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현장에 있으면 가장 행복했던 시간은 언제였을까? 혼자가 아닌 아내와 함께 있었던 시간, 아내와 멋진 휴양지로 여행을 갔던 시간.이 모든 시간들이 행복했지만 무엇보다도 세상에 하나뿐인 딸의 아빠가 되었을 때가 가장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태국에 온지 1년이 넘어갈 무렵, 일은 점점 더 바빠지고 있었다. 아내와 함께 할 수 있는 시간도 점점 줄어만 갔다. 주말에도 출근하는 날이 생겼기 때문이다. 다행히 가족들과 같이 온 직원들이 많아서 아내도 외롭지 않게 지낼 수 있었다. 아빠들은 다 바빴기에.
가족들과 같이 온 직원들을 보면 대부분 아이들과 함께 온 분들이 많았다. 아이없이 아내와 단둘이 온 집은 우리 밖에 없었다. 그래도 아내는 다른 가족들과 잘 어울리며 나의 걱정을 시원하게 날려보냈다. 특히 아이들과 너무 잘 놀아줘서 혼자 있고 싶어도 아이들이 아내를 찾아 온 적도 있었다.
우리도 아이를 가지고 싶었지만 너무 힘든 일로 인해 아내의 임신 소식은 한달이 지나고 세달이 지나고 몇달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에서 우수사원 시상식이 있었는데 내가 뽑인 것이다. 3박 4일 휴가와 호텔 숙박권까지. 하늘이 마음 편히 푹 쉬고 오라고 주는 선물 같았다. 몸도 마음도 휴식을 취하면 우리에게 또 다른 선물이 오지 않을까 자그마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정말 새로운 곳에서 몸과 마음이 편해서일까. 휴가를 다녀온 후 사무실로 복귀 후 며칠 뒤에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다. 흥분되고 울먹이는 목소리로. 처음엔 무슨 사고가 난 줄 알았는데 드디어 임신을 했다는 세상에서 가장 큰 선물을 나에게 안겨주었다. 마음고생 많았던 아내는 수화기를 통해 엉엉 울었다. 이렇게 기쁠수가.
퇴근하자마자 아내를 꼭 껴안고 고맙다라고 이야기했다. 정말 너무 고마웠다. 나 하나만 믿고 하던 일도 그만두고 같이 태국에 와서 아이까지 갖게 되었으니. 어떤 말도 아내에 대한 고마움을 다 표현할 수가 없었다.
하루하루 점점 배가 불러오는 모습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었다. 한국이 아닌 태국에서 병원을 다녀야하기에.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데. 초반에는 태국에서 병원을 다녔지만 출산 가까이 와서는 한국으로 병원을 다녔다. 혼자 비행기를 타고, 임신한 몸으로.
출산 예정일이 다가왔을 때 아내는 혼자 한국으로 향했다. 이제는 태국에 같이 있을 수가 없었다. 배속에 있는 아이는 아빠가 보고 싶었는지 거꾸로 자라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제왕절개 수술을 할 수밖에 없었고 정해진 수술날짜에 맞춰 휴가를 나올 수 있었다. 만약 자연분만이었으면 시간 맞추기가 어려웠을텐데. 그때나 지금이나 나를 잘 따르는 우리 딸이 태어나기도 전부터 아빠를 너무나 보고 싶어했던 것 같다. 하루라도 더 같이 있고 싶어서.
세상밖으로 딸이 나오는 그 순간. 내 손으로 직접 탯줄을 자르고 울고 있는 딸을 봤을 때. 감동의 소용돌이가 온몸을 휘감아 버렸다. 어찌해야할지, 뭐라해야할지 그냥 그 순간이 너문 신기하고 행복했다. 내가 진짜 아빠가 되었다는 것.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을까.
나에게 주어진 시간은 일주일. 수술날짜가 정해지고 수술 전 일주일, 수술 후 일주일 총 2주의 휴가를 냈다. 벌써 반이 지났고 이제 반만 남았다. 너무 조금해 안기가 겁이났다. 조금만 잡아도 부서져버릴 것 같이 너무 작았기에. 나를 보며 웃는 딸을 두고 다시 가야하다니.
침대에 누워있는 아내와 딸을 두고 다시 태국으로 향하는 발걸음. 세상에 있는 모든 돌, 철들이 내몸에 붙어 나를 끌어당기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