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글빙글

by 루나

전자레인지 앞에 서서

빙글빙글 도는 시간 속을 본다


명상 같은 건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다


돌아가는 접시 위에서

컵라면 하나가 우주처럼 돈다


세상에서 가장 긴 1분

면발은 아직 안 익었고

마음만 먼저 풀어진다


어느새 내 옆에 강아지 하나
이것은 동상인가

움직이지 않고
그대로 멈춰 있다

꼭 한 가닥은 받아내겠다는 얼굴로
끝까지 눈을 안 감는다

나도 지지 않고 버티는데
강아지 눈에는
어느새 물기가 맺힌다

내가 졌다, 옛다
한 가닥 줄께

너도
멍 때린 거니


이런 빙글빙글 명상은

코인세탁소에서도 계속된다

돌아가는 빨래를 보고 있으면

생각도 같이 헹궈지는 기분이다


남들은 불멍을 한다던데

나는 컵멍을 하고

또 빨멍을 한다


세상이 너무 시끄럽고

머릿속이 너무 엉켜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보다

그저 돌아가는 것을 보는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어쩌면 사람은

멍 때릴 때

가장 멀쩡하게

숨 쉬는지도 모른다


오늘도 로딩 느린 컴을 붙잡고
한참을 컴멍을 하다가

이렇게
보살이 되어 가는 건가

우리집 상전이자 서열 1위 'Ann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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