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가루의 계절

by 동틀무렵

어린 시절의 먹거리를 회상하는 일은 진부하다. 하지만 계절이 바뀌어 몸이 민감해질 때면 어김없이 그때의 음식이 떠오른다. 힘들 때 고향을 찾는 것처럼, 이는 인간의 회귀 본능일지도 모른다.


여느 집처럼 우리 집에도 ‘고방’이라는 것이 있었다. 요즘 말로 창고인 그곳에는 쌀, 좁쌀, 보리쌀 같은 곡식이 좋은 자리를 차지했고, 자주 쓰지는 않지만 없으면 가끔 아쉬운 물건들이 무질서하게 놓여 있었다. 그 고방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던 것이 또 있었으니, 콩가루 독과 밀가루 독이었다.


쌀독은 비워지는 만큼 불려야 했다. 불린다는 것은, 꺼내면 다시 채워지는 화수분이 아니라 먹는 양을 조절해 바닥이 드러나는 시간을 늦추는 일이다. 남정네가 바깥일로 쌀독을 채우면, 아낙은 아껴서 그 바닥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것이 그 시대 안팎 사람들의 숙명이었다. 그 거룩한 소명 앞에서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일은 덜 먹게 하는 것이 아니라, 밀가루로 수제비를 뜨고 콩가루로 국수를 밀어 배를 불리는 것이었다.


수제비다. 흔히 정치인들은 대중 앞에 서서 수제비를 가난의 무기로 삼아 지지를 호소하곤 한다. 왜 그리운 추억을 비참함의 도구로 전락시키는지 늘 아쉬웠는데, 김훈의 산문집 『허송세월』에서 그 아쉬움을 씻어주는 문장을 만났다.

‘어머니는 애호박을 가늘게 채 쳐서 수제비에 넣고 소금으로 간을 했다 <중략> 식구들이 둘러앉아 뜨거운 수제비를 먹을 때 가난한 유년은 아늑했다.’


나는 수제비를 가난의 대명사로 내세우는 삭막한 가슴들을 향해, 이처럼 따스하게 기억을 갈무리하는 글을 본 적이 없다. 이 문장을 만난 후로 나는 더는 수제비를 추억하지 않기로 했다.

사실 수제비를 추억하지 않는 것은, 저 문장 때문이라기보다 콩가루로 만든 음식이 기억을 더 차지하는 까닭이다. 우리 동네는 콩이 흔했고 값도 쌌다. 콩가루 독 안에는 박바가지 하나가 얹혀 있었다. 표주박보다는 크고 물바가지보다는 작은 어중간한 크기였다. 오랜 세월 콩가루 알갱이가 박히고 배어 묵직해진 그 바가지는 마치 목화(木化)된 듯 나무처럼 단단한 질감과 무게가 느껴졌다. 그 바가지만 삶아 먹어도 구수한 맛이 날 것만 같았다.


우리가 일상에서 주식으로 삼는 많은 먹거리는 대부분 이 땅이 원산지가 아니다. 밀은 서아시아, 쌀은 양쯔강 일대가 원산지라는 학설이 우세하다. 그와 달리 콩은 이 땅에 처음 뿌리를 내린 곡물이다. 이 땅의 한쪽, 내 고향은 한때 전국 생산량의 태반을 차지했다는 콩의 고장이었다. 그러니 집집이 콩가루 단지가 있었고, 무엇이든 콩을 묻혀 쪄냈다. 방 안에 있어도, 부엌에서 스르릉 가마솥 뚜껑 여닫히는 소리가 들리면, 밥이 뜸 드는 사이에 어머니가 무언가를 찌고 계신 것이었다. 그런 날이면 어김없이 콩가루를 입힌 반찬이 상에 올라왔다. 봄에는 마늘종을, 여름에는 고추와 정구지(부추)에 콩가루 옷을 입혔다.

