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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죽인 나무에게

by 동틀무렵

아파트 현관 앞 정원에 나무 화분이 통째 버려져 있다. 나무에는 아직 푸릇한 잎사귀가 듬성듬성 달려있었다. 가끔 마주하는 이런 일은 그래서는 안될 일이다. 폐기물처리에 드는 몇백 원을 아끼려고 공동체의 규범을 깨트릴 일도 아니며, 아직 살아있는 생명을 함부로 버릴 일은 더더욱 아니다. 지난 성탄절에 장식용으로 썼는지, 가지에는 아직도 반짝이는 금박지, 은박지 몇 올이 매달려 흐느적거리고 있었다.


나무가 원래 그렇기는 하지만 며칠을 보아도 아무런 미동조차 없었다. 산 것의 푸른 생기가 없어 빛깔도 흐릿하고 반짝이는 윤기도 느낄 수 없었다. 의심스러운 마음에 나뭇잎을 살짝 비벼보았다. 처음 먼 발치에서 봤을 때와는 달리 헝겊 같은 것으로 만든 잎사귀였다. 오히려 다행이다 싶었다. 애처로운 마음은 거두고, 버린 이의 양심만을 탓했다.


또 며칠이 지난 어느 날, 다시 긴가민가한 생각이 들었다. 혹시나 하며 잎사귀를 살짝 찢어 보았더니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인조물로 오해할 정도로 나무는 거의 생명이 다해가고 있었지만, 분명 살아있었다.


강아지를 키우고부터인지, 나이가 들어가서인지 생명에 대한 측은지심이 깊어 간다. 나무는 무정물(無情物)이라지만 한없이 가여운 생각이 들었다. 안락한 집 안에서 사랑받다가 저리 내팽개쳐지고 말았으니, 나무는 불 켜진 주인의 창을 올려보며 얼마나 울었으랴. 성탄절 전야, 금실 은실로 치장하고 전등에 빛이 반짝일 때, 자기에게 환호성을 보내던 그 집 아이들도 생각났을 것이다. 나무를 버린 ‘전’주인은 창밖을 내려다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생명이 질기다고, 관리실에서 왜 빨리 처리하지 않느냐고 푸념했을까. 못 할 짓을 했다는 생각도 했을까.

나무는 그렇게 주욱 화단 가운데 덩그렇게 놓여있다가, 어느 날부터 한갓진 구석에 옮겨져 있었다. 나처럼 그것을 못마땅하게나 안쓰럽게 보았던 사람이 있었던 모양이었다.

7월의 뜨거움이 이어져도 나무는 피지도 않고 더 시들지도 않았다. 내리쬐는 햇빛과 대리석에서 튀어나오는 반사열까지 온전히 받아들이면서도 매일매일을 버티고 있었다.

불현듯, 나무를 살려보자는 생각을 한 것이 온전한 선의였는지, 마당 있는 집 뜰에 서 있는 ‘내 나무’에 대한 선망(羨望)이었는지 모르겠다. 알맞은 자리를 골라서 나무와 흙을 통째 빼내어 조심히 옮겨 심었다. 비좁은 곳에서 더 뻗을 데가 없던 뿌리는 수세미같이 얽히고설켜 화분 속은 흙보다 뿌리가 더 많아 보였다. 도닥도닥 발로 밟고 흠뻑 물을 주며 한때 무성했을 푸른 잎을 다시 피워내리라는 기대도 함께 묻었다. 날마다 바가지로 물을 길어 대지의 열기를 식히고 뿌리가 목축이게 했다. 농부의 마음처럼 발걸음 소리를 들려주고 나무에게 말을 건넸다.

이건 이제 내 나무다. 아무도 모르는 내 나무다. 나무를 버린 주인은 땅을 치며 후회할 것이야.

일주일이 지났다. 잎사귀 하나가 떨어질 때도 새잎이 나오려는 산고이려니 했다. 그런데 한 잎 두 잎, 낙엽 지듯 떨어지더니 그예 나무는 나신(裸身)이 되어 버렸다.

무엇이 잘못이었을까? 토양이 맞지 않았을까. 원래 수명을 다한 것일까. 뜨거운 여름에 옮겨 심은 잘못이었을까. 나무는 그렇게 갔다. 나로 인해 영영 죽었으니 이를 어찌할까, 미안하다. 미안했다. 진정 미안했다. 넘친 관심과 내 오지랖을 원망했다. 오가다 혹시나 몇 번을 들여다보아도 뿌리 주변에 소복이 떨어진 나뭇잎만 팔월 염천에 말라가고 있었다.

이제 나무는 땅에 박힌 쇠막대기 같은 모습으로 현관을 나서는 내 눈길을 붙든다. 겨울의 목전이어서인지 금속의 차가움마저 느껴진다. 나를 원망하는 것만 같아 외면하며 미안한 마음만 한가득 보낸다.

분명 나무는 죽었다. 그러나 나는 기적을 바라고 있다. 고승이 꽂은 지팡이가 나무로 되살아났다는 전설처럼, 봄이 오면 새순이 움틀 것이라는 실낱같은 바람을 갖는다. 봄바람에 동백이 지듯, 속절없이 뚝뚝 떨어지면서도 뿌리 옆을 떠나지 않던 나뭇잎에서, 위급할 때 자식을 감싸 안는 어미의 모습이 보였던 까닭이었다.

기적은 일어날까? 선의가 반드시 행복한 결말이 아님을 알면서도, 가망 없는 일에 미련을 두는 것은 ‘내 것’에 대한 욕심이 더 큰가 보다. 그래도 행여 그런 날이 오면, 꽃비가 내리는 날에 하염없이 너를 바라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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