찜질방과 식혜

식혜 한 모금과 계란 한 알, 여행 끝의 포근한 쉼

by 나미

며칠간 부산을 여행했다.
광안리의 바닷바람은 볼을 스치듯 지나갔고, 밤마다 은은하게 흔들리던 광안대교의 불빛은 우리에게 잠깐의 위로가 되었다.


회, 밀면, 돼지국밥까지. 맛있는 것들로 배를 채웠지만, 하루 종일 걸었던 다리는 이미 묵직하게 굳어 있었다.
마지막 날이 되자 발끝부터 피로가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리키야, 우리 찜질방 가자!”

리키는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갸웃했다.
“그 사우나 같은 거? 드라마에서 봤어!”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근데 한국 찜질방은 더 재밌어. 가면 알 거야.”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깥의 차가운 공기와 완전히 다른 세상이 펼쳐졌다.


한기 대신 얼굴에 닿은 것은 훈훈한 열기였다.
구수한 나무 향과 습한 공기가 뒤섞여 콧속 깊이 스며들었고, 입구 쪽 매점에서는 달콤한 식혜 냄새까지 희미하게 풍겼다.


사람들은 노란색, 분홍색 찜질복을 입고 바닥에 드러누워 있었고, 곳곳에서 귓가를 간질이는 나른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긴장이 스르륵 풀리며, 나도 모르게 어깨가 천천히 내려앉았다.
며칠간 걸었던 발바닥의 묵직함이 이곳에 들어서자마자 조금씩 풀어지는 것 같았다.


“양머리 만들어줄게!”
나는 타월을 능숙하게 돌돌 말아 리키의 머리에 씌웠다.
동글동글한 양머리를 하고 거울을 본 리키는 “헐… 진짜 똑같다!”라며 소리 내 웃었다.
“이제 진짜 찜질방을 즐길 준비가 된 거야.”
나는 장난스럽게 말하며 그의 팔을 이끌었다.




황토방에 들어서자, 온도는 한층 더 높았다.


문을 여는 순간 피부에 닿는 공기는 묵직했고, 숨을 쉴 때마다 뜨거운 열기가 목구멍을 타고 내려갔다.
벽과 바닥에 깔린 황토에서 올라오는 열기가 발끝부터 온몸을 감쌌다.
살짝 고개를 들어보니 천장에는 희미하게 김이 맺혀 있었다.


“진짜 드라마에서 본 거 같아… 황토방, 맞지?”
리키는 신기한 듯 벽을 손으로 두드리다 바닥에 털썩 앉았다.
나는 바닥에 등을 대고 누우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응, 여긴 황토방. 아… 피로가 스르륵 녹는다.”

리키는 천천히 누워 눈을 감았다.


“진짜 피로가 다 풀린다.”
그 말에 나는 슬며시 미소가 번졌다.

숨소리와 땀 냄새, 묵직한 공기가 뒤섞인 방 안은 작은 명상 공간 같았다.




여러 방을 차례로 드나든 후, 우리는 목이 바싹 말라 있었다.
“땀도 많이 뺐고… 출출해지네. 식혜랑 계란 먹을래?”
“그래!”

매점에서 받아온 식혜는 차가운 유리병에 서리가 앉아 있었다.
뚜껑을 열자 달콤한 엿기름 향이 퍼졌다.
빨대를 꽂아 첫 모금을 들이켰다.


미지근하면서도 달큼한 맛이 혀를 타고 목으로 내려가자, 지쳤던 온몸이 부드럽게 풀어지는 듯했다.


가라앉아 있던 쌀알 몇 알이 빨대를 따라 입에 들어왔고, 톡톡 씹힐 때마다 쌀의 고소함이 단맛에 작은 변주를 주었다.


“달콤한데… 차가워. 뭔가 신기한 조합이네.”
리키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나는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찜질방에선 무조건 이거야.”


다음은 계란 차례였다.
“리키야, 잠깐 머리 좀 빌려줘.”
“엥? 왜…?”
리키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밀자,
“딱!”
“아야…!”
“미안! 근데 찜질방 계란은 이렇게 까야 제맛이라니까?”



리키는 황당하다는 듯 나를 쳐다보다가, 이내 피식 웃더니 말했다.


“그럼 나도 빌릴게.”
“응?”
“딱!”
“아야…!”


서로의 머리를 계란으로 부딪히는 소리가 황토방 안에 울려 퍼졌다.
둘 다 계란 껍데기를 털어내며 깔깔 웃었다.


식혜의 달콤한 잔향과 계란의 고소한 맛, 그리고 몸을 감싸는 사우나의 따스함.
그 순간 여행의 피로가 단숨에 사라지는 것 같았다.
부산 여행의 끝에서 만난 예상치 못한 작은 쉼.

그것이 오래도록 우리를 포근히 감싸 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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