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인연에 대하여
해노야
세상엔 참 값진 것들이 많다.
그중에서도 나는 인간관계가 그렇다고 생각해.
행운 같은 우연이 쌓여 필연이 되고
그 필연이 결국 어떤 사람의 나날을 지켜준다는 말에
나는 늘 깊이 공감한다.
주위에 사람이 많을 필요는 없다는 것도
나이가 들수록 더 분명해지더라.
내 마음을 알아주고
진심을 마주해 줄 몇 사람,
그 단 몇 사람만 있어도 충분하다는 걸
나는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아.
하지만 그런 인연을 만나기까지는
늘 시행착오가 따른다는 것.
슬프지만, 알 수밖에 없는 것이 인생이니까.
여기저기서 치이고 긁히며
상처받는 일을 여러 번 지나야
비로소 반짝이는 인연을 만난다는 것.
그것을 느즈막히 알았지.
해노야.
너를 처음 만난 건
오래전 어느 날, 성당에서였어.
너는 기도 모임에서 짙은 황토색 니트에
흰색 로퍼를 신고 다리를 꼬고 앉아 있었지.
너는 깐깐해 보였어.
말을 붙이기엔
조금 용기가 필요한 첫인상이었지.
그런 네가 나를 집으로 초대해 주었을 때
난 꽃 한다발을 들고 갔었지.
너희집에 들어선 순간
고급요리 향기가 났었어.
식탁 위에는 파인다이닝식당처럼
색감 고운 음식들이
정성스럽게 플레이팅되어 있었고,
그 마음이 너무 선명해서
한참을 보다가 마음이 따뜻해졌었지.
너희 집은 크지 않았지만
작은 촛불들이 곳곳에 켜져 있었고
오래 곁에 두고 싶은 물건들이
센스 있게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어.
그 아담한 공간 안에는
주인의 감각과 온기가 스며 있었지.
그 후로 우리는 가까워졌고
가까이에서 볼수록
나는 너를 닮고 싶다는 마음이 더 깊어졌어.
공간을 가꾸는 태도,
신앙으로 마음의 힘을 키워가는 방식,
사소한 것 하나에도 정성을 담는 일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될 수 있는지
나는 너를 통해 처음 알았지.
너는 그 예쁜 집에
내 지인들까지도 자주 초대해 주었어.
좋아하는 사람에게만이 아니라
그 주변까지 따뜻함을 나눌 줄 아는 너.
나는 그런 네가 참 좋았다.
너를 만난 건
내 삶의 작은 기적이었어.
아무 변화 없이 흘러가던 일상에
네가 들어온 뒤로
나는 많이 달라졌지.
공간을 정성으로 채우고
하루를 아름답게 살아가는 일은
결국 나 자신을 위로하는 방식이라는 것도
그때 알았어.
그래서 나는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그 만남이 없었다면
아직도 나는
무심히 하루를 흘려보내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해노야.
사실 오늘 너와 통화를 하고
후회하고 반성했어.
여전히 내 신앙은 얇았고
지식도 초라했으며
근거 없는 확신과
슬쩍 올라온 우쭐함까지
나는 그대로 너에게 드러내고 말았다.
왜 굳이
그 미완의 마음을
말로 꺼내 보였을까.
그 감정은 곧 부끄러움이 되어
잠시 마음에 남았다.
참 인간이라는 존재는
이렇게 나약하고 보잘것없어.
나 역시 그런 서툰 사람이었다.
그런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 모든 부족함을 알고도
너는 여전히
내 곁에 머물러 주고 있다는 사실.
그건 흔한 일이 아니었다.
어쩌면 기적에 가까운 일이었어.
내 미숙함에 섞인 어설픈 말과
지혜롭지 못한 고백들까지도
다 받아주는 사람, 바로 너였어.
해노야.
네가 내 곁에 있다는 것.
그건 때로는 두려울 만큼 벅차고 감사한 행운이야.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오늘의 나는
충분히 구원받은 사람이다.
해노야.
늘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