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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원세상 May 05. 2022

책을 버려라

선물 증후군에 시달리다시피 하는 5월 가정의 달은 스트레스의 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바쁜 와중에 이것저것, 여기저기 챙겨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은 달이기 때문입니다. 눈물 나도록 감사한 마음만으로는 성이 안 차는 세태이다 보니 지갑을 열어 마음을 보여주어야 하고 물건의 가격에 따라 마음의 가치가 결정되는 웃지 못할 아이러니도 생기게 됩니다. 그러나 부모님의 은혜도 스승님의 은혜도 모두 이런 기념일이라도 없다면 그나마 바쁘다는 핑계로 자연스레 삶 속에 묻히고 말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일 년에 한 번만이라도 나를 이끌어주신 분들을 찾아뵙고 감사의 마음을 전할 수 있으니 지갑이야 텅 비더라도 내겐 너무도 행복한 달입니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나아준 부모님과 바른길로 가르치고 이끌어 준 선배나 스승님이 있을 것입니다. 어떤 스승 아래에서 공부를 하였는가는 내가 살아가면서 매우 중요한 축을 만들어 줍니다. 어쩜 그리도 자신을 가르쳐준 스승의 길을 올바로 가고 있음인지, 올바른 스승 밑에는 역시 바르게 배워 정도의 길을 걷고 있는 제자들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다소 깐깐하고 엄격하다고 소문이 난 스승이나 선배에게서 배운 후배나 제자들은 그 배움의 시간이 길고 고되고 힘이 들었을지언정 시간이 흐르고 난 뒤에는 하나같이 그 깐깐하고 꼼꼼한 스승들을 닮아가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역시 그 스승에 그 제자라는 말처럼.... 스승만 한 제자 없다고 했던가요? 그러나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는 말처럼 스승보다 더 나은 제자들이 많이 나와 줘야 할 것입니다.   


처음 잡지사에 입문했을 때가 생각이 납니다. 호랑이 편집장이라고 업계에서 소문났던 그분은 원고를 넘기며 하나하나 마치 나의 잘못을 찾아내듯 그렇게 빨간 줄을 그어가며 읽었고 혹시라도 맘에 안 들거나 성의 없다고 느껴진다면 가차 없이 원고지를 북북 찢어서 날려버렸던 기억이 있습니다. 처음부터 다시~라는 주문을 받고 데드라인이라는 마감시한 넘기지 않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사무실에서 밤을 새우며 원고를 썼던 기억들이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시대가 바뀌어 그때처럼 에디터들에게 원고 주문을 한다면 남아있을 사람 하나 없을 것이겠지만, 어쨌든 눈물의 빵을 먹어 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인생을 논할 가치조차 없다는 말처럼, 힘들게 배운 것일수록 더 기억에 새롭고 오래도록 귀하게 자리하는 것 같습니다. 나 역시 그때 배운 그 근성 때문에 지금까지 숱한 유혹을 이겨내고 있음인지도 모를 테니까요. 아무튼 힘든 과정을 함께 겪은 사람들이라면 그다음에 올 어떤 고난이나 난관도 쉽게 극복할 수 있으니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다소 힘들고 괴롭더라도 조금만 더 인내하고 참아내면 조금은 더 멋진 내일이 열리지 않을까요?  


개인적으로 좋아하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 ‘연금술사’의 작가인 파울로 코엘료는 자주 자신의 서재를 비우는 작업을 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책을 버려라’라고 주문한다지요. 이유인즉, 책은 서재에 갇혀 있지 말고 세상을 여행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일생동안 완성해야 할 자아의 신화가 있다는 말을 쫓아 세상을 여행하는 그의 소설 연금술사의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처럼, 책도 마찬가지로 그 자신이 완성해야 할 자기 신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코엘료는 자신의 서가에 먼지를 뒤집어쓴 채 꽂혀 있는 책들을 바라보며 어느 날 불현듯, 무엇 때문에 이렇게 많은 책들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근본적인 회의를 가졌다고 합니다


혹시나 친구들에게 자신이 책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그는 책을 버려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이후 그는 외출할 때마다 책을 가지고 나가서 공원이나 버스정류장, 식당 등에 두고 나오는 일을 계속해오고 있답니다. 누구라도 책을 발견한 사람이 그것을 읽어주기를 기대하면서 말이죠. 그러니까 코엘료의 ‘책 버리기’는 그야말로 ‘책 버리기’가 아니라 ‘책을 여행’ 시키는 것이고 그 ‘여행’이라는 것이 곧 새로운 ‘유통’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엄숙하고 근엄하게 서가에 꽂혀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누군가에게 읽히는 것이 바로 책이 완성해야 할 자기 신화이며 본연의 의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이야기였습니다. 이 때문에 코엘료의 서가는 텅 빌 지라도 그가 여행시킨 책들로 인해 새로운 세상으로의 여행을 하고 있는 이들은 코엘료가 버리고 다니는 책의 수보다 더 많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지식의 끈들도 안으로만 담아두는 것이 나를 완성하는 길이 아니라 자꾸 밖으로 끄집어내어 함께 공유하는 것이 오히려 완성도를 높이는 길이라고 생각됩니다. 잦은 토론과 발전적인 대화는 나뿐 아니라 주위까지도 함께 커 나갈 수 있는 토양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는 이들이 늘어날수록 사회의 지식 테두리는 더욱 굵게 쳐질 것이며, 그것이 곧 자양분이 되어 발전하는 시간이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달 오월에는 책꽂이에서 잠만 자고 있는 책을  주변에 선물해보는 것도 책에겐 좋은 여행이 될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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