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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May 02. 2022

원효의 ‘해골바가지 물’ 같은..

원효의 ‘해골바가지 물’ 같은, 그 비슷한 경험이 나에게도 있었다.

그때 마음 달리 먹었으면 득도하여 지금처럼 세상사 걱정할 것 없이, 어느 山門에 틀여 박혀 용맹정진(勇猛精進) 중이거나, 중생을 구제하고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대학시절, 어느 한옥집 문간방에서 자취생활을 할 때이다.

그 당시 내가 사는 지역은 참으로 수돗물 사정이 안 좋았다. 여름쯤이면 물이 귀해서 모두가 난리도 아니었고, 특히 내가 사는 곳은 좀 언덕배기라 여름이 되면 거의 물이 나오지 않았다.     


동네 좀 낮은 곳에 공동수도가 있었는데, 거기에서 줄 서서 쫄쫄거리는 수도꼭지에 붙어서 간신히 반 양동이 조금 더 되게 받아와 하루 정도를 견디곤 했다. 그래서 비 오는 날이면 낙숫물로 빨래하고, 주인집에 아무도 없는 날, 소나기라도 오면 마당에서 그냥 홀랑 벗고 빗속에서 샤워하고 그랬었다. 빗물이 단물인 줄 그때 진짜로 알게 되었다. 헹구어도 헹구어도 미끌거림은 완전히 가셔지지 않은 듯했다.     


여름의 초입, 중간고사를 앞둔 어느 일요일.

그날은 같이 자취하던 녀석이 고향에 가고 나 혼자 주말에 있었는데, 내일은 새벽에 생전에 안 가던 도서관에 가서 공부 좀 해야 지하는 이런 기특한(?)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본디 도서관 같은 데는 그 괴괴한 고요함이 오히려 집중력이 더 떨어지고, 잡생각만 많아지는 아주 이상한 성질이라서 고3 때도 도서관 한번 가보지 않았는데, 그날은 이상하게 난생처음 새벽바람으로 간다고 단단히 맘먹고 잠들었겠다. 물론 공동수도에서 시간을 들여 물 한 양동이를 구하여 연탄아궁이 위에 올려놓는 것은 잊지 않았다.     


그리하여 컴컴한 새벽에 일어나, 받아 놓은 물에서 반 바가지로 밥을 해 먹고, 기분 좋게 가방 싸고. 준비하고 하다 보니, 날이 조금 희뿌옇게 새며 동이 트는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 자취 시절에 쌀 씻어 밥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그냥 솥에 쌀 붓고, 물 붓고 바로 스위치 누르면 된다.  

  행주와 걸레의 구분도 없고. 가끔 그때의 이런 이야기하면, 지저분한 인간이라고 하는데, 사람 탓이 아니

  라 환경이 사람을 그리 만든다.     


원래 아침잠이 많은 체질이라, 미명의 그 황홀한 어둠을 본적이 별로 없었는데, 마당에서 올려다본 하늘은 왜 그리 크고도 웅장하던지, 마치 다른 행성에서 다른 하늘을 바라보는 듯 기이하고도 충격적이었다.

회색인지 흰색인지 모를 구름 사이로, 황금색, 붉은색의 햇살이 저 마음대로 떠다니거나, 칼날 같은 빛을 뿜어내기도 하는 장관. 아름답기보다는 차라리 형용할 수 없는 거대한 느낌.     


이제 가볼까.

부엌으로 가서 또 물 한 바가지를 떠서 양치도 하고 세수도 하려는데 양동이 밑에 무엇이 시커먼 게 언뜻 보였다. 처음엔, 원래 양동이가 밑으로 더 좁으니 좀 컴컴해 보이려니 하고 넘기려는데 이상한 느낌이 들어, 밖으로 들고 나와 조금 밝은 데서 보고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까지 들 정도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거기에는 팔뚝보다 더 큰 쥐 한 마리가 바닥에 조용히 엎드려 있었는데, 신체 세포는 벌써 물을 잔뜩 머금어 그 생물에 관한 한 난생처음 보는 거대한 크기였고, 그것을 미루어보아 꽤 긴 시간을 거기에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더 이상의 생각은 무의미하였고, 양동이를 통째로 들고 대문 옆에 있던 재래식 화장실로 후다닥 달려가 차마 다시 눈길 못 주고 전부를 쏟아 내렸다.


쥐 빠져 죽은 물에 맛있게 밥 해먹은 나.

나는 그때 득도(得道) 하지 못했고, 그 후 내가 도통(道通) 한 것은 엄청나게 비위가 좋아졌다는 것뿐이었다.     


원효는 섬광같이 지나가는 사상을 붙들었고, 그리고 성인(聖人)이 되었고,

나는 우선 더럽다는 생각만 했을 뿐으로 이렇게 범부(凡夫)로 사는가 보다.     


원효는 받아들일 그만한 그릇을 미리 가지고 있었고,

나는 그릇도 없었고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다.     


세상사, 주어도 다 받지 못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그리하여 동틀 무렵은 항상 내 머리에 남은 것이고, 새벽녘 동틀 무렵의 그 상쾌한 느낌 때문에,

이 유쾌하지 못한 기억도 다 묻히고, 난 날마다 동틀 무렵의 거대한 하늘이 보고 싶다. (2022.0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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