그러나 왠지 콩가루 음식은 겨울에 더 자주 만난 기억이 있다. 추위에 견뎌야 하는 몸이 콩의 단백질과 에너지를 불렀을 것이다. 시래기에 콩가루를 입혀 자작하게 끓인 국을 거의 매일 먹다시피 한 것도 그런 까닭이었을까 싶다.

국수 반죽에도 콩가루를 삼분의 일쯤 섞었다. 밀가루 국수보다 툭툭 끊어지고 거칠었지만, 구수함만은 비할 데 없었다. 비위가 약했던 어린 시절에는 콩국수의 비릿한 맛을 즐기지 않았다. 그러던 열 살 무렵, 지독한 열병을 앓고 난 새벽이었다. 허기에 이끌려 툇마루로 나가보니 커다란 양은 함지박에 전날 먹다 남은 콩국수가 있었다. 차갑게 식어 구들구들해진 그 국수를 허겁지겁 먹었을 때의 충격적인 맛이란. 하루 묵어 더 깊어진 그 맛은 여름날 양반들이 즐겼다는 건진국수*보다도 더 귀하게 다가왔다.

어머니가 안반에서 홍두깨로 반죽을 밀 때면 나는 옆에서 "국수 꼬리 꽁꽁, 국수 꼬리 꽁꽁"하고 타령을 불렀다. 국수를 썰고 남은 자투리를 달라는 투정이었다. 그 국수 꼬리를 잉걸불 위에 올리면 금세 군데군데 부풀어 오르고 가장자리는 까맣게 타들어 가던, 나만의 과자. 비스킷처럼 야금야금 베어 물던 그 기억. 김훈의 유년은 아늑했고, 내 유년의 기억은 아득하다. 다행히 서울에서도 콩가루를 섞은 칼국수 집이 있어, 가끔 찾아 향수를 달래곤 한다. 짐작대로 주인은 역시 고향 인근 출신이었다.

더러는 콩가루 자체가 반찬이 되었다. 김치 반찬에 물릴 때면 볶은 콩가루를 밥에 비벼 먹기도 했다. 한입 가득 넣으면 목이 턱 막혔지만, 어린 입안을 감돌던 고소한 유혹을 떨치기란 어려웠다.

하지만 그 시절 이후 단 한 번도 입에 대지 못한 음식이 있다. 바로 콩죽이다. 그것은 이름만큼이나 소박하고 어렵지 않게 만들 수 있을 듯하다. 콩가루를 물에 풀고 불린 쌀이나 보리쌀을 넣은 뒤, 아기 콧물 방귀처럼 거품이 퐁퐁 올라오도록 되직하게 끓이면 될 것이다. 물론 소금 간을 맞춰야 하고 쉴 새 없이 나무 주걱을 젓는 노고는 필요하다.

콩죽은 모름지기 식어야 제맛이다. 서늘한 곳에 하루쯤 재우면 표면에 살얼음이 낀 듯 윤기가 돌고, 곡식 알갱이가 박힌 젤리처럼 탱글탱글하게 굳는다. 그것을 주걱으로 뚝뚝 끊어 담아 한 입 먹는 맛. 그것이 진짜 콩죽의 맛이다.

아내에게 콩죽을 해 먹자고 했다가 잔소리만 들었다. 은퇴한 남자는 왜 이리 야단맞을 일이 많은지 모르겠다. 곧 아내가 여행을 떠난다고 한다. 나는 콩가루 한 봉지를 사 올 생각이다. 홀로 주걱을 저으며 ‘뽀작뽀작’ 오르는 거품을 바라보며 어린 시절의 나를 만날 것이다. 어쩌면 나는 매년 겨울마다 그 아이로 돌아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겨울은 콩가루의 계절이다.



*건진국수: 안동지방에서 콩가루를 섞어 만든 국수에 은어회를 고명으로 얹어 만든 국수. 국수를 삶아서 찬물에 건졌다고 하여 이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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