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 은갈치

제주도의 맛, 은빛 한 점

by 나미

“드디어 도착이네~!”

서울보다 조금 더 더운 날씨, 습기 찬 듯한 공기 그 속에 섞인 바다 내음이 우리를 감쌌다. 제주도였다. 리키가 한국에 있는 동안 서울 말고도 다양한 도시들을 보여주고 싶었던 나와 우리 가족은, 리키와 모두 함께 가족여행을 계획하게 되었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생경하게 다가오는 풍경. 비가 내리고, 야자수가 늘어선, 그리고 바다 내음이 어디선가 옅게 불어오는 도시의 풍경이 같은 한국이지만 이국적으로 느껴지기까지 했다. 리키도 가족여행에 앞서 기대에 부푼 것 같은 모습이었다.


차를 몰고 천천히 달리는 동안 창밖엔 야자수와 검은 돌담, 흠뻑 젖은 길이 이어졌고, 멀리 파도치는 해안선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리키는 차창에 얼굴을 가까이 대며 창밖을 바라봤다. “이 곳의 풍경은 스페인의 한 도시가 생각나.” 하고 웃는 얼굴에서 나도 모르게 따라 웃음이 났다.


"비도 내리고, 날도 흐리고. 이런 날에는 왠지 매콤한 음식이 생각나네."

부모님께서는 근처 오름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어 하셔서, 부모님을 내려드리고, 급하게 찾은 갈치 맛집으로 향했다.


“여기 맞아?”

밖에서 보기에는 식당인지도 알 수 없을 정도로, 간판도 안 보이고 서울의 번화가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리키는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 파란색 강철 슬레이트 지붕, 오래된 벽, 나무로 지어진 문과 창문, 그리고 그 오래된 문 옆에는 작은 간판이 달려 이곳이 영업 중인 식당임을 짐작케 했다. 리키는 잠시 멈춰 서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검은 현무암 담장 너머로 바다가 펼쳐져 있었고, 흐린 하늘 아래로 잔잔한 파도 소리가 들려왔다. 리키도 이 풍경을 K드라마 어딘가에서 본 듯, 눈을 떼지 못하고 감탄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조용하고 따뜻한 기운이 흘러들었다. 연세 지긋한 부부가 운영하는 듯한 식당. 귀여운 에이프런을 두른 사모님은 우리를 창가 쪽 자리에 안내하며 말했다.

“갈치조림 정식이 제일 잘 나가요. 오늘 잡은 거예요.”

자신 있어 하는 사모님의 모습을 보니, 왠지 안심이 된다.

메뉴를 정하고 나니, 이윽고 밑반찬부터 하나씩 테이블에 깔리기 시작한다.


“우와 이게 다 뭐야?”

젓갈에 무친 톳, 묵은지 볶음, 오이된장무침 같은 해산물 중심의 반찬들이었다. 리키는 익숙지 않은 반찬을 하나씩 조심스레 입에 넣었다. 매번 새로운 맛이 입안에 퍼질 때마다,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생각에 잠긴 표정. 해산물이 유명한 바르셀로나에서 나고 자란 리키의 입맛에도 합격이었는지, 리키는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하는 듯한 표정으로 맛을 보기 시작했다.


이윽고, 양옆으로 길고 네모난 팬에 담긴 갈치 조림이 나왔다. 서울에서 봤던 한 토막의 갈치와는 다르게 긴 팬에 담긴 갈치는 보글보글 좋은 소리를 내며 끓고 있었다. 살이 단단하게 오른 갈치는 칼칼한 양념과 어우러져 보기만 해도 입 안에 침이 돌았다. 리키는 팬 가까이 고개를 가져가 냄새를 맡았다. 매콤하고 비릿한 바다 냄새가 코를 간질였다.

리키는 처음 보는 음식이 신기한 듯 눈을 반짝이며 내가 먼저 먹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밥을 한 숟갈 푸자, 리키도 따라서 밥을 한 숟갈 푸고, 갈치 살을 잘 발라 한 점을 밥 위에 올리자, 리키도 따라한다. 가끔 갈치 살을 바르기 어려울 때는 할머니가 그래주셨던 것처럼 내가 직접 살을 발라 리키의 밥 위에 얹어주기도 했다.


갈치 한 점. 밥 한 숟갈.

입에 넣고 씹자, 부드러운 살이 힘없이 무너졌다.
조림의 양념이 겉면에 스며들어 짭짤하고 고소했지만, 속살은 여전히 담백했다.
입안에서 양념이 밥과 어우러지고, 무의 단맛이 뒤따라왔다.
리키는 눈을 감고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잘 익은 갈치 살은 담백하면서 흰 밥과 참 잘 어울리는 맛이었다. 리키의 얼굴에도 행복감이 퍼졌다.


정신없이 반 공기 정도 밥을 비운 후에는, 칼칼한 국물을 두세 스푼 떠서 밥에 올린다. 리키도 따라 한다. 슥슥 밥과 국물을 비비자 반사적으로 입에 침이 고인다. 빨간 국물이 흰 쌀밥을 물들였고, 리키는 한 숟갈 크게 떠서 입에 넣었다.


입안 가득 퍼지는 감칠맛, 그리고 매콤한 열기가 뒤따라왔다.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히는 리키의 얼굴. 그는 수저를 놓지 않았다. 한 숟갈 크게 떠서 와앙 입으로 가져갈 때 입 안 가득 행복감이 몰려왔다.


정신 없이 식사를 마친 후, 배가 불러오자, 우리는 숟가락을 내려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비는 어느새 그쳤고, 구름 사이로 햇빛이 들기 시작했다.
창문 너머 제주 바다는 여전히 잔잔했고, 바람은 식당 창을 스치며 짭조름한 내음을 실어 날랐다.


“제주도의 은갈치, 오래 기억에 남을거야.”
리키가 말했다.
입술에 묻은 양념을 손등으로 닦으며, 진심 어린 표정이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괜히 뿌듯했다.
어쩌면 그건 음식 때문만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비 오는 날, 오래된 식당, 가족과의 여행, 나란히 앉은 식탁.
그 모든 것이 합쳐져서 하나의 풍경이 되었고, 그 속에 리키가 함께 있었다.

식사를 마친 후, 우리는 바다 가까이까지 걸어갔다.
검은 돌담을 따라 걷다 보니, 조용한 마을 골목과 바다가 이어지는 풍경이 나왔다.
우리는 아무 말 없이 그곳에 서서, 바다 냄새를 한참 동안 맡았다.

그날의 공기, 그날의 햇빛, 그날의 갈치 맛.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리고 그날의 리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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