ください(오이시쿠츠큿테쿠다사이)
바쁘게 해주세요 - 忙しくしてください(이소가시쿠시테쿠다사이)
6) 을/를 – を(오)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나, ‘을/를’ → ‘으르’ → ‘으’ → ‘오(を)’로 변한 것으로 추측한다. 일본어에서는 ‘으’발음이 없으니 ‘오’로 변한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닐까.
예) 사람을 믿어 주세요 - 人を信じてください(히토오신지테쿠다사이)
7) ~자 - さ(사)
남을 권유하거나 결의를 촉구하거나, 또는 자신이 일을 시작하려고 할 때 ‘자~’라고 하면 일본어에서도 ‘さ(사~)’로 내지른다. 감탄사이다.
예) 자, 시작하자 - さ、始はじめよう(자, 하지매마쇼)
8) ~(일)뿐 - いっぽう(잇뽀)
‘~뿐’은 ‘그것 말고는 더는 없다’라는 의미로 사용되는 보조사이다. 물론 한자로는 ‘一方(일방)’으로 표현한 발음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는 일본어의 한자는 그와 비슷한 한자어를 후대에 붙인 경우가 많기에 한자어의 발음으로 보기보다는 ‘いっぽう(잇뽀)’는 ‘~(일)뿐’과 같은 말로 추정한다.
예) 마실뿐이다 - のむいっぽうだ(노무잇뽀다)
늘기만 할 뿐이다. - ふえるいっぽうだ(후에루잇뽀다)
줄기만 할 뿐이다. - へるいっぽうだ(헤루잇뽀다)
물가가 오르기만 한다(오를 뿐이다) - ぶっかがあがるいっぽうだ(붓카가아라루잇뽀다)
이처럼 용법이 유사한 조사가 있다는 것은 같은 뿌리에서 분화된 언어라는 것을 더 확실하게 보여준다고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