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함께 있다는 것만으로
내가 일하던 센터 바로 앞에, 작고 조용한 만두집이 있었다. 간판도 크지 않았고, 가게 내부도 소박했지만, 그곳의 새우만두는 참 이상하게도 계속 생각나는 맛이었다. 얇고 투명한 피 안에 탱글탱글한 새우가 한 마리 통째로 들어 있고, 한 입 베어 물면 육즙이 혀 위로 터지듯 퍼졌다. 새우 특유의 바다 내음과 함께, 생강과 마늘로 간을 한 속재료가 입안에서 부드럽게 섞였다. 살짝 쪄낸 만두피는 쫀득하면서도 쉽게 입 안에서 풀어졌고, 그 따뜻한 온기가 속까지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리키는 한국에서의 3개월 내내, 내가 일하는 동안 바로 그 만두집에 자주 들렀다. 오후 10시쯤, 일이 끝나고 지친 몸을 이끌고 센터 밖을 나서면, 나를 기다리고 있던 건 늘 말없이 새우만두 한 팩을 사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리키였다. 우리는 소중하게 만두를 들고, 집으로 가져가 소파에 나란히 앉아 먹었다. 만두를 찍어먹던 간장의 짭짤함과 새우의 담백한 맛, 그리고 리키가 음식을 한 입 먹을 때마다 고개를 살짝 갸웃하며 감탄하던 표정이 아직도 선하다.
그리고, 그 만두와 함께 곁들였던 차는 센터 맞은편 찻집의 '도롱도롱'이었다. 이름부터 귀엽고 독특했지만, 그 향은 더 특별했다. 따뜻하게 우려낸 찻잔을 가까이 대면 살구와 우롱차, 라벤더가 뒤섞인 향이 은은하게 퍼졌다. 처음 향을 맡은 리키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웃었고, 마시고 나서는 “이 향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라고 말했다. 부드럽고 약간 달큼한 그 향기는, 만두의 따뜻하고 묵직한 맛과 완벽하게 어울렸다. 한 입의 만두, 한 모금의 차. 그 조합은 소박하지만 완벽했다.
3개월간의 꿈같은 한국 생활을 마친 어느 날, 우리에게도 헤어짐이 찾아왔다. 무비자 기간이 끝난 리키는 스페인으로 돌아가야 했고, 우리는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며 마지막 날을 준비하고 있었다. 리키는 밤 비행기를 타고 갈 예정이어서, 내가 일이 끝나면 차로 데려다 주기로 했다.
그날도 여느 날처럼, 나는 센터 1층에서 퇴근하자마자 그를 마주했다. 그런데 리키는 한 손에는 우리가 즐겨 먹던 새우만두, 다른 손에는 '도롱도롱'이 담긴 종이컵을 들고 환하게 웃으며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이 너무 사랑스럽고도 아려워서, 순간 눈물이 주르륵 흘러버렸다. 이런 순간이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니, 함께한 시간이 너무 짧았고, 그동안 다투었던 일들이 하나하나 후회됐다. 결국 우리는 서로를 그렇게 깊이 사랑했는데.
공항에서 그를 배웅할 때만큼은 절대 울지 않고 싶었다. 마지막 모습은 웃는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었기 때문이다.
출국장 앞, 사람들로 북적이는 그 공간에서도 우리는 유난히 조용했다.
리키는 무거운 캐리어 손잡이를 꼭 쥔 채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무 고마웠어, 나미.”
리키가 먼저 입을 열었다.
"꼭 다시 올게."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눈이 붉어져 있었다.
어깨를 감싸 안아주는 그의 품은 따뜻했고,
그 온기가 그대로 손끝에 남아 있었다.
출국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며 몇 번이고 돌아보던 리키.
나는 그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내 손에는 여전히 따뜻한 만두 봉지가 들려 있었고,
마시다 남은 도롱도롱의 향이 코끝을 맴돌았다.
그 향과 온기가, 그날의 마지막 기억으로 오래도록 남았다.
배웅을 마치고, 홀로 차를 운전해 돌아왔다.
이제는 익숙한 인천공항에서부터 집까지, 아무 생각없이 운전해서 돌아오는 길.
그저 머릿속이 텅빈 듯 멍했다. 평소같았으면 리키가 조수석에서 재밌는 이야기도 해주고,
시끌시끌 웃음이 끊이지 않았을텐데.
주차를 하고, 터덜터덜 집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비밀번호를 눌렀다.
모든 것이 이상하리만큼 조용했고, 이 적막에 이제 적응을 하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며 문을 여는 순간,
나는 꾹꾹 눌러 참았던 눈물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온 집 안이 예쁜 포스트잇으로 가득했던 것이다.
평소 함께 요리하던 주방에는 "나미, 요리하는 냄새가 너무 좋다~", 늘 화장을 하던 화장대에는 "화장하는 모습이 너무 예뻐. 한번 더 웃어봐.", 출근길 현관문에는 "오늘도 힘내, 할 수 있어. 파이팅!"이라는 메모들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는 침대 위에 꽃 한 다발과 손으로 꾹꾹 눌러쓴 편지, 그리고 영상 편지까지.
한국에 혼자 남을 나를 위해 준비해 준 리키의 마음이 집안 곳곳에 녹아 있었다.
눈물이 터져나옴과 동시에,
나는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밖에 없었다.
울지 말자.
힘들어도 어떻게든 이 사람과 다시 함께하는 날을 만들자고.
지금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고, 같은 공간에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한 일이라는 걸,
나는 그날 비로소 알게 되었다.
지금은 리키가 언제나 내 옆에 있다.
나는 그를 위해 요리를 하고, 그는 내 옆에 앉아 차를 우리며 기다린다.
우리는 좋아하는 음식을 함께 나누고, 사소한 이야기를 주고받고, 하루의 끝을 함께 맞이한다.
이 모든 순간이 얼마나 소중한지, 우리는 아주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오늘도, 같은 차를 마시고 같은 만두를 먹으며
서로를 더 이해하고, 더 아껴주려 한다.
사랑은 거창하지 않아도, 충분히 깊고 단단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는 함께 배워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