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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틀무렵 Dec 29. 2022

일 년 반 백수의 소감(小感)-8

이제 제목을 ‘이 년 백수의 소감’으로 바꾸어야 할까 보다

가사(家事능력이 향상된다아니, 해야 한다.

오래전에, 남자가 나이가 들어서 갑자기 배우자를 잃게 되면 집안일에 서툰 남자는 살아가기가 힘들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물론 남자가 여자보다 오래 살 확률은 낮지만 그럴 경우도 있다. 평생 이불 한번 개어보지 않고-지금에는 침대 침구류 정리 한번 해보지 않고라고 하는 것이 맞겠다-, 제 손으로 밥 한번 차려 보지 않는 당시의 보편적 현상에 대해, 남자도 어느 정도 가사를 해야 한다는 논조의 기사였다. 요즘의 분위기에서 보면 좀 생뚱맞은 기사이다. 그러나 얼마 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22년 ’통계로 보는 남녀의 삶’이라는 조사에서도, 공평하게 가사를 분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아직도 57.9%에 머무는 것을 보면 우리 사회의 오랜 관습은 쉽게 바뀌지 않는 모양이다.

 

 늘 뭔가에 허기져있던 어린 시절, 먹을 것이 있나 하고 부엌에 들어가면 어머니께서는 깜짝 놀라기까지 했다. ’에비~‘하시며 어린이에게 주의를 시키는 말씀에 이어, 남자가 부엌에 들어가면 뭐 떨어진다며 단순히 가지 말라는 것 이상으로 기겁하는 정도였다. 그때는 가사에 관해서는 어쩌면 여성들의 권리이기까지 했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싶다.

     

 은퇴하고 나니 전보다는 더 집안일에 손을 담그게 된다. 나이 들어가며 피곤하다는 말을 달고 사는 아내도 안쓰럽고, 수십 년을 매일같이 같은 일을 반복하는 것에 지치고 진저리가 날 게다. 처음에는 설거지, 밥 짓기 정도였는데, 자꾸 영역이 넓어지고 있다. 나는 다행히도 오랜 기간을 혼자서 밥을 챙겨 먹은 이력이 있기에 별로 서툴지는 않다. 대학 시절 4년간의 자취생활을 시작으로 총각 시절과 6년간의 주말부부를 더하면, 도회지로 떠난 스무 살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의 대략 삼 분의 일 이상을 내 손으로 끼니를 해결했다. 쉰 살을 기준으로 잘라보면, 성년 이후 삽 십 년 중 딱 반절의 시간을 내 손으로 끼니를 해결한 장구한 이력을 자랑하고 있다.

    

 끼니뿐이랴. 신혼 초 일 년간을 떨어져 살았는데, 아내의 직장도 이유였지만, 맏며느리로서 처음에 시부모님을 모시고 살아 봐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지금에 생각하면 못 할 일이었지만, 당시로서는 크게 잘못된 일도 아니었고 아내의 흔쾌한 동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살던 어느 주말에 아내와 아내의 오빠 부부가 혼자 살던 신혼집을 왔는데, 오기 전에 잡다한 집안일을 처리한다고 빨래를 삶고 있었다. 요즘에는 빨래 삶는 일이 별로 없지만, 그때만 해도 행주, 속내의는 삶아서 때를 빼는 시절이었다. 행주 등, 지저분한 것들이 다른 빨래에 영향이 가지 않도록 비닐봉지에 따로 넣고 물을 채운 후 한 통에 삶는데, 마침 처남댁이 그것을 보더니 ’우리 아가씨 큰일 났네. 행주를 봉지에 따로 넣어 삶는 남자인데 앞으로 얼마나 잔소리가 심할꼬. ‘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내는 신혼 초에는 밥 짓는 법도 모르는 가사 일에 숙맥인 상태였다. 그러나 처남댁은 어떤 일에 잘 모르는 사람일수록 잔소리나 참견을 더 많이 한다는 것을 잘 모르는 모양이다.

     

 이러한 이력이 그때는 고달팠지만, 지금의 삶에서는 오히려 다행이다는 생각이다. 갈수록 확장되고 있는 가사영역은, 쓰레기 버리기는 말할 것도 없고 부랴부랴 출근하는 딸내미 방 정리를 포함하여 각방을 정리하는 것까지 이제 나의 몫으로 완전히 굳어졌다. 이는 깔끔함을 좋아하는 나의 성격에서 기인하는 것이지만, 왠지 아내의 눈치를 보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기초나마 집안일을 하는 것이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반찬까지 만들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홀로 지낼 때 끼니를 때울 때는 밑반찬이 있으면 다행이고 아니면 찌개 하나로 때우곤 했다. 가장 쉽고 효율적인 것은 만들기도 보관도 쉬운 된장찌개다. 그런 찌개에만 특화된 경력은 이제 유튜브를 이용하여 여러 가지를 하게 되었다. 어렵지 않다. 다만 무얼 해 먹어야 하나는 고민과 만드는 것보다 준비하는 과정이 더 어렵다는 것을 느낀다. 여하튼 사람은 무엇을 하든 계속하다 보면 날로 발전하는 법이다.

      

 혹시 가사에 엄두가 나지 않는다면 가장 쉬운 설거지부터 해보면 좋을 것이다. 설거지는 노동이 아니라 일종의 자기 정화(淨化)의 과정이 된다. 지저분한 것이 씻겨진 반짝반짝하는 그릇과 수저를 보면 마음도 정화됨을 느낄 수 있다. 설거지하면서 느낀 불편한 점이 하나 있다. 싱크대 높이가 낮다는 점이다. 내 또래의 평균치를 살짝 상회하는 적당한 키임에도 설거지를 할 때면 허리를 수그리게 되고, 마치고 나면 허리가 뻐근하다. 싱크대의 높이가 보편적 대한민국 여성의 키에 맞추어서 제작된 것이 이유일 것이다. 가구회사조차 아직도 가사는 여성, 설거지도 여성이라는 고정관념에 있는 듯하다.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책상이 있듯이 높이 조절이 가능한 싱크대를 만들면 어떨까. (발명해서 특허 내어 볼까.)


사냥을 마치고 돌아온 수컷들이여.

수십 년간을 이른 아침부터 너의 전투력을 위해 일찍 일어나 영양을 공급하고, 하루의 사냥에 지친 너를 위해 수고하고 편안한 안식을 준비해준 너의 짝을 노고를 잊지 말라. 그동안의 너의 노고를 유세하여 사냥이 끝난 지금에도 가만히 앉아 너의 입에 호사를 원치 말라. 사냥의 전투력이 어찌 온전히 너 혼자의 것이었느냐? 네 짝은 끝을 모르는 전투를 위해 오늘도 내일도 노심초사인데 이제 반이라도 해라. 

더 하면 어떠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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