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곁에 있었던 특별함
“Today, we are gonna eat Korean convenience store food!”
“Let’s dig in!”
세팅된 테이블 위에는 컵라면 몇 종류와 컵반, 과자, 소주, 그리고 알록달록한 음료수들이 놓여 있었다. 정면에는 카메라가 자리 잡고 있었고, 우리는 웃으며 음식들을 하나씩 집어 들었다. 맛을 보고, 리액션을 하고, 장단점을 이야기했다. 한국 편의점 음식에 대한 첫인상을 영상으로 담아내는 순간이었다. 이 영상은 우리가 함께 개설한 유튜브 채널에 올릴 첫 번째 콘텐츠이기도 했다.
며칠 전, 리키가 유튜브를 보다가 무척 신난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 편의점 음식이 외국에서 요즘 엄청 화재래! 나도 꼭 먹어보고 싶어.”
리키가 먼저 말을 꺼내기 전까지는, 나는 편의점 음식이 누군가의 '버킷리스트'가 될 수 있다는 걸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나에게 편의점은 언제든지 들를 수 있는 곳, 음식이 맛있다기보다는 집에 뭐가 떨어졌을 때 비상용으로 들르는 곳이었다. 하지만 리키는 오히려 그 점을 특별하다고 했다.
“너에게는 당연한 곳이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정말 놀라운 장소야.”
그 말이 조금 낯설게 들렸지만, 곧 고개가 끄덕여졌다.
스페인에서는 늦은 시간까지 문을 여는 가게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밤 11시에 출출해도 문 연 상점은 거의 없고, 일요일에는 문을 여는 가게를 찾는 것도 힘들다. 그런 리키에게는 집 근처 어디에나 있고, 아무 때나 갈 수 있는 편의점이 그야말로 ‘문화 충격’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첫 먹방 콘텐츠가 정해졌다.
한국 편의점 음식들—매운 라면부터, 컵반, 주전부리 과자, 달달한 음료까지.
리키는 먹을 때마다 눈을 반짝였다. 한국 라면이 세계적으로 알려지며 매운 라면은 이미 몇 번 접해봤다고 했지만, 다양한 종류의 라면 맛에 놀라워했고, 젓가락을 내려놓지 못했다.
그리고 예상외로 그가 가장 반한 것은, 바로 바나나 우유였다.
“이거 너무 귀엽고 맛있어!”
병 모양에 반하고, 한 입 마시고는 감탄했다.
목욕탕에 다녀오던 날이면 꼭 한 병씩 사 마셨던, 나에게도 소중한 추억이 담긴 그 음료. 같은 기억은 없지만 같은 맛에 웃고 있는 리키를 보며, 나도 덩달아 미소가 났다.
유튜브 촬영을 마친 뒤, 우리는 가볍게 산책을 나섰다.
햇살이 완전히 사라진 저녁 강변, 바람은 후텁지근했지만 피부에 닿을 때만큼은 부드러웠다.
리키와 나는 여느 때처럼 손을 잡고 나란히 걸었다. 말이 없어도 편안한 공기, 발걸음은 천천히 맞춰졌다.
강 건너편엔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별다른 목적지도 없이 걷고 또 걸었다.
그러다 갑자기 리키가 중얼거렸다.
“나, 목말라.”
그 말에 나도 입안이 마른 걸 깨달았다.
물도 안 챙기고 나왔지…
뭔가를 가지러 돌아가기도 애매하고, 그대로 걷기엔 갈증이 자꾸 신경을 긁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둑한 저녁 풍경 사이로 작은 초록빛이 하나 눈에 들어왔다.
편의점이었다.
멀리서 봐도 단박에 알 수 있는, 익숙한 간판.
‘이런 곳에 있었나?’ 싶을 정도로 평소엔 눈여겨보지 않았던 자리였다.
강바람에 가로등 불빛이 일렁이는 사이, 유리문 너머로 비친 냉장고 속 음료수병들이 유난히 반짝여 보였다.
그 순간, 마음속 어딘가가 찌릿하게 건드려졌다.
아— 이건 정말 한국적인 장면이구나.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가다가, 편의점이 나타나고, 그냥 들어가서 시원한 걸 하나 집어 들 수 있다는 것.
외국에서는 당연하지 않은 일.
리키가 말했던 “너에겐 당연한 게, 나에겐 특별해”라는 말이 다시 떠올랐다.
나는 리키를 바라봤다.
그도 같은 간판을 보고 있었다.
눈빛이 마주쳤고, 별말 없이 웃음이 났다.
“편의점 갈래?”
“좋아.”
우리는 발걸음을 돌려 천천히 편의점 쪽으로 걸어갔다.
작은 간판 아래로 향하는 길은 왠지 조금 따뜻하게 느껴졌다.
어쩌면 이 순간을, 나도 나중엔 특별했다고 기억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니, 편의점은 늘 거기 있었다.
가까이, 조용히, 언제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