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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세상 Mar 21. 2022

지자요수 인자요산  (智者樂水 仁者樂山)

건강을 유지하는데 맑은 공기만큼 좋은 것이 없다고 합니다. 맑은 공기를 많이 마시기 위해서는 오염되지 않은 곳을 찾아가는 것이 좋은 방법인데 현대 사회에서 그런 곳을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더구나 심해져가는 미세먼지로 우리의 일상은 맑음을 찾기가 힘들어졌습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산입니다.      


요즘은 산이 고달파할 정도로 등산을 하는 사람들의 수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산에 오르는 것을 개인적으로 싫어합니다. 우스개 소리로 내려올 산을 왜 올라가냐고 하지만 실은 땀을 내고 올라가서 다시 내려오는 그 고달픔을 구태여 일부러 겪기 싫은 게으른 심성 때문일 것입니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등반을 하다 보면 어느 순간 나를 깨닫게 되는 순간이 있다고 합니다. 산에 관한 찬사들은 여기저기서 많이 찾아볼 수 있지만 공자님이 쓴 ‘논어(論語)의 옹야편(翁也篇)’에 나온 이야기처럼 정의가 잘된 것은 없는 듯합니다.     


지자요수 인자요산 (智者樂水 仁者樂山).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는 말이지요. 이는 지혜로운 사람의 부류에 속하는 이들과 어진 사람의 부류에 속하는 이들의 일반적인 성격과 행동 경향을 설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보통 지혜로운 사람은 식별력이 높다고 합니다. 자신과 맺어지는 인간관계에 관심이 많아 항상 겸허한 자세를 가지려 노력하지요. 두루 흘러 맺힘이 없는 것이 물과 같기 때문에 물을 좋아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적 호기심을 충족시키기 위해 항상 돌아다니며 관찰하고 즐기기를 좋아합니다. 반면에 어진 사람은 의리를 편안히 하고 중후하여 옮기지 않는 것이 산과 같다고 합니다. 그래서 산을 좋아한다고 하였습니다. 늘 자신과 하늘의 관계에만 관심을 두기 때문에 모든 가치를 위에다 두고 있기 때문이지요. 그리고 호기심이 적어 한 곳에 가만있기를 좋아하여 고요한 성격이 많다고 합니다. 또한 마음을 가다듬고 물질적 욕구에 집착하지 않으니 오래 산다고 하지요. 즉, 지혜로운 사람은 물처럼 움직이기 때문에 즐겁게 살고, 어진 사람은 산처럼 조용하기 때문에 장수한다고 하였습니다. 그것이 옛 성인이 말하는 지자요수 인자요산 (智者樂水 仁者樂山)입니다.   

   

산에 오르는 사람들, 특히 암벽 등반을 즐겨하는 사람들에게 있어 리더는 선등자 일 것입니다. 선등자는 자일을 매고 가장 먼저 바위를 오르는 사람입니다. 그는 붙어 있지 못하면 추락할 수밖에 없는 급경사의 바위에서 오로지 자신의 손과 발로 오르고 또 오릅니다. 실수라도 하여 떨어졌을 때 그를 잡아주는 것은 밑에 있는 빌레이(확보)입니다. 그 빌레이에서 많이 오를수록 추락 거리는 늘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선등자가 위에서 내려준 자일에 달려 있어 떨어지래야 떨어질 수도 없는 후등자와 달리 선등자는 많은 위험요소를 안고 있는 셈입니다.     


 선등은 등반을 시작한 모든 사람의 꿈이라고 합니다. 선등은 그 어떤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중력을 거슬러 오르는 행위입니다. 또한 선등은 팀 모두의 안전을 확보하고 책임지는 일입니다. 누구나 등반을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선등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재능과 의지만으로는 충분치 않은, 특별한 정신력을 요구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보통  등산을 시작하고 1년 안에 선등을 못하면 영원히 못 한다고 합니다. 선등을 못 할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하지 않을 뿐이죠. 사람들이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는 등반 능력이기보다는 공포감이기 때문입니다.      


등반하는데 목숨을 거는 사람은 없습니다. 목숨 거는 일이 아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등반은 선등자와 후등자가 어울려 연출하는 한 편의 드라마입니다. 등반이 갖고 있는 위험한 속성이 사람을 경직되게 만들기 쉽지만 사람에 따라서는 쾌감 만점의 즐거운 레저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일을 하는 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인 듯합니다. 앞서가는 사람은 뒤에 따라오는 이를 위해서 일정의 빌레이를 마련하여 주어야 합니다. 나만 배불리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잘됨으로써 뒤에 따라오는 이들의 귀감이 되고 방향이 된다는 사실을 주지하지 않는 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의식을 다하지 못하는 것과도 같은 것입니다.      


앞서가는 자만이 향유할 수 있는 만족한 쾌감을 스스로 누려보는 것은 결코 사치스러운 행위가 아닙니다. 누구나 다 선등자가 될 수 있습니다. 땀을 흘린 만큼 거두어들이는 시간의 투자를 잘 안배하고 나를 바라보고 따라오는 후등자를 위한 매력 있는 선등자로써의 역할에 충실하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시간이 허락된다면 가까운 산에 올라 맑은 공기 맘껏 드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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