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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아파파 Jan 26. 2024

수줍은 밤의 여왕 - 아즈하르 공원

서로에 대해 알아간다는 것

오늘은 야외 수업을 하는 날.


오랜만에 야외 수업이다. 아랍어 선생님이 가고 싶은데 있냐고 물어봐서 저녁에 아즈하르 공원에 가고 싶다고 했다.
가고 싶었던 이유는 시타델 야경을 보면서 저녁을 먹고 싶었기 때문이다.

여름에 이곳에 왔을 때는 너무 더워서 공원이 좋았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았지만 딱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이 있었다. 바로 시타델이 보이는 식당을 찾은 것. 그때는 여름이라 낮에는 식당이 열지 않았다. 그리고 저녁에 시타델을 지나갈 때마다 보라색 불빛이 비추는 시타델이 너무 멋있었다. 그래서 저녁에 꼭 이 공원에 와서 멋진 보라색 불빛의 시타델을 보면서 저녁을 먹고 싶었다.


딱 들어선 공원은 정말 이집트 갔지 않았다.


'정말 이집트 카이로에 이런 곳이 있다니'


유럽의 멋진 공원에 와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은 나는 내가 이집트에서 일하고 있다는 것조차도 잊게 만들었다. 똑바른 길을 따라 곧게 뻗은 나무에 조명이 비추고 그 사이를 걸어가는데 정말 기분이 좋았다. 하루의 피로가 싹 사라졌다.


이 멋진 길을 걸으며 예전에 왔을 때 기억해 두었던 식당으로 갔다. 시타델은 잘 보이는데 호수 건너편에 무대를 설치하고 공연을 하고 있어서 너무 시끄러웠다. 바로 옆에서 대화하기도 힘들 정도로.


그래서 다른 식당으로 발길을 돌렸다. 조용하게 아름다운 시타델을 보면서 저녁을 먹으려고 했는데 하필 오늘 그 앞에서 공연을 하다니.


하지만 안쪽에 다른 레스토랑이 있어서 그쪽으로 갔더니
그곳은 조용했고, 훨씬 더 고급스러워 보였다. 멀어서 시타델은 굉장히 작게 보였지만 작아도 멋진 모습은 그대로였다. 시타델이 가장 잘 보이는 앞자리에 앉아 음식을 주문하고 잠시동안 말없이 시타델을 봐라 보았다. 겨울이라 날씨가 조금 쌀쌀했지만 야외에서 저녁을 먹는 데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이곳에서 시킨 음식은 이집트 음식. 아랍어 선생님이랑은 항상 이집트 음식을 먹으러 다닌 것 같다. 주문한 음식은 소시지와 코프타(Kofta). 코프타는 이집트 전통 음식인데 소고기 또는 양고기를 다져서 구운 음식이다. 아마도 제일 무난하게 먹을 수 있는 이집트 음식 중 하나다.


멋진 시타델을 보면서 멋진 식당에서 음식을 먹으니 어떤 음식이라도 맛이 없을 수가 없었다. 특히 시타델의 야경은 내가 이집트에서도 제일 좋아하는 풍경 중 하나인데
그 모습을 보면서 밥을 먹으니 정말 행복했다. 나중에 아내와 딸이 이집트에 오면 꼭 여길 같이 오고 싶다.


이곳은 아랍어 선생님에게 추억이 많은 장소라고 했다. 일찍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아버지가 살아 계셨을 때 가족끼리 자주 오던 곳이라고 했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그래도 다시 그 이야기가 나오니 미안해졌다.
아마도 아버지 생각이 많이 났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서로의 회사 이야기, 동료 이야기, 룩소르 여행 갔다 온 이야기 등 아랍어로도 이야기하다가 막히면 한국어로 이야기도 하고, 중간에 영어도 조금씩 섞고. 3개 국어로 대화를 나눴다.


이집트에 와서 이집트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아랍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공부하면서 욕심이 생겼다. 일 할 때 무전기로 동료들과 아랍어로 대화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일주일에 두 번씩 아랍어 수업도 하고, 배운 것을 조금한 수첩에 적어 시간 날 때마다 보고,
이집트 노래를 다운로드하여 매일 듣고 다니고, 선생님이 소개 시켜준 이집트 드라마도 보고.


예전에 영어 공부하던 기억이 떠 올랐다. 요즘 들어 아랍어 공부에 흥미가 떨어졌는데 야외 수업 후 다시 흥미가 생겼다.
이집트에서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 슬럼프를 이겨내고 다시 나아가는 나의 모습을 찾아야겠다.

아즈하르 공원은 낮과 밤 모두 각각의 매력이 있다. 낮에는 푸르른 숲 속을 걷는, 약간의 남성적인 느낌이 든다면,
밤에는 수줍게 자신의 모습을 가리고 조명으로 살짝만 보여주는 여성의 느낌이 든다. 그리고 전혀 이집트 느낌이 나지 않기 때문에 더 많은 매력을 발산하는 것 같았다.
이집트에 머무는 동안 아마도 몇 번은 더 올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꼭 같이 와보고 싶고, 알려주고 싶었다. 이 공원의 매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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