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들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방법은 비슷한가 봅니다. 못다 한 정을 나누고 새로움을 다시 기약하고, 지난해를 반성하고 또 멋진 계획을 세우고...
어느 정도 살아보니 새해가 밝으면 올 한 해 역시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만을 생각하기보다는 지금 살고 있는 것보다 더도 덜도 말고 조금만 더라고 생각하셔도 그럭저럭 한해를 맞이하기엔 무리 없을 듯싶습니다.
링 위에 오른 선수는 주먹을 펴서는 안 됩니다. 주먹을 쥐고 있을 때만이 싸울 의사가 있음을 말해줌이며 그러기에 사람은 누구나 이 세상에 나올 때 주먹을 쥐고서 나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면서부터 저녁 잠자리에 들 때까지 사시사철 평생 동안 주먹을 쥐듯 힘 있게 살아갑니다.
일본의 작가 ‘ 자이 오사무’라는 무척이나 비극적인 작가는 ‘태어나서 죄송합니다.’라고 고백을 했을 정도로 인생을 부적격자로 느끼며 살다 간 사람입니다. 이 작가는 어릴 적 가족사진을 보니 자기만이 유난히 주먹을 꼭 쥐고 있는 걸 보고 가슴이 섬찟했다는 자전적인 이야기를 본 기억이 납니다. 그는 너무도 슬픈 사람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이 세상에 “으앙” 하고 소리 지르며 태어날 때부터 생에 도전하듯 주먹을 불끈 쥐고 나온 사실을 안타까워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작가보다는 차라리 ‘내 주먹을 사다오’라고 외친 우리나라의 어느 스폰서 없는 불우한 권투선수가 더 진실한지도 모를 일입니다. 이왕 주먹을 쥐고 나온 세상이니 적어도 문은 한번 두드려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싸울 것이면, 링 한가운데서 한판 승부를 치르는 것이 운명이라면 두 팔을 힘없이 늘어뜨리지 말고 가슴 위로 바짝 끌어올리는 것이 현명한 일일 것입니다. 비록 정신없이 Hard Punch를 맞는다 하여도 두 눈을 부릅뜨고 도전자를 노려보십시오. 3막 5장이 될지, 8라운드가 될지는 더 두고 봐야 하는 일이지만 싸울 의사가 있으면 그 가냘픈 주먹일망정 불끈 쥐어야 하는 것입니다. 미리부터 “I am a loser"라고 칭얼대지 말고 힘차게 두드리십시오.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세상의 모든 것들을 위해 싸우는 것입니다. 결코 내가 꼭 쥔 주먹이 빈주먹이 아니라 지금이 순간과 나의 꿈과 사랑을 움켜쥐고 있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어젯밤에 아무리 천둥이 치고 소나기가 내렸어도 이 새벽은 씻을 듯 맑은 하늘이 마치 물 뿌리고 난 뒤의 길목처럼 원시가 깃든 정적 속에 조용히 열리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제가 절망스러웠어도 오늘은 또 다른 희망이 꿈틀거립니다. 다시 야만스러운 힘과 의지가 깃발처럼 펄럭이는 것입니다. 바다가 항상 잔잔하지만은 않으며 하늘이 항상 조용하지만은 않은 것처럼 우리가 주먹을 불끈 쥐고 새로운 희망을 말하는 것은 나의 의지의 시킴이요, 영혼의 외침을 안은 저 파란 하늘의 뜻일지도 모릅니다.
어느 날 우리나라 권투 중흥기에 나라를 대표했던 챔피언들과 함께 하는 자리가 있었습니다. 그때에 권투를 했던 선수 중 일부는 좌절하고 결국은 좌초한 사람들도 있지만 지금까지 열심히 자기 자리에서 자신의 몫을 다하고 있는 사람들은 누가 시켜서도 아니며 자신의 희망과 의지의 힘으로 극복하고 이겨낸 것이었습니다.
결국은 희망이 새로운 희망을 부른 것이지요.
즐겁게 살아야겠습니다. 어찌 보면 참 별거 아닌 일에 너무 매이지 말고 툭툭 털고 일어나 향기로운 오늘을 맞이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