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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Apr 29. 2022

왼손잡이 아내

아내는 왼손잡이다. 

왼손 잡이기 때문에 주부로서 미흡한 것이 있다거나, 식구들에 대한 헌신적인 뒷바라지에 티끌이라도 있었느냐고 묻는다면 전혀 아니라고 당연히 말할 것이다. 그런 속에서 삼십오 년을 함께 살아왔는데, 작년에 내가 은퇴를 하고 집안에 들어앉아 있는 날들이 많으니, 오른손잡이인 나와 다른 행동양식에 따라 소소한, 정말 아주 작은 소소한 것들이 나의 일상이 침범되면서 의식이 되기 시작하였다. 아니 그전에도 그러했겠지만 나의 눈과 의식은 늘 회사와 사회라는 바깥으로 향하고 있었던 이유로, 마치 길을 가다가 하루에도 수십 번 보게 되는 보도 위의 껌딱지 같이 눈에는 들어오지만 의식이 되지 않았던 그런 현상 정도가 아니었을까 한다.        


불편이라야 정말 소소한 것-가령 이런 것들 정도이다.

욕실에 양치에 사용하는 컵을 아내와 같이 사용하는데, 오른손으로 양치질하는 나는 늘 세면대 선반 왼쪽에 두고 사용하는데 반해, 아내가 양치한 이후에는 그것이 늘 반대쪽인 오른쪽에 놓여있어 내가 사용할 때는 오른손과 왼손이 교차되어야 하는 번거로움이 어느 날 갑자기 의식이 되는 것이었다. 이것은 아주 소소한 일이나, 어느 순간 대학시절 전공의 기초과목으로 배운 ’ 산업공학‘과목 중에서 유독 기억이 지워지지 않은 ’길브레드‘의 대량생산 이론이 떠올라 무슨 큰 오류나 발견한 듯이 뇌리에 쿡 박혀버리는 것이었다. 그 이론이란 것이 오른손으로 나사를 박을 때 나사 통은 나사를 집어 드는 왼쪽에 있어야 효율이 증대된다는 아주 단순한 것이었다.     


또 하나는 옷걸이에 옷을 걸 때 오른손으로 거는 나는 고리의 개방 부분이 늘 왼쪽으로 가는데, 아내가 옷걸이에 걸은 것은 반대편으로 걸려있어, 옷을 고리에서 내릴 때 평소 내가 하는 방향과 반대로 내려야 하는 불편 또는 여러 개를 한꺼번에 내릴 때 엇갈려 있어 한꺼번에 빼내기가 어려운 것 정도이다.      


이렇듯이 말할 가치도 없는 정말 소소한 것으로, 남자가 집안에 들어앉아 있으면 좀스러워진다더니 내가 바로 그 짝이구나 하는 조금의 자괴감도 들었다. 즉, 회사 다닐 때는 새벽같이 일어나 후다닥 회사만 쫓아다니느라 그런 것이 전혀 뇌리에 의식이 되지 않았지만, 집에 들어앉아 있으니 나도 모르게 자꾸 소소한 것들이 눈에 밟히고, 머리에 의식이 되는 것이었다.      


남자가 은퇴 후에 아내와 분란 없이 잘 지내려면 집안일을 잘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들은 바가 있어, 나름 설거지나 쓰레기 분리하여 버리기, 청소 등 가능한 집안일에는 최선을 다하였고, 특히 식사를 할 때는 냉장고에서 반찬 꺼내놓기와 수저받침대와 수저를 놓은 일은 중요한 나의 몫이었는데, 아내가 왼손잡이라는 것이 의식되자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그동안 아내가 왼손잡이라는 것을 생각하지 못하고 수저를 오른쪽에 놓았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떠올라 매우 미안한 생각이 들었고, 나의 무심함을 내심 탓했다. 회사 다닐 때, 아침식사는 거의 항상 새벽 여섯 시경에 혼자서 반공기 밥으로 간단히 하였고, 저녁은 거의 밖에서 먹거나 어쩌다 집에서 해도 늦은 퇴근으로 혼자 식사하는 경우가 많다 보니, 아내와 같이 식사할 일이 별로 없었는데, 은퇴 후에는 대부분 같이 먹으니 드디어 그것이 눈에 들어온 것이었다.      


그날 저녁에 아내 자리는 수저를 왼쪽에 두며 이제야 내가 제대로 하는구나 하며 속으로 의기양양했는데, 아내는 식탁에 앉기도 전에 수저를 다시 오른쪽으로 옮기는 것이 아닌가.     


내가 물었다 “왼손잡이라서 수저를 왼손으로 두었는데 왜 오른쪽으로 옮겨?” 

아내는 대답했다. “내가 왼손잡이라도 밥은 오른손으로 먹는 거 모르나? 당신!”

아 뜨겁구나! 황망하구나. 대꾸도 변명도 못하고 그냥 말없이 밥그릇에 코를 박았다.     

 

다만 이상하게도 아내도 더 이상 나의 무심함을 추궁을 하거나 섭섭함을 토로하지 않고 식사에 열중하는 것이었다. 미장원에서 조금의 머리손질을 한 후에도 그것에 대해 한마디 평가를 해주지 않으면 관심이 있네 없네 하고 잔소리를 집안 곳곳에 떨구고 다니는 사람이 아무런 이의제기를 하지 않는 것은, 아내도 너무나 큰 충격을 받은 것이었을까? 아니면 그때 뭔가 중요한 다른 것에 대한 생각에 빠져있어 무심히 넘어갔었던 것이었을까? 

오히려 나는 나의 오류에 스스로 큰 충격을 받고 가슴을 쓸어내렸던 사건이었으나, 어쩌다 하는 사소한 아내와의 말다툼 시, 삼십 년도 더 지난 결혼초의 조그만 사건까지 소환하여 부부싸움에 양념을 더하고 있는 아내의 평소 성격을 생각해보면 너무나, 너무나도 다행이 아닐 수 없었다.     


삼십 년 이상을 함께 했는데 아내가 왼손으로 밥을 먹는지, 오른손으로 먹는지 전혀 생각을 하지 못했다니. 

무심한 것일까? 아니면 너무도 일상적인 일이라서 전혀 의식을 못 한 걸까?

아! 무정한 남편이여. 무심한 남편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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