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규' 하면 떠오르는 작가, 노르웨이 출신이며 '표현주의' 선구자인 에드바르드 뭉크입니다.
그런데 이 뭉크가 이미 1890년대에 카메라로 이른바 '셀카'를 찍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요?
화가 에드바르드 뭉크의 그림을 떠올리면 대부분은 처절한 ‘절규’가 제일 먼저 생각나지만, 그렇게 외로운 고독과 함께 했던 히스테틱한 뭉크도 처음 접한 카메라를 장난감 삼아 숱하게 찍었던 '셀카'가 있습니다. 이런저런 얼짱 각도를 연출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슬며시 웃음도 납니다. 셀카의 의외성은 생각보다 강렬합니다.
그의 자화상과도 같은 셀카들을 보자면 당당히 렌즈를 자신 앞으로 가져갔던 그가 얼마나 오랜 시간 번민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인간의 심연에 있는 불안과 광기를 여과 없이 드러낸 뭉크는 오히려 진솔하다는 생각입니다.
남이 눈치챌까 꼭꼭 숨겨 놓은 우리의 치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것도 같습니다. 우리 안에 꿈틀거리는 어둠을 대신 꺼내 보였던 뭉크의 셀카들을 보고 있자면 묵직했던 무언가가 소화되면서 결핍된 욕망에 너무도 충실했던 그에게 한걸음 다가갈 수 있습니다.
5살 때 어머니를 결핵으로 여의고, 14살에 폐결핵을 앓던 누나 소피의 임종을 지켜봤던 뭉크의 대표작 '절규'는 해 질 녘 길을 걷던 뭉크의 귀를 때린 '자연의 비명'을 표현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핏빛 구름이 요동치는 난간에 기댄 일그러진 얼굴은 자신의 내면세계와 외면세계를 정확히 분리하여 대비시켜 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에드바르드 뭉크 : 절규 (1893. 오슬로 뭉크 박물관)
그렇다고 뭉크의 작품이 전부 어둡고 음산한 풍경만은 아닙니다. 절벽 위로 솟는 태양을 그린 작품은 가끔 환한 세상을 꿈꾼 뭉크의 내면을 보여주며, 땀 흘리며 일하는 농부의 모습도 역동적이고 활력이 넘칩니다. 뭉크는 시내 풍경을 영화 촬영용 필름에 담은 동영상도 남겼지만, 사진, 영화 같은 신기술에도 관심이 많았다고 합니다.
뭉크가 자신의 모습을 찍는 '셀카'는 실제로 샷 방향과 구도가 전형적인 '셀카' 사진들입니다.
인스타그램이 등장하기 백 년 전부터 열렬한 셀카 사진가로 누구보다 많은 자화상을 긴 뭉크는 수많은 사진을 남겼는데 그중 많은 사진이 자화상이었습니다. 그는 혼자서 그림 앞에 서, 침대에서, 정원에서 종종 옆모습으로 자신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괴상한 사진 중에는 홀딱 벗은 사진들도 많습니다. 열렬한 셀카 사진작가이기도 했던 뭉크는 종종 미술사에서 최초의 셀카를 찍었던 화가였습니다.
뭉크의 셀카
뭉크는 휴대폰 '발명'을 예언(?) 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친구인 덴마크 화가 옌스 빌룸센에게 보낸 날짜 없는 편지에 이런 글이 있었다고 합니다.
'이 보게나,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작은 원격 전화기가 있다면, 이미 자네에게 내가 전화를 했을 거야.'
뭉크는 기술 혁신에 종종 큰 관심을 보였고 필름 카메라, 음성 녹음용 팔로 그래프, 카메라, 전화와 라디오 등 신세대 기종을 누구보다 먼저 보유하던 얼리어답터이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뭉크의 그림을 보고 있으면 깊은 가을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 듭니다. 그의 작품을 보고 있노라면 그윽한 계절에 맞게 고즈넉한 가을, 그 굴곡진 오묘함에 빠질 수밖에 없는, 더 깊은 고요 속으로 빠져들어갈 찬란함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