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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세상 Jul 28. 2022

이가 자식보다 낫다~

평생을 동거해 온 이빨에 문제가 연이어 생깁니다. 그만큼 많은 공을 세우고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는 것이겠지요.

며칠 전부터 잇몸이 붓더니 밤새 끙끙거렸습니다. 일어나니 왼쪽 얼굴에 필러라도 잔뜩 쏟아부은 것처럼 탱탱하니 십 년은 젊어진 듯했습니다. 광대가 승천할 듯 부어올랐고 이내 머리까지 지끈거렸습니다. 아무것도 씹을 수가 없어서 맹물만 들이켰습니다

치과에서는 염증이 심해 이를 뺄 수도 없다고 약을 지어주었는데, 열흘을 약으로 버티다 결국 이를 뽑았습니다.


치과는 참 두려운 곳이며 민망한 곳입니다. 치과 의자에 앉아 대기하고 있자니 자꾸 헛기침이 나오고 호흡이 가빠집니다. 치과만 오면 늘 나타나는 같은 증상입니다

의자가 뒤로 젖혀지는 순간이면 잘 넘어가던 침도 고여만 있으려 하고 잘 쉬어지는 숨은 할딱거리기만 합니다. 민망한 속살을 의사에게 거리낌 없이 보여주고 끙끙거리며 어찌어찌 그렇게 앓던 이를 뽑고 나니 정말 앓던 이를 뽑은 기분을 맘껏 느낄 수 있었습니다.   

  

유년기 엄마는 실을 이빨에 걸고 이마를 탁 쳤습니다. 으앙 울 간도 주지 않고 이빨은 덜렁거리며 무명실에 매달려 애처롭게 흔들렸습니다. 이내 빠진 이빨은 지붕에 던져졌습니다.  도대체 아버지는 왜 이빨을 지붕에 던졌던 것일까요?

 전통에 의하면 빠진 이빨을 지붕 위로 던지면 까치가 와서 그 이빨을 가져가고 아이에게 새 이빨을 가져다준다고 합니다. 그래서 옛 선인들은 까치를 길조라고 했나 봅니다.


이러한 풍습은 중세 국어에 까치는 갓 치로 불렸고, 갓은 새로운 을 뜻하고 치 는 치아를 의미하므로 가치가 가치를 물고 새 이를 물고 온다.라는 생각을 하였던 것 같습니다.     


‘치아는 오복 중 하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예부터 건강한 치아는 큰 복으로 여겨왔는데 치통으로 인해 제대로 음식을 먹지 못해 본 사람은 그 의미를 더 절실히 느낄 것 같습니다.


치아와 관련된 속담이 엄청 많습니다.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 ’는 치아와 관련된 속담 중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속담이 아닐까 싶어요,  치통의 아픔을 느껴본 사람에게  아픈 이가 빠진다는 것은 얼마나 시원하고 후련한 일이겠나 싶어요.  그런 것처럼 밤낮으로 괴롭히던 것이 없어져서 시원할 때 쓰는 말로  실제 다산 정약용 선생은 말년에 치통으로 고생이 심했는데, 하나씩 발치를 하다 결국 모든 치아를 다 뺀 후에 치통의 고통에서 해방되고 '노인일 쾌사' 제2수에서 치아(통)가 없어 ‘노인이 된 후 또 다른 즐거움’이라고 표현했다고 합니다.      


여드레 삶은 호박에 도래송곳 안 들어갈 말이다는 삶아 놓아서 물렁물렁한 호박[무]에 이빨이 안 들어갈 리가 없다는 뜻으로, 전혀 사리에 맞지 않는 말을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이 없으면 잇몸으로 산다는 치아가 없으면 음식을 제대로 씹을 수도 없고 보기도 좋지 않은데 그렇다고 해서 못 먹는 건 아닙니다. 그럭저럭 잇몸으로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것처럼 꼭 필요해서 없으면 안 될 것 같은 것들도 막상 없으면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석 냥짜리 말은 이빨도 들어 보지 말라 는 너무 어리거나 값싸고 변변치 아니한 가축은 나이를 알아보기 위하여 이빨조차 들어 볼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값어치가 없어 보이는 뻔한 것은 흥정조차 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는 서로 이해관계가 밀접한 사이에서 어느 한쪽이 망하면 다른 한쪽도 그 영향을 받아서 온전하기 어려움을 뜻하는 말로 사자성어로는 ‘순망치한’이라고 합니다. 그 유래는 춘추전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같은 종족으로 국경이 이어져 있는 '우'나라와 '괵'나라 그리고 두 나라 이웃에는 '진'이라는 나라가 있었는데, 진나라는 괵나라를 치려 하였으나 우나라가 괵나라를 도와줄까 걱정이었기에 우나라에 금은보화를 주며 괵나라를 치러 가는 길을 터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우나라의 대신이 왕에게

우나라와 괵나라는 한 몸이나 마찬가지인 사이라며 오래된 속담에 수레바퀴와 덧방 나무는 서로 의지하고,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린 것이 이치이니 이는 괵나라와 우나라를 일컫는 것으로  괵나라가 망한다면 그다음은 우리 차례일 것이라 말합니다. 그러나 뇌물에 눈이 먼 우나라 왕은 진나라에게 길을 터주었고 괵나라를 멸망시킨 진나라는 돌아가는 길에 우나라마저 멸망시켰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보이듯 세상 모든 일은 서로 연관되어 있으므로 눈앞의 작은 이익보다는 크고 길게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외에도 이빨과 관련된 속담은 엄청나게 많습니다. 그만큼 이빨이 소중하다고  중요하다는 말이겠지요.

금은보화가 가득해도 먹고 싶은걸 제대로 먹지 못한다면 얼마나 서글픈 일이겠어요.  치통이 심해지니 곁에 있는 자식도 귀찮아졌습니다. 누군가  나 대신 먹어줄 수 없음에 잠시 절망도 해봤습니다만 앓던 이를 뽑고 나니 머리까지 맑아지며 다시 희망을 엮게 되었습니다. 

미리미리 관리를 잘해도 세월의 장벽 앞에서는 잠시 멈칫하겠지만,  그래도 조금 더디게 장벽과 마주할 수는 있을 겁니다.  

오늘도 건강한 삶을 위해 스타트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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