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도원세상 Dec 06. 2022

색이 있는 사람

사실 해가 바뀐다는 건 나이를 한 살 더 먹는다는 것 외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늘 무덤덤 시니컬하게 한 살을 더 먹고 나면 그 시간만큼의 부피가 어깨로 내려앉아 다소 무거운 감도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한들 특별히 달라질 것도 없는데 아등바등거릴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현실에 순응하고 최선을 다하고 후회 없도록 살면 그만이란 생각입니다.      


친구가 소중한 걸 느끼면 나이 든 것이라는 어른들의 말씀처럼 이젠 어느 정도 자신의 몫들을 하고 나니 불현듯 옛 친구들이 그리워지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그동안 나는 무엇을 하며 살았는지 일에만 매달려 정신없이 달려오느라 주위도 잘 챙기지 못하고 살아온 것은 아닌지, 어느 것이 잘 산 것인지는 아직도 잘 모릅니다. 그러나 앞만 보고 미래에 내 시간을 투자해 보지도, 과거만 기억하며 내 시간을 접어보지도 않고 오직 현실 지금 이 순간을 최선으로 살아온 건 누구에게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인 듯합니다.      


누구나 가슴속에 아름다운 사랑의 기억 하나쯤 간직하고 살아갈 것입니다. 아주 오래전, 대학시절 맘속에 담아 두었던 첫사랑의 아름다운 기억을 아련하게 간직하게 해 준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습니다. 어찌나 반가운지 목소리가 상기되는 줄도 모르고 소리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를 만났습니다. 만나러 가는 내내 설레는 가슴과 두근대는 심장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많이 변한 내 모습에 실망하지 않을까, 변한 내 모습에 실망하면 어쩔까, 이것저것 생각이 많았습니다.      


그 친구는 우리나라에서 꽤 유명한 축에 드는 건축설계사가 되어 있었으며 지금은 세미나도 다니고 직원도 꽤 많이 데리고 있고 외제차를 몰고 다니는 잘 나가는 CEO였습니다. 대학시절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했던 그에게서는 여전히 멋진 포스가 느껴졌고 말투 하나하나도 근엄해진 듯하였습니다. 그는 연극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그 좋아하던 연극을 지금껏 한 번도 보지 않았다 했습니다. 그리고 건축설계사라는 직업은 어차피 있는 사람을 상대로 하는 일이기 때문에 나보다 못한 사람을 쳐다볼 일이 없다고 하였고, 또 정말 앞만 보고 열심히 달려왔기 때문에 후회도 없다고 하였습니다.      


만나고 돌아오는 길 가슴 한편에 싸한 바람이 일었습니다. 내가 짝사랑했던 그 아이는 없고 성공한 그 아이만 있었던 것입니다. 어쩜 저리도 매정하게 가슴 팍팍한 사람이 되었을까? 그 꿈 많던 시절의 아름답고 멋진 기억을 구겨 버리듯 현재에 충실한 그가 정말 잘 살고 있는 사람일까?     


그리고 저는 집에 와서 한없이 아팠습니다. 옛사람의 외양의 변화에서 받은 충격의 그늘이 아니라 내면의 변화에서 받은 상처가 저를 심하게 아프게 한 것입니다. 그는 지금 성공했을지언정 자신의 색깔을 잊어버리고 사는 것 같았습니다.      


역시 옛사랑은 그 아름다움의 무게 그대로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 맞는 말인가 봅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평생 가슴에 안고 살아갈 아름다운 추억의 무게를 조금 덜어주어서 눈물 나도록 고맙기도 합니다.     


누구나 시간이 지나면 변하는 게 맞는 것이고 변해 가는 게 인지상정입니다만, 어떻게 변해 가느냐는 굉장히 중요한 문제인 것 같습니다. 혹여 자신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지는 않은 것인지, 저 역시 변해가는 모습에 관해 스스로 자족하고 살고 있지만 혹여 그 자족이 나만을 위한 만족은 아닌지, 가끔은 손해 보는 기분으로 사는 것도 괜찮은 일인 것 같습니다.      


삶을 하나의 소유물처럼 생각하기에 우린 그 순간을 두려워하고 주위를 멀리하고 나만 챙기려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러나 삶은 하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순간의 있음이라는 사실,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나이 들어가는 늙음이 아니라 녹스는 삶이라는 것. 녹은 쇠에서 나오지만 결국 쇠를 파먹고 만다는 것.     

 

진정한 자유는 정신에 있으므로 깨어있는 영혼에는 세월이 스미지 못하는 법입니다. 부디 그 친구의 영혼도 진정한 깨어있음으로 반짝반짝 빛이 나게 되길 바랍니다. 아울러 세월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순수한 영혼으로 끝까지 마주할 그런 색을 가진 아름다운 친구가 한 명쯤은 있어도 좋겠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색의 고유함은 변치 않는 느낌에 있음을, 나도 색의 그 느낌처럼 그런 친구 하나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혹여 그런 친구가 아직 없더라도 슬퍼하거나 기막혀할 일은 아닐 것입니다. 시간에 충실하고 자신을 잘 관리하다 보면 언젠가는 자신의 색과 가장 비슷한 친구가 곁에 있을 테니까요,

작가의 이전글 무슨 생각하